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님의 시 '밤나무 아래서'를 만납니다. 시인님이 우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노해 시 '밤나무 아래서' 읽기
밤나무 아래서
박노해(1957년~ , 전남 함평)
이럴 때가 있다
일도 안 풀리고 작품도 안 되고
울적한 마음으로 산길을 걸을 때
툭, 머리통에 꿀밤 한 대
아프다 나도 한 성질 있다
언제까지 내가 동네북이냐
밤나무를 발로 퍽 찼더니
후두두둑 수백 개의 밤톨에 몰매를 맞았다
울상으로 밤나무를 올려봤더니
쩍 벌어진 털복숭이들이 하하하 웃고 있다
나도 피식 하하하 웃어 버렸다
매 값으로 토실한 알밤을 주머니 가득 담으며
고맙다 애썼다 장하다
나는 네가 익어 떨어질 때까지
살아나온 그 마음을 안다
시퍼런 침묵의 시간 속에 해와 달을 품고
어떻게 살아오고 무엇으로 익어온 줄 안다
이 외진 산비탈에서 최선을 다해온 네 마음을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2021년 53쇄) 중에서.
2. 밤나무의 꿀밤 한 대 맞은 적이 있나요?
시 '밤나무 아래서'는 박노해 시인님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 실린 시입니다.
시인님 약력에 따르면, 2010년에 나온 이 시집이 12년만의 시집이라고 하니, 시집의 시들은 주로 시인님 40대에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30대에 시인님은 사노맹 결성으로 7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했고, 1998년 석방돼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습니다.
40대에는 비영리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고, 이라크전쟁터에 뛰어들어 세계의 가난과 분쟁의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참으로 '외진 산비탈'에서 3,40대를 보낸 시인님이네요.
그런 시기에 나온 시, '밤나무 아래서'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럴 때가 있다 / 일도 안 풀리고 작품도 안 되고
울적한 마음으로 산길을 걸을 때 / 툭, 머리통에 꿀밤 한 대'
이렇게 울적한 그대도 산길을 걸을 때 '꿀밤 한 대' 맞은 적이 있겠지요?
'꿀밤'은 밤송이에서 빠져나온 '알밤'을 말하기도 하고, 주먹 끝으로 가볍게 머리를 쥐어박는 행위를 칭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이 시의 도입부에서 밤나무가 주먹 끝으로 가볍에 시인님 머리통을 쥐어박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만 같네요. 주먹 대신 알밤을 시켜서 말입니다.
이렇게 밤나무의 꿀밤을 한 대 맞은 그대는 어떻게 하시나요?
꿀밤 맞은 '머리통'을 훌훌 털고 그냥 지나가시나요?
시인님에게 이 사건은 시의 발화점이었네요.
어, 이거 시다! 시가 왔다, 하면서 주루룩 시상(詩想)이 이어졌겠네요. 이렇게요.
'아프다 나도 한 성질 있다 / 언제까지 내가 동네북이냐'
가뜩이나 '일도 안 풀리고 작품도 안 되고 울적한' 시인님, 꿀밤까지 한 대 맞아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릅니다.
'언제까지 내가 동네북이냐'. 이 구절이 찡하게 다가오네요.
구석으로만, 변방으로만 몰리곤 하던 서러운 삶의 시간들이 떠올랐네요.
시인님만 그럴까요? 그대는 어떤지요?
'밤나무를 발로 퍽 찼더니 / 후두두둑 수백 개의 밤톨에 몰매를 맞았다'
성이 나서 주변을 한번 휙 둘러보고는 밤나무 둥치를 발로 퍽 차고 있는 시인님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네요.
아뿔싸, 앞에서 '꿀밤 한 대'를 준 밤나무는 이번에는 '몰매'를 내리네요.
어쭈구리, 감히 네가, 그것도 시인이라는 사람이 발로 나를 차?
'후두두둑 수백 개의 밤톨'······.
3.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 '고맙다 애썼다 장하다'
'울상으로 밤나무를 올려봤더니 / 쩍 벌어진 털복숭이들이 하하하 웃고 있다
나도 피식 하하하 웃어 버렸다'
우리도 '하하하' 웃게 되는, 가슴 따뜻한 장면입니다.
'쩍 벌어진 털복숭이들'. 온통 날카로운 침으로 덮여있는 까칠한 밤송이를 이렇게 다정하게 표현한 시라니!
그 모습을 그려보니, 그 밤송이들은 장난치기 좋아하는, 한없이 착하기만 한 개구쟁이 같습니다.
'피식 하하하'. 처음에는 어이없어 '피식했다가, 곧이어 '쩍 벌어진 털복숭이들'에 동화되어 '하하하' 했다는 다정한 시인님이네요.
이 천진난만한 동화 같은 장면에서 우리는 시인님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 마음인지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 장면에서 시인님은 '쩍 벌어진 털복숭이들'과 하나가 되어버렸네요.
밤송이들이 '털복숭이들'로 옮겨지는 순간, 그것은 외따로이 떨어진 사물에서 소중한 생명으로 환하게 빛나는 것만 같습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자신과 같이 여기는 시인님의 귀한 마음이 아니라면 어떻게 밤송이들이 '털복숭이들'로 보일 수 있겠는지요?
'매 값으로 토실한 알밤을 주머니 가득 담으며 / 고맙다 애썼다 장하다
나는 네가 익어 떨어질 때까지 / 살아나온 그 마음을 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네요.
'고맙다 애썼다 장하다'. '털복숭이들'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토실한 알밤을 주머니 가득 담으며' 그 '알밤'들에게 그렇게 '고맙다 애썼다 장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경(地境)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모든 것을 나와 같이 보는 시인님의 높은 마음이 아니라면 그런 말을 어떻게 건넬 수 있었을까요?
'살아나온'. 그냥 '살아온'이 아니라 '살아나온'이라는 말 속에는 구불구불한 삶의 기구(崎嶇)가 가득 느껴지네요.
'살아나온 그 마음을 안다'. 이렇게 말해주는 이가 옆에 있었으면요. 아니,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요.
'고맙다 애썼다 장하다'. 이 쓸쓸한 쇠락과 소멸의 가을, 크고 작은 결실을 거둔 세상의 모든 생명들에게 건네고 싶은 위로입니다.
'시퍼런 침묵의 시간 속에 해와 달을 품고 / 어떻게 살아오고 무엇으로 익어온 줄 안다
이 외진 산비탈에서 최선을 다해온 네 마음을'
'어떻게 살아오고 무엇으로 익어온 줄 안다'. 와, 이런 말을 해주는 그대라면 그 정다운 품속에 퐁당 안기고 말겠습니다.
모진 비바람과 태풍, 깜깜한 겨울밤과 작열하는 여름의 시간들로 '살아오고' 그것으로 '익어온' 나를 알아주는 그대 품속에요.
'이 외진 산비탈에서 최선을 다해온 네 마음을'. 이처럼 다정한 위로가 세상에 따로 더 있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 따스한 위로의 구절들이 바로 시인님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요.
이 뜨거운 문장들이 그동안 '동네북'처럼 휘둘리며 '외진 산비탈'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온' 자신에게로 건네는 독백이라는 것을요.
이렇게 밤나무의 '꿀밤 한 대'가 시인님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었네요.
다음에 키 큰 밤나무 아래를 지난다면 한번 올려다보아야겠네요.
그리고 말해주어야겠어요. 밤나무에게 말하듯이, 아니 나에게 말하듯이요.
'고맙다 애썼다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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