오늘은 정현종 시인님의 시 '섬'에 오릅니다. 정 시인님이 39세 때에 발표한 시이고,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의 시인데 여전히 울림이 큰 시입니다. 이 시는 과연 어떤 삶의 비의(秘義)를 품고 있을까요? 깊이 읽으며 생각하며 마음목욕을 함께 하십시다.
1. 정현종 시인의 대표 시 '섬'
섬
- 정현종(1939~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시인의 그림이 있는 정현종 시선집 - 섬」(열림원) 중에서
시 '섬'은 1978년 「나는 별 아저씨」(문학과지성사)라는 정 시인님의 두 번째 시집을 통해 발표된 시입니다. 정 시인님은 지난 2009년 자신의 수많은 시 중에서 34편의 시를 골라 「시인의 그림이 있는 정현종 시선집 - 섬」을 냈습니다. 그 책 제목도 '섬'이고 첫 번째 시도 '섬'입니다. 이 정도라면, 정현종 시인님이 자신의 시 가운데 가장 아끼는 시가 '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도 합니다.
2. '섬', 그 두 줄에 담긴 의미는?
시(詩)는 수많은 창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좋아하는 창문을 열고 들어가면 될 것입니다. 그대는 이 두 줄짜리 짧은 시의 어떤 창문을 여셨는지요?
저는 '섬'을 읽으면서 정 시인님의 다른 시 '방문객'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시 '방문객' 중에서
'섬'에도 사람이 있고, '방문객'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 시에는 사람에 대한, 타자(他者)에 사랑과 관심이 배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섬'에 올라가는 섬돌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시인이 사랑하는 그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그 섬은, 어떤 좋은 것임에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2행에서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으니까요.
섬이 주는 이미지로,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과 미지의 세계라는 '신비로움'을 들 수 있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비로움'이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이 시가 진동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비로움이 뭘까요?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묘한 것을 말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그 무엇이겠습니다.
3. 타자와 지지고 볶으며 살아야 살맛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분노하고 떠나가도 다시 그 누군가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만나서 껴안으며 사랑하며 살도록 되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타자와 연대하며 사는 것이 숙명인 듯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튀는 '불꽃'이 있으니까요.
타자란 뭘까요? 나에게 ‘나’라는 의미를 부여해주는 존재가 아닐까요? 타자가 있기 때문에 내가 드러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로 가고 싶습니다. 살맛 나는,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나의 현존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기능하니까요.
그대는 '섬'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사람과 사람 사이 상처투성이 관계를 훌훌 벗어던지고 훌쩍 섬으로 떠나고 싶으셨나요? 저는 그런 그대의 생각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창문이 많을수록 좋은 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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