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님의 시 '봄날'이 환합니다. 이 시는 몸과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김용택 시인님이 펼쳐놓은 특별한 봄날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우리 거기에서 함께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김용택 시 '봄날' 읽기
봄날
- 김용택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 김용택 시집 「연애시집」(마음산책) 중에서
김용택 시인님은 1948년 전북 임실 출신으로 1982년 창작과비평사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 「섬진강 1」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편지」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그대, 거침없는 사랑」 등이 있고, 산문집 「작은 마을」 등과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등이 있습니다. 윤동주문학대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오늘 만나는 시 '봄날'은 섬진강의 시인이라 불리는 김용택 시인님의 일곱번째 시집 「연애시집」에 실려있습니다. 김용택 시인님은 이 시집의 맨 앞쪽에 "연애란 말에서는 봄바람에 실려오는 햇풀 냄새가 난다."라고 써두었네요.
2002년에 이 시집이 나왔으니 김용택 시인님은 50대 초반 즈음 시 ‘봄날’을 쓰신 걸로 생각됩니다. 50대 초반에 뜨거운 연애 시를 모아 연애시집을 내시다니!
2. 마음 한편이 자꾸 간질거리네요
김용택 시인님의 시 '봄날'은 신기합니다. 여섯 줄의 짧은 시 속에 텃밭과 섬진강이 있는 무변의 '자연 공간'이 등장하고, 거기에 텃밭을 매던 어떤 감성 풍부한 남자가 호미를 휘익 내던지고 예쁜 여자 손을 잡고 섬진강 매화 구경간다면서 또한 휘익 그 공간을 벗어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이렇게 시인님은 '봄날' 시를 통해 삶의 한 장면을 스냅사진처럼 보여 주시네요. 가만히 읽으니 마음 한편이 간질거립니다. 이 시를 읽는 누구라도 저마다의 ‘호미’를 내팽개칠 수밖에 없겠습니다.
봄날이니까요. 봄날인데 어찌 텃밭만 매고 있겠는지요? 텃밭에 난 잡풀이나 뽑고 있겠는지요? 마음에 돋은 잡풀도 뽑아야지요. 섬진강은 '봄물'이라는데요. 매화꽃잎이 강물 위에 나풀나풀 춤추며 떠내려오는 봄물이라는데요.
그렇게 매화꽃 보러 가서, 그 꽃그늘에서 이 감성 왕자는 예쁜 여자 손만 잡았을까요? 자기에게 올까 말까 망설이던 어떤 마음도 확 잡았겠네요. 봄날이니까요.
3. '호미' 내던지고 봄 소풍 가고파지는 시
그대는 김용택 시인님의 시 '봄날'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빗방울이네는 김용택 시인님을 만난 적은 없지만 ‘봄날’을 보니 그가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성정의 소유자인 것만 같습니다. 시에 나타난 화자의 동작은 아이의 행동 그 자체입니다. 이 시를 읽고 있는 우리는 매화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는 낭보를 듣고 밭고랑에 호미를 내던지고 뒷정리는 나 몰라라 놀러 가는 아이가 됩니다. 잠시라도 이런 아이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이런 아이의 마음이 되면 얼마나 자유롭겠는지요. 얼마나 유쾌하겠는지요.
이 시의 매력이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평생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김용택 시인님의 장난꾸러기 마음과 우리가 이 시로 연결되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던 아이 마음이 되어서는 말랑말랑 부드러워지네요.
그리하여 우리도 '호미'를 내던지고 싶기만 합니다. 컴퓨터 ‘종료’ 버튼도 누르지 않고 작업 중이던 화면을 그대로 켜둔 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이랑 손잡고요. '아아' 한잔씩 빼들고요. 그리하여 매화꽃그늘 아래서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은 김용택 시인님에게 물어야겠습니다. 어떤 일이 생긴다면, 그건 필시 '봄날'이 촉발한 일일 테니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용택 시인님의 봄 시를 한 편 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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