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古稀)'의 뜻과 유래를 알아봅니다. 이 단어가 들어있는 두보 시인님의 시 '곡강이수'도 만나봅니다. 삶의 무상함에 대해 노래한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고희(古稀)' 뜻과 유래
'고희(古稀)'는 옛 '고(古)', 드물 '희(稀)'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래로 드문 나이'란 뜻으로 나이 70세를 일컫는 말입니다.
'고희(古稀)'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인생을 일흔까지 산다는 것은 옛날부터 드문 일이다)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어디에 나오는 문장일까요? 당나라 두보 시인님(712~770)의 시 '곡강이수(曲江二首)'에 나오는 시 구절입니다.
혹시 어떤 분은 '고희(古稀)'가 공자 님(기원전 551~기원전 479년)의 「논어」에 나오는 말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논어」의 위정 편을 봅니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우뚝 섰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 「논어한글역주1」(도올 김용옥 지음, 통나무, 2008년 초판, 2010년 3쇄) 중에서
이렇게 「논어」 위정 편에는 15세(志學), 30세(而立), 40세(不惑), 50세(知天命), 60세(耳順), 70세(從心)까지 나옵니다.
70세를 '종심(從心)'이라 했는데, 마음이 욕망하는 바를 따라도 '불유구(不踰矩)', 즉 법도(矩)를 벗어남(踰)이 없다(不)는 말이네요. 위 책의 저자인 도올 김용옥 님은 이 경지를 '진정한 인간의 자유'라고 감탄했네요.
그러니까 공자 님의 논어에는 70세를 '종심(從心)'이라 했고, 또 후세들이 두보 시인님의 시를 보고 ‘고희(古稀)’라고도 했네요. 그 말고도 70세는 '희수(稀壽)' 등으로도 불립니다.
이제 두보 님의 시 '곡강이수(曲江二首)'를 만납니다. 시 '곡강이수(曲江二首)'는 2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두 번째 시(제2수)에 등장합니다. 어떤 시일까요?
2. 두보 시 '곡강이수(曲江二首)' 읽기
곡강이수(曲江二首)
- 제2수
- 두보(712~770년, 당나라)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조회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 저당 잡혀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 매일 곡강에서 흠씬 취해 돌아오네.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몇 푼의 술 빚은 어디 가도 있지만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인생 칠십은 예전부터 드물다네.
穿花蛺蝶深深見(천화협접심심견) 꽃 사이 맴도는 호랑나비 보이다 말다 하고
點水蜻蜓款款飛(점수청정관관비) 강물 차는 잠자리는 유유히 나는구나.
傳語風光共流轉(전어풍광공유전) 봄 경치여, 우리 모두 어울려
暫時相賞莫相違(잠시상상막상위) 잠시나마 서로 어기지 말고 경치를 즐겨보자.
- 두시경전·杜詩鏡銓(두보 저, 양륜 편주, 이관성 역, 문진, 2013년) 중에서
3. '人生七十古來稀 - 인생 칠십 살기는 예부터 드문 일이라네'
위의 해석을 염두에 두면서 '독서목욕'의 흥으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두보 시인님은 24세 때 과거에 낙방한 이후 타향을 방랑하며 가난과 비애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 시는 두보 시인님 나이 47세 때, 겨우 미관말직(좌습유)을 얻어 벼슬을 할 때 지은 시입니다. 당시 두보 시인님은 나라의 쇠퇴와 기강이 흐트러진 조정, 자신이 올린 상소로 인해 관직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는 등 암담한 현실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시 '곡강이수'의 첫 번째 시의 마지막 구절은 미관말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시인님의 심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何用浮名絆此身(하용부명반차신) 어찌 헛된 명성에 이 한 몸 얽매랴
- 두보 시 '곡강이수 - 제1수' 중에서
자, 시인님의 이런 심정을 헤아리면서 '곡강이수'의 두 번째 시를 만납니다.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조정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 저당 잡혀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 매일 곡강에서 흠씬 취해 돌아오네
- 두보 시 '곡강이수 - 제2수' 중에서
벼슬을 한다 해도 삶이 궁핍한 상태입니다. 임금님과 아침 회의를 하고 와서는 봄옷을 저당 잡힌다고 하네요. 그것도 매일 말입니다. 이 시는 3월에 쓰인 시인데, 봄에 입어야 할 옷을 저당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상황이네요.
