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 가수님의 시 노래 '선운사'를 부릅니다. 며칠 동안 재생해 부르며 외로움을 견뎠던 봄날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운사 동백꽃, 아니 세상의 동백꽃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요? '선운사'에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송창식 시 '선운사' 읽기
선운사
- 송창식 작사 작곡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1947년 인천 출신인 송창식 가수님은 본인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1968년 트윈폴리오 1집 '하얀 손수건'으로 데뷔한 이후 70, 8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고, 독특한 감성과 음색의 그의 노래는 지금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2015),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2012) 등을 수상했습니다.
오늘 만나는 송창식 가수님의 '선운사'는 1986년 11월 한국음반(주)에서 발매한 앨범 「86 송창식 - 참새의 하루」에 실려 있습니다. 이 앨범은 '선운사'를 비롯 '참새의 하루', '담배가게 아가씨' 등 10곡을 담고 있습니다.
2. 동백꽃 필 때마다 '호출'되는 노래
'선운사'는 40년 가까운 세월 속에서 동백꽃이 필 때마다 우리의 마음에서 저절로 호출되는 노래입니다. 발표 연도를 보니 송창식 가수님이 39세 즈음 만든 노래이네요. 그는 이 노래를 만든 배경에 대해 "선운사 동백꽃의 낙화를 보면서 느꼈던 처연함을 노래에 담았다."라고 말했습니다(경향신문 2020.3.29).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 송창식 노래 '선운사' 중에서
이 구절이 이 시의 '눈'입니다. 꽃이 통째로 툭 떨어지는 동백꽃을 보면서 송창식 가수님은 꽃이 눈물처럼 후두둑 진다고 했습니다.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 송창식 노래 '선운사' 중에서
당신이 선운사 동백꽃숲에 와서 눈물처럼 지는 동백꽃송이를 보게 된다면 슬퍼서 못 떠날 거라고 하네요. 참으로 애절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목청을 여리고 가늘게, 가장 구성진 가락으로 좌중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다 자신이 그만 거기에 풍덩 빠져서 눈물까지 울컥 쏟을 뻔하곤 합니다. 거참.
3. 동백꽃이 송이째 툭 떨어지는 까닭은?
그런데 말입니다. 동백꽃은 왜 그렇게 송이째 툭 떨어질까요? 동백꽃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동백나무를 오랫동안 지켜본 적이 있나요? 빗방울이네는 한 30여 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수년 전 겨울, 마땅히 일이 없었던 그날, 자주 가는 조용한 장소 가까이 꽃이 활짝 핀 동백나무가 있었습니다. 키 큰 그는 절정의 검붉은 꽃송이를 가득 달고 서 있었습니다. 향기가 없는 동백꽃은 특유의 화려한 색을 풍경 속에 펼쳐놓고 그렇게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네요.
10여분 지났을까요? 어두운 동백나무 안쪽을 들락거리는 작은 생명체가 보였습니다. 연둣빛 동박새였습니다. 동백꽃이 피는 추운 날에는 다른 꽃이 없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동박새에겐 동백꽃이 아주 고마운 '꿀 카페'입니다. 동백꽃도 나비와 벌이 없는 때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동박새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렇게 동박새와 동백꽃은 천생연분이네요.
배고픈 동박새는 쉼 없이 동백꽃 속을 들락거립니다. 키 큰 동백나무의 수많은 꽃송이의 '꿀 카페'를 다 들리고 말겠다는 듯이 꽃송이들을 바쁘게 순례합니다. 동박새가 꽃송이에서 나올 때마다 새의 얼굴과 몸에 샛노란 꽃가루가 가득 묻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꽃가루를 동박새에게 묻히기 위해 동백꽃은 자신의 제일 깊숙한 곳에 꿀을 숨겨놓았을까요? 동박새는 동백꽃의 전략을 모른 채 열심히 꿀 카페를 거닙니다. 아무려나 자신은 달콤함만 있으면 다 괜찮다는 듯이요.
동백나무의 열매가 생기려면, 꽃가루가 암술대를 거쳐 밑씨와 만나 수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묻혀주는 일이 '연두왕자' 동박새의 막중한 미션이었던 것입니다.
자, 며칠째 이렇게 들락거리니 꽃이 어떻게 될까요? 동박새는 동백꽃 속에 있는 꿀 카페를 들락거리느라 꽃을 마구 헤집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튼튼한 꽃받침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동백꽃이 무사히 가지에 붙어 있을 수 있을까요? 툭, 떨어질 수밖에요.
이제 아시겠지요, 동백꽃이 송이째 툭 떨어지는 까닭을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과연 동백에게 슬픔, 아픔이나 절망일까요? 동백의 낙화를 보면서 빗방울이네는 생각했습니다. '이건 동백의 환희다.'라고요. 동박새의 도움으로 동백나무는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이건 참으로 찬란한 축제네요!
이제 우리는 무감한 사물(동백꽃)에 자신의 감정을 투여하는 센티멘털리즘에서 벗어나 조금 초연해질 수 있게 되었네요. 동백나무에게 슬픔의 눈길보다는 격려와 성원의 눈길을 보낼 수 있게 되었네요.
자, 우리 동백 숲으로 가셔요. 동백꽃과 동박새가 본능적으로 벌이는 잔치에 가셔요. '선운사'가 자동으로 흥얼흥얼 나올 지도 몰라요. 그러나 이젠 이 노래가 주는 애절함에 흠뻑 빠졌다가도 가볍게 빠져나올 수 있겠지요? 그러면 우리네 마음도 말끔히 씻겨 있겠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봄을 노래하는 시를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소월 시 봄밤 읽기 (31) | 2023.04.02 |
---|---|
김용택 시 봄날 읽기 (28) | 2023.04.01 |
이장희 시 봄은 고양이로다 읽기 (40) | 2023.03.30 |
조동진 시 제비꽃 읽기 (21) | 2023.03.29 |
정호승 시 봄길 읽기 (26) | 2023.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