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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진규 시 꽃마리처럼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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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규 시인님의 시 '꽃마리처럼'을 만납니다. 시인과 꽃마리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박진규 시인님이 만난 꽃마리 이야기 속에서 마음을 씻고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박진규 시 '꽃마리처럼' 읽기

 
꽃마리처럼
 
- 박진규
 
꽃마리라 하였구나
세상에 너처럼 작은 꽃은 난생처음 본다
오래전 스친 병아리 눈빛만 하달까
작아도 연파랑 꽃잎은 어김없이 다섯 장
꽃마다 한가운데에
까만 점도 하나씩 딱 찍혀있다
사는 일이 잘 안 풀려
땅바닥만 쳐다보고 다니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만 같다
세상에 이렇게 작게 피어나
응달진 돌 틈을 담당하고 있었구나
 

- 월간 「기장사람들」 2020년 6월호 중에서

 
1963년 부산 기장 출신인 박진규 시인님은 1989년 부산문화방송 신인문예상에 시 '태백기행' 당선으로 등단했고, 201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시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가 당선했습니다. 부산매일신문 문화부 기자 등으로 언론계에서 활동한 그는 부경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홍보팀장으로 홍보업무를 담당했습니다. 2016년 첫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를 발간, 이 시집으로 2018년 제18회 최계락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2. 올봄 꽃마리를 보셨나요?

 
박진규 시인의 시 '꽃마리처럼'은 시 발표 연도(2020년)로 보아 시인이 50대 후반에 쓴 시로 보입니다.
 
꽃마리라 하였구나 / 세상에 너처럼 작은 꽃은 난생처음 본다
- 박진규 시 '꽃마리처럼' 중에서
 
그런데 이 시 구절로 보아 아마 이 시의 화자(대부분 시인 본인이겠습니다만)는 그즈음 꽃마리를 처음 알았나 봅니다. 50대 후반에야 눈에 들어온 꽃이네요. 그전에는 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꽃마리는 봄마다 피어났을 텐데요. 계속 시를 따라가 봅시다.
 
작아도 연파랑 꽃잎은 어김없이 다섯 장 / 꽃마다 한가운데에 / 까만 점도 하나씩 딱 찍혀있다

- 박진규 시 '꽃마리처럼' 중에서

 
그대는 꽃마리라는 꽃을 아시는지요? 겨울과 봄 사이에 피는 꽃입니다. 그러니까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 중의 하나입니다. 이 꽃은 아주 작아서 눈에 잘 띄지를 않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처음 본 꽃마리가 '작아도 연파랑 꽃잎은 어김없이 다섯 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꽃마다 한가운데에 까만 점도 하나씩 딱 찍혀있다'라고 하네요. 이런 걸 알아내려면 꽃을 보려고 아주 무릎을 꿇었을 것 같습니다.
 

박진규시꽃마리처럼중에서
박진규 시 '꽃마리처럼' 중에서

 

 

3. 꽃마리에서 나를 보다

 
사는 일이 잘 안 풀려 /  땅바닥만 쳐다보고 다니는 나를 /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만 같다

- 박진규 시 '꽃마리처럼' 중에서

 
이 구절을 보니 시인이 50대 후반이 되어서야 꽃마리를 처음 보게 된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 일이 많아 바쁠 때는 시선이 땅바닥으로 떨어질 겨를이 없었을 겁니다. 자신만만했던 시간의 시선은 항상 위를 향하거나 정면을 향해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땅바닥에 붙어 피는 꽃마리를 보았을 리가 없겠지요.
 
그러나 그런 뜨거운 욕망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시간의 산책길에서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을 때 시인의 눈에 꽃마리가 딱 눈에 들어온 거네요. 문득 이 시가 떠오릅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 고은 시 '그 꽃' 

 
산으로 올라갈 때는 욕망이 충만할 때입니다. 그때는 허리 아래의 꽃이 보일 리 없습니다. 정상을 밟고 나서 내려갈 때는 욕망이 비워진 상태입니다. 그 빈 마음에 꽃이 들어온 것입니다.
 
자, 꽃마리의 시인은 그렇게 꽃마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꽃송이마다 한가운데에 찍힌 까만 점이 시인에게는 '꽃의 눈'처럼 보였나 봅니다. 시인의 눈과 꽃마리의 눈이 딱 마주쳤네요. 그 꽃의 눈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고 하네요. 시인의 자격지심이겠지만요.
 
세상에 이렇게 작게 피어나 / 응달진 돌 틈을 담당하고 있었구나

- 박진규 시 '꽃마리처럼' 중에서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시의 화자는 아주 작은 꽃마리가, '오래전 스친 병아리 눈빛' 같이 희미한 꽃마리가 응달진 돌 틈을 밝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묵묵히, 그러나 찬란히 말입니다.
 
그 꽃마리를 보고 시인은 자신을 돌아보았겠네요. 그렇게 작게 피어난 꽃도 자기 자리에서 세상의 한 구석을 지키고 있는데 나는 세상의 한 구석이라도 밝힐 무얼 하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아, 도대체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박진규 시인의 시를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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