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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상용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by 빗방울이네 202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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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 시인님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만납니다.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려는 소망을 담은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상용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읽기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1902~1951, 경기도 연천)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를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 건
웃지요.
 

- 「월파 김상용 평전」(김학동 지음·조용훈 편저, 국학자료원, 2019년) 중에서

 
김상용 시인님(1902~1951)은 경기도 연천 출신으로 1926년 동아일보에 시 '일어나거라'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릿교대학 영문과를 마치고 모교인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를 거쳐 이화여대 교수 등을 역임했습니다. 시와 산문, 번역시와 번역소설 등을 신문과 잡지 등에 다수 발표했습니다. 저서로 1939년 발간된 첫시집 「망향」과 산문집 「무하선생방랑기」 등이 있고, 1983년 「월파 김상용 전집」이 출간됐습니다.
 

2. 도시의 삶이 고단할 때 돌아가고 싶은 자연

 
김상용 시인님의 대표작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시인님의 첫시집이자 마지막 시집 「망향」(1939년) 첫시로 실렸습니다. 이에 앞서 이 시는 1934년 「문학」 2월호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시인님 33세 즈음이네요.
 
위의 책에 실린 시인님의 연보를 보니, 시인님은 1928년부터 이화여전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던 교수였습니다. 1930년에 고향인 경기도 연천 시골집의 가족이 모두 서울 성북동으로 이사했고, 서울에서 장남(1929년)과 차남(1934년)이 태어났습니다.
 
서울 도회지에서의 33세 가장(家長)의 삶은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타던 시간, 이런저런 고민도 많았을 시간이었네요. 이런 시간, 그래, 차라리 촌으로 내려가 자연 속에 파묻혀 삶을 관조하면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젖어들었겠지요?
 
도시의 삶에서 지쳐 몸과 마음이 고단해지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포옥 안기고 싶은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네요.
 
남으로 창을 내겠소 /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 호미론 풀을 매지요

- 김상용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중에서

 
시 제목에 이어 첫행도 '남으로 창을 내겠소'입니다. 시인님은 시골에 내려가서 최우선 순위가 바로 '남으로 창을' 내는 것이네요.
 
남향집은 인간과 자연이 가장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해의 고도에 따라 여름에는 햇볕이 덜 들어 시원하고 겨울에 깊숙이 들어 따뜻합니다. 겨울 북서쪽에서 부는 찬바람을 등지고 막고, 여름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남쪽 큰 창으로 들어와 시원합니다. 남향집은 그야말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사는 살 수 있는 집이네요.
 
'한참갈이'는 소로 잠깐이면 갈 수 있는 자그마한 밭을 말합니다. 그런데 시인님은 소도 없이 일삼아 운동삼아 직접 '괭이로 파고 호미로 풀을' 맨다고 합니다. 강냉이(옥수수)도 심고 호박도 심겠지요? 욕심없는 삶, 자족의 삶이네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 새 노래를 공으로 들으랴오 / 강냉이가 익걸랑 / 함께와 자셔도 좋소

- 김상용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중에서

 
'구름이 꼬인다'. 유혹에 꼬이는 것을 말하네요. 그러나 시인님은 세속의 물질이나 명예 같은 '구름'의 유혹에 '갈리 있소'라고 단호히 거부하네요.
 
'새 노래를 공으로 들으랴오'. 새 소리, 시냇물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는 누구나 소유할 수 있습니다. 아무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도회지에서는 돈으로 사야하는 것이 많지만요. 자연에 동화되어 여유있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강냉이가 익걸랑 / 함께와 자셔도 좋소'. 네! 감사합니다 시인님! 참 다정한 마음, 정다운 말투입니다. 여름 평상에 둘러앉아 입을 '아' 하고 커다랗게 벌리고 샛노랗게 익은 강냉이를 저마다의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네요. 구수하고 달콤한 강냉이 향이 훅 끼치네요. 소박하고도 따뜻한 삶의 향기네요.
 

"웃지요"-김상용시인님의시'남으로창을내겠소'중에서.
"웃지요" - 김상용 시인님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중에서.

 

 

3.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시인님은 ···

 
왜 사냐 건 / 웃지요

- 김상용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중에서

 
이 시의 백미로 꼽히는 구절입니다. 
 
위 책에 따르면, '왜 사냐 건'은 「문학」지에 처음 발표됐을 때(1934년)는 '왜 사느냐거든'이었는데, 시인님이 시집 「망향」(1939년)에 실으면서 '왜 사냐건'으로 바꾸었습니다.
 
누가 자기를 찾아와서 이런 시골에서 왜 사느냐고 물어본다면 자신은 웃는다고 합니다. 대답은 안 하고, 대답 대신 웃는다고 하네요.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동무하며 욕심없이 소박하게 사는 삶, 이웃에게 나의 것을 나누며 정답게 사는 삶, 그런 자연스러운 삶의 아름다움을 세속의 잣대로 아름다움의 가치를 재는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지요? 참으로 그냥 웃는 수밖에요.
 
이렇게 자연으로 돌아가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고 했던 시인님은 그렇게 원했던 자연으로 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피란을 왔던 시인님은 1951년 6월 한 연회의 음식(게)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 애석하게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시인님의 유해가 모셔진 망우리 묘소의 묘비에는 시인님의 시 '향수'가 새겨져 있습니다.
 
향수
 
- 김상용
 
인적(人跡) 끊긴 산속
들을 베고 
하늘을 보오.
 
구름이 가고
있지도 않은 고향이 그립소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노천명 시인님의 시 '남사당'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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