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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용택 시 섬진강 11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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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님의 시 '섬진강 11'을 읽습니다. 이 설레는 봄날, 이 시는 삶의 어떤 국면을 우리에게 보여줄까요? 이 시를 읽으며 김용택 시인님이 퍼올려준, 반짝이는 섬진강 물로 우리 함께 독서목욕을 해봅시다.

 

1. 김용택 시 '섬진강 11' 읽기

 

섬진강 11

- 다시 설레는 봄날에


- 김용택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곱게 지켜
곱게 바치는 땅의 순결,
그 설레이는 가슴
보드라운 떨림으로
쓰러지며 껴안을,
내 몸 처음 열어
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
혁명의 아침같이,
산굽이 돌아오며
아침 여는 저기 저 물굽이같이
부드러운 힘으로 굽이치며
잠든 세상 깨우는
먼동 트는 새벽빛
그 서늘한 물빛 고운 물살로
유유히.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김용택 시집 「섬진강」(창작과비평사) 중에서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님은 1948년 전북 임실 태생으로 21세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2008년 퇴임할 때까지 자연과 아이들과 호흡하며 시를 썼습니다.

 

1982년 시인으로 등단, 시집 「섬진강」, 「맑은 날」, 「꽃산 가는 길」,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나무」, 「울고 들어온 너에게」 등을 냈고,  소월시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 많으시고 쾌활하시며 매사에 거침새가 없고, 사람들 간에 허심탄회하신 마음의 정갈하심, 끝없이 삶에 대해 낙천적이신 어머님은 내 나머지 삶의 지침이 될 것이다.

- 위 시집 중에서

 

이 문장은 1985년에 나온 시집 「섬진강」 뒤쪽에 김용택 시인님이 '후기'로 적은 글입니다. 세월이 흘러 누렇게 바랜 시집의 종이에 찍힌 글이지만 광채를 발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 문장이 김용택 시인님의 시에 가까이 다가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2. 먼동 트는 새벽빛 고운 물살로 당신이 왔으면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김용택 시인 '섬진강' 중에서

 

당신, 하고 쉼표를 하나 찍은 걸 보니 조금 다급한 분위기가 일어납니다. 여유 있게 당신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내일모레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에 왔으면 하는 시인의 간절함이 느껴지네요. 

 

지금 당장, 바로 당신이 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강처럼요. 시인이 평생 절친인 저 섬진강처럼요. 그 땅에 강이 처음 흐르는 상상을 합니다.  '대지를 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은 강이기도, 당신이기도, 희망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당신은 '보드라운 떨림으로 / 쓰러지며 껴안을' 당신입니다. 당신은 나를, 대지를 '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입니다. 시인은 그렇게 간절하게 강을, 당신을, 희망을 품고 있었네요.

 

그런 소중한 당신은, 내가 품고 있는 그런 소중한 희망은 다른 때가 아니라 이런 봄날에 올 것 같습니다. 

 

이 시의 작은 제목이 '다시 설레는 봄날에'인데, 봄날에 시인은 이렇게 그리움에 차 있습니다. 겨울 동안 추위에 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지내다가 밖에 뽀록뽀록 무언가 싹이 트는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시인은 자꾸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것만 같습니다.

 

봄을 기다립니다. 봄은 '혁명의 아침같이 / 산굽이 돌아오며' '부드러운 힘으로 굽이치며 / 잠든 세상 깨우는 / 먼동 트는 새벽빛'입니다. 바로 강처럼, 당신처럼요. 누구라도 강 같은, 봄 같은 희망을 품고 기다리고 있겠지요? 빗방울이네에게도 그렇게 왔으면 하는 것에 생각해보는 봄밤입니다.

 

당신당신이왔으면김용택시중에서
당신, 당신이 왔으면 - 김용택 시 중에서

 

 

3. 당신, 당신에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빗방울이네도 섬진강을 좋아합니다. 섬진강에 갈 때는 삶의 내면이 궁금할 때인 것 같습니다. 도시의 일상에서 쌓인 먼지가 희망을 덮어버리려할  때, 그 먼지가 '나의 길'을 희미하게 지워버리려할 때 섬진강에 갑니다. 그 기다랗게 반짝이는 친구가 무언가 다정하게 한 마디 말해줄 것만 같아서입니다.

 

하동에 간다는 것은 섬진강에 간다는 말이며, 화엄사나 쌍계사에 간다는 것은 섬진강에 간다는 말입니다. 그 언저리에서는 섬진강의 눈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섬진강은 어디에나 슬그머니 따라붙어 어슬렁거립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밀접한 관찰자가 되어 또는 말 수 적은 친구가 되어 오랜시간 동행하다보면, 빗방울이네가 섬진강인지 섬진강이 빗방울이네인지 모호해집니다. 마침내는 그렇게 맑고 낮은 섬진강이 되어 세상에 흐르고 싶어집니다. 그리하여 당신, 당신에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봄날의 햇살 같은 시를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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