그런데 봄옷을 맡기고는 매일 술을 마셨네요. '진(盡)'은 '다하다' '극치에 달하다' '죽다' 등의 뜻이 있는데 '진취(盡醉)'했다고 하니 완전히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셨네요. 암담한 현실에 대한 실망과 이를 헤쳐가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수심이 깊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몇 푼의 술 빚은 어디 가도 있지만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인생의 칠십은 예전부터 드물다네
- 두보 시 '곡강이수 - 제2수' 중에서
율시에서 핵심내용은 이 3, 4구에 등장합니다. '심(尋)'은 여덟 자, 상(常)은 그 배인데 '尋常'은 '얼마 안 되는'의 뜻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몇 푼'으로 새겨봅니다.
4구가 '고희(古稀)'의 유래가 된 문장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산들 70을 넘기기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네요.
자, 3, 4구를 연결시켜 뜻을 새겨봅니다.
'몇 푼의 술 빚은 어디 가도 있지만 인생의 칠십은 예전부터 드물다네'
이 문장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3구의 마지막 글자인 '유(有)'와 4구의 마지막 글자인 '희(稀)'가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네요. '있고(有)'와 '드물다(稀)'. 외상 술값은 남아있고, 그걸 갚아야 할 사람은 드문, 혹은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네 삶은 그만큼 지천에 널린 몇 푼 되지도 않는 술값도 다 못 갚고 갈 정도로 짧다는 의미가 스며 있는 것 같습니다.
穿花蛺蝶深深見(천화협접심심현) 꽃 사이 맴도는 호랑나비 보이다 말다 하고
點水蜻蜓款款飛(점수청정관관비) 강물 치는 잠자리는 유유히 나는구나
- 두보 시 '곡강이수 - 제2수' 중에서
'심심(深深)'은 '깊이깊이'라는 뜻이니, '깊이깊이 보인다(深深見)'는 '보일 듯 말 듯하다'는 뜻이네요. '관(款)'은 '천천히'라는 뜻인데, '款款飛'이니 느리게 나는 모양을 나타냅니다.
세상사 번잡한 일에서 떠났을 때 보이는 풍광이 이 5, 6구입니다. '곡강이수'의 첫 번째 시 마지막 구절에 나온 '부명(浮名)', 즉 '헛된 명성'에 매달리는 이라면 이런 풍경이 눈에 들어올 리 없겠지요?
傳語風光共流轉(전어풍광공유전) 봄 경치여, 우리 모두 어울려
暫時相賞莫相違(잠시상상막상위) 잠시나마 서로 어기지 말고 경치를 즐겨보자
- 두보 시 '곡강이수 - 제2수' 중에서
7, 8구에서 눈에 띄는 건 '막(莫)'입니다. '막(莫)'은 '없다' '말다' '~하지 말라' '불가하다' 등의 뜻입니다. 여기서는 '~하지 말라'라고 쓰였네요. 그런데 이 '막(莫)'은 금지사(不, 勿, 莫) 중에서도 최상급입니다. 그래서 뜻은 '~하지 말라'보다 더 강한 어조인 '~하지 말지어다'가 됩니다.
그러므로 '막상위(莫相違)'의 뜻이 '서로(相) 어긋나지(違) 말지어다(莫)'가 됩니다. '상상(相賞)'은 '서로 즐겨 구경하다'는 뜻이니, '잠시라도 서로 즐겨 구경하라, 부디 서로 어긋나지 말고!'라는 어조네요. 왜냐하면 풍광(風光)은 우리 삶과 더불어(共) 쉼 없이 흘러가버리니까요.
그래서 풍광의 절정을 놓치지 말고 완상하라고 합니다. 봄날엔 꽃구경 가고, 여름날엔 바다구경 가고, 가을날엔 단풍구경 가고, 겨울날엔 눈구경 가고요. 우리네 인생은 짧으니까요. 예부터 70을 넘기기 힘드니까요. 그 70도 잠시(暫時) 잠깐 사이 지나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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