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님의 시 '봄밤'이 왔습니다. 김소월 시인님의 '봄밤'은 어떤 밤일까요? 행복한 밤일까요? 힘든 밤일까요? 그만의 봄밤 속으로 우리 함께 들어가 마음을 씻고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소월 시 '봄밤' 읽기
봄밤
- 김소월
실버드나무의 검스러한 머리결의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나래의 감색(紺色) 치마에,
술집의 창옆에, 보아라, 몸이 앉았지 않은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어라.
아무런 줄도 없이 섧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 김소월 시집 「소월의 명시(名詩)」(한림출판사) 중에서
2. '몸이 앉았지 않은가'
김소월 시인님(1902~1934)의 시 '봄밤'은 1921년 4월 9일 동아일보에 처음 발표된 시입니다. 시인님이 20세에 쓴 시입니다. 위의 책 「소월의 명시(名詩)」에 따르면, 고향 평북 구성을 떠나 서울의 배재고보에 다닐 무렵 김소월 시인님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우수한 시편들을 썼다고 합니다. 이 시기가 그의 나이 19, 20세 때입니다.
그대는 '봄밤'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먼저 1연을 함께 읽어볼까요?
실버드나무의 검스러한 머리결의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나래의 감색(紺色) 치마에,
술집의 창옆에, 보아라, 몸이 앉았지 않은가.
- 김소월 시 '봄밤' 1연
1연에서 세 가지 사물이 등장합니다. 실버들, 제비, 술집입니다. 실버들은 거무스레한 머릿결처럼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제비의 깃나래를 치마라고 했네요. 그 치마의 색깔은 감색, 즉 검은빛을 띤 푸른색입니다. 그리고 술집의 창옆이 등장합니다.
보아라, 몸이 앉았지 않은가.
- 김소월 시 '봄밤' 중에서
이 구절이 이 시의 '울음터'입니다. 그중에서도 '몸'이라는 단어는 이 시의 눈입니다. 이 한 구절은 지금까지 봄의 약동을 표현한 구절 중 가장 현란한 문구의 하나로 꼽힐 것입니다. '몸'이 앉는다고 합니다! 거무스레한 실버들 가지에 싹이 트려는 순간입니다. 그것을 '몸'이 앉았다고 하네요. 제비의 깃나래 감색이 윤기를 더합니다. 이것을 '몸'이 앉았다고 하네요. 생명이 약동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온갖 생명있는 것들은 ‘몸’으로 하나가 되네요!
그런데 술집의 창옆에 몸이 앉았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요? 누군가 술집 창옆에서 연애를 하고 있나 봅니다. 봄날이니까요. 아니 봄밤이니까요. 이 청춘의 약동을 보고 거기에 몸이 앉았다고 하네요. 이때 이런 말은 얼마나 다정하고 적절한지요.
3. 서러움을 덮어주는 보드라운 습기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어라.
아무런 줄도 없이 섧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 김소월 시 '봄밤' 2연
1연에서 봄의 약동, 생명의 약동을 노래한 소월은 2연에서 자신을 봅니다. 조용한 봄밤의 바람소리는 얼마나 조용한지요. 그래서 그 바람소리는 시인의 울음이며 한숨으로 들립니다. 왜 그럴까요? 왜 소월은 이렇게 소리도 없이 울며 한숨지을까요?
아무런 줄도 없이 섧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 김소월 시 '봄밤' 중에서
그랬군요. 빗방울이네는 이 ‘줄도 없이’를 평론가들의 주석인 ‘까닭도 없이’로 읽지 않으렵니다. 김소월 시인님은 연줄도 없다고 합니다. 세상의 사물들은 약동하는 봄밤, 세상으로 약진하고픈 자신에게는 아무런 줄이 없어 서럽다고 합니다. 자신을 이끌어주고 믿어줄 누군가가 애타게 그리운 밤, 그런 밤은 얼마나 앞이 캄캄하고, 그래서 얼마나 새까만 밤이었겠는지요.
김소월 시인님은 2세 때인 1904년 일본인들로부터 구타당한 부친이 정신이상자가 되고 그 불운으로 나중에 돌아가시는 불행한 일을 겪게 됩니다. 그 후 소월은 광산을 운영하던 할아버지 집에서 성장합니다. 그의 어린 시절과 청춘시절은 이렇게 불우한 환경이었습니다.
이 시가 발표된 1921년은 고향 오산학교 중학부를 졸업하던 시기입니다. 그가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기 직전의 해입니다. 이미 1916년 14세 때 결혼해 일가를 이루기도 했던 그에게는 새로운 약동이 절실한 시기였네요. 그러나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던가 봅니다. 그런 그에게 그해 4월의 봄밤은 외롭고 서러운 밤이었겠네요. 시인의 서러움에 젖어 속절없이 우리도 저마다의 서로움을 꺼내 점점 서러워집니다. 그런데요,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 김소월 시 '봄밤' 중에서
이렇게 김소월 시인님은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설 각오를 다지는 것 같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를 깨우는 건 봄밤의 보드라운 습기입니다. 그 습기가 떠돌며 땅을 덮는다고 하네요. 이 보드라운 습기가 꽁꽁 언 시인의 마음도 데워줄 것만 같네요. 이 마지막 행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얼마나 슬펐겠는지요.
이 보드라운 습기가 101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져 우리의 메마른 몸과 마음도 감싸주는 봄밤입니다. 나와 반대로 가는 다른 것들과 달리 언제나 나와 동행하며 도닥여주는 자연이 있었네요. 그대, 이제 이 봄밤 좀 견딜만하시지요? 그대에게도 보드라운 습기가 오고, 거기에 '몸'이 앉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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