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길에 어디 가실 예정인지요? 저마다 추억이 어린 곳은 다 다르지만 오늘은 자갈치로 가보는 건 어떨까요? 자갈치를 소재로 한 시 한 편을 가슴에 품고 우리 자갈치로 가서 마음 목욕을 해보십시다.
1. 사람들은 자갈치에 왜 갈까?
부산의 상징적 공간으로 해운대, 광안리와 함께 자갈치가 빠질 수 없습니다. 자갈치시장은 우리나라 최대 수산물 시장이기도 합니다. 자갈치시장 구호는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인데, 정다운 자갈치 아지매들이 우리를 부르는 것만 같습니다.
자갈치시장은 부산 중구 남포동(영도대교)과 서구 충무동(공동어시장) 사이를 잇는 시장을 말합니다. 부산도시철도 1호선 남포동역이나, 자갈치역에 내려 지하도를 빠져나오면 불쑥 코앞에 자갈치시장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자갈치시장 주위에는 영도대교, 부평깡통시장, 멋진 야경을 보여주는 용두산공원, BIFF광장, 보수동 책방골목이 가까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자갈치시장만 집중해서 둘러보실 것을 권합니다.
자갈치시장에는 살아 펄떡이는 싱싱한 생선들, 온갖 음식의 맛들, 자갈치 아지매들의 시끄러운 고함소리,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어슬렁거리는 내외국인들 부딪힘들, 비린 맛의 해풍에 실려오는 뱃고동 소리와 갈매리 울음소리들이 어우러져 오감을 깨워주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샘솟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갈치시장을 제대로 느끼는 방법은 시장통을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자갈치는 만물이 거래되고 만정이 다정한 곳입니다. 무언가 꽉 차있는 것 같으면서도 홀연 텅 비어있는 것 같고, 수만 가지로 다채로운 것 같으면서도 불현듯 흑백인 듯 단조로운 것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삶과 그 삶의 경계에서 울려 퍼지는 신비로운 율동에 온몸을 맡기다 보면 몸속에서 불끈 힘이 솟는 곳입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오시든 추억에 젖어 자갈치 시장통을 한참 걷게 된다면, 다리가 아파 어디 앉을까 하고 둘러보게 되고, 그러면 당연한 듯 곰장어구이가 보이게 되고, 당신은 무엇에 홀린 듯 그 공간으로 쑤욱 빨려 들어갈 것이 분명합니다.
2. 석쇠 위의 곰장어처럼
이 시의 화자도 자갈치에 갔었네요. 그는 아주 오랜만에 자갈치에 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갈치에게 조금 미안해하는데, 뭐 하다 이제 왔노? 하며 캐어묻는 자갈치에게 자신의 변변치 못한 사정을 밝히지 못해 안절부절입니다. 함께 읽어보시죠.
자갈치 가자
- 박진규
오늘 퇴근길에 한 잔 어떤가?
우리 오랜만에 자갈치로 빠져봄세
요즘 운치가 예전 같지 않다 어떻다 하지만
우리 젊은 날의 노트 같은 파도가 펄럭대고 있잖은가
옛 미화당 자리를 지날 때쯤
어디 갔다 이제 왔냐고
오랜 외도 끝에 찾아온 지아비 보듯
바다가 샐쭉 토라질 거야, 그럼
요즘 왜 이리 사는 것이 고단하지 대충 눙치며
민망한 엉덩이부터 무작정 들이대는 거지 뭐
변방을 벗어나려 그리 발버둥 치다가
곰장어가 석쇠 가장자리로 자꾸 도망치듯
기실 변방만 헤대다 온 거 다 아는데
자갈치까지 와서 표정 관리하는 사람 있나
바닷바람이 머리카락 마구 헝클어도 그냥 둬
그렇다고 술기운에 몽땅 고백하면 안 돼
조강지처에겐 믿는 거 하나는 있어야 하거든
밑천 바닥났어도 또 기다려봐라 하는 거지 뭐
물론 자갈치도 이미 다 눈치를 챘겠지만
어두운 바다 쪽으로 칠칠 오줌을 갈기면
너 젊었을 땐 이랬다면서 큰 파도 몇 번 일으켜주지
아마 그때일 거야
그동안 안 쓰고 있던 몸속 어떤 근육들이
파르르 떨리는 걸 느끼게 될 걸
그래 맞아, 오늘 우리 자갈치 가자
- 박진규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박진규 지음, 신생 발간) 중에서
당신은 이런 곳이 있습니까? 당신 청춘의 체취가 묻어있는 곳.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방문해도 낯설지 않고 무턱대고 반가운 곳. 이 시의 화자에게 자갈치는 그런 곳이었네요. 질풍노도 청춘들이 이곳에서 잔을 부딪치며 미지로 뻗어갈 꿈을 키웠겠죠. 그러나 꿈이란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요?
그래서 그는 다시 자갈치 품속에서 취하고 맙니다. 그의 행동도 언어도 비틀거립니다. 바닷가에 오줌을 칠칠 갈겼다고 합니다. 체온이 오줌을 통해 빠져나가자 온몸이 부르르 떨렸겠네요. 그 순간 그는 젊은 시절의 푸릇푸릇했던 용기가 생각난 것 같습니다.
3. 당신의 자갈치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의 자갈치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자갈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갈치를 사랑하는 사람 수만큼의 자갈치가 있습니다. 당신의 자갈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자갈치 어떤가요?
책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부산 명소 연관 글을 더 읽어 보세요.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현종 시 방문객 읽기 (21) | 2023.01.12 |
---|---|
백석 레시피 - 가자미 (40) | 2023.01.12 |
김형석 교수 올바르게 사는 길 (34) | 2023.01.10 |
정호승 시 '수선화에게' 수선화가 없는 이유 (14) | 2023.01.08 |
부산 명소 - 남구 이기대 (22) | 2023.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