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문탠로드를 소개합니다. 문탠로드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거기 가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문탠로드 소재의 시를 한 편 가슴에 품고 우리 함께 마음 목욕하러 가시지요.
1. 일상에 지친 마음, 달빛에 꺼내 말리다
문탠로드는 부산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 언덕에 있는 산책로입니다. 지난 2008년 부산 해운대구청이 만든 산길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야트막한 산에 있는 오솔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길이가 2.2km이니까 꽤 길지요? 천천히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문탠로드(Moontan Road)라는 명칭은 우리가 흔히 건강을 위해 햇빛에 피부를 그을리는 선탠(Suntan)에서 따온 조어입니다. 달빛을 받으며 자신을 되돌아 보고 정서적 안정을 찾는 길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왜 달빛을 주제로 했을까요? 해운대 달맞이 언덕은 달이 유명합니다. 대한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지요. 남북한을 대표하는 명소 여덟 곳 중 하나입니다. 1930년대 경성방송국이 전국 청취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입니다. 이 8대 명소를 가사로 한 ‘대한팔경가’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거기에 명소들이 금강산, 한라산, 석굴암, 해운대 저녁달, 백두산 천지, 압록강 뗏목, 부전고원, 평양 순으로 등장합니다.
'대한팔경가'의 해운대 저녁달 부분의 가사를 볼까요?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有情)하다’. 해운대 저녁 달은 볼수록 그윽하고 조용하다고 하네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해운대 달맞이 언덕에 와서 달을 보며 밀어를 속삭였을까요? 속삭이고 있을까요?
문탠로드는 달맞이길 입구에서 바다 전망대, 달맞이 어울마당, 해월정, 달빛 나들목으로 이어집니다. 예전에 문탠로드 아래에서 바다를 끼고 시끄럽게 달리던 동해남부선 열차는 없어졌지만, 그 선로에 해운대블루라인파크의 해변열차가 있어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열차는 바다관람열차입니다. 일반 열차와 달리 바다 쪽을 향해 난 긴 의자에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대고 앉는 특별한 구조를 한 열차입니다.
열차를 타고 있으면 거대한 영화 스크린처럼 해운대 바다가 눈앞을 천천히 스쳐갑니다. 그 바다를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누구를 그리워할까요?
2.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
문탠로드 입구 오른쪽에는 시화 한 편이 서서 산책자들을 반겨줍니다. 박진규 시인의 시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입니다. 이 시는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기도 합니다. 해운대구청이 문탠로드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시화로 제작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함께 감상해 볼까요?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
- 박진규
달이 저 많은 사스레피나무 가는 가지마다
마른 솔잎들을 촘촘히 걸어놓았다 달빛인 양
지난 밤 바람에 우수수 쏟아진 그리움들
산책자들은 젖은 내면을 한 장씩 달빛에 태우며
만조처럼 차오른 심연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러면 이곳이 너무 단조가락이어서 탈이라는 듯
동해남부선 기차가 한바탕 지나간다
누가 알았으랴, 그 때마다 묵정밭의 무들이
허연 목을 내밀고 실뿌리로 흙을 움켜쥐었다는 것을
해국은 왜 가파른 해변 언덕에만 다닥다닥 피었는지
아찔한 각도에서 빚어지는 어떤 황홀을 막 지나온 듯
연보라색 꽃잎들은 성한 것이 없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청사포 절벽을 떨며 기어갈 때
아슬아슬한 정착지를 떠나지 못한 무화과나무
잎을 몽땅 떨어뜨린 채 마지막 열매를 붙잡고 있다
그렇게 지쳐 다시 꽃 피는 것일까
누구나 문탠로드를 미끄덩하고 빠져나와 그믐처럼 시작한다
- 박진규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박진규 지음, 신생)에서
3. 기진맥진한 무와 해국과 무화과나무의 말
이 시는 사스레피나무에서 발아된 듯합니다. 사스레피나무의 가느다란 가지에 촘촘하게 걸린 소나무 이파리가 시를 움트게한 듯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신기한 풍경이었으면 시인은 ‘달이 ~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시 초반부의 이 진술은 독자를 신비한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합니다.
문탠로드는 경사로입니다. 실제로 걸으면 점점 바다 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시인도 ‘만조처럼 차오른 심연으로 걸어들어간다’고 하네요. 어떤 아픔이 시인을 그렇게 데리고 가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상처입은 마음을 달빛에 태우면서 시인은 무엇을 만났을까요?
이 시에는 삶에 지쳐 기진맥진한 세 가지 사물이 등장합니다. 무, 해국, 무화과나무입니다. 철로 바로 옆에서 자라는 무는 열차가 지날 때마다 흔들려 자신과 땅 사이 틈이 자꾸 벌어지고 있습니다. 해국 꽃잎들은 강풍으로 심하게 생채기가 났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가파른 곳에 앙상하게 서서 마지막 남은 자식을 붙잡고 있네요.
그렇게 모두 지쳐 궁지로 가고 있었군요. 살기 위해 모두 죽을 힘을 다하고 있었군요. 모두 전쟁 치르듯 살고 있었네요. 그렇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고 다시 꽃피는 것이 삶이라는 성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부상병끼리 우리 어떻게 서로 미워할 수 있나요? 이 시는 이렇게 우리에게 묻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사랑할 수밖에요.
책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박진규의 시를 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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