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산 남구 이기대를 함께 걸어보실까요? 저마다 사연이 다르고 감성도 다르겠지요? 한적한 숲길을 홀로 걸을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요? 이기대를 소재로 한 시 한 편에 마음을 담그고 당신과 함께 이기대로 가서 마음 목욕을 해보려합니다.
1. 탄성 부르는 '이기대해안산책로'를 가다
이기대는 부산 남구 용호동에 있습니다. 장산봉(높이 225.3m)의 동쪽 바닷가에 있는 바위 절벽의 높은 대(臺)를 말합니다. 오늘은 이 이기대가 품고 있는 '이기대해안산책로'로 가보려고 합니다.
'이기대해안산책로'는 오륙도 선착장에서 농바위를 거쳐 어울마당을 지나 동생말까지 모두 4.7km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해안산책로는 기암괴석의 아찔한 절벽과 무성한 숲, 호수 같이 펼쳐지는 바다의 비경이 서로 숨박꼭질 하듯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나타나는 명소입니다.
예전에는 이기대의 이런 비경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파른 바위 절벽 위를 걸을 수 있도록 설치된 나무 데크와 절벽과 절벽을 이어주는 구름다리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위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도시의 산책자들은 바다와 숲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조화롭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저마다 탄성을 지르는 곳이지요.
2. 이기대 산책로에서 무엇을 보았나요?
우리 함께 이번 토요일 '이기대해안산책로'로 가 볼까요? 늦잠 자고 천천히 일어나 세수도 하지 말고 배낭도 메지 말고 모자 하나 푹 눌러쓰고 길을 나서 볼까요? 다만 이 시 하나를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이기대를 돌며
- 박진규
이기대를 한 바퀴 도는 해안길에 지렁이들이 나와 있다
언젠가 저 몸을 통과해야하리라
그러면 나는 부드러운 흙이 되어 해국으로 피어날 것이다
벌이 찾아와 입맞춤을 한다면
절벽 끝 석청으로 매달려 황홀해질 것이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었으니
그것이 약이 되어
좀 더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먼 옛날 솔향으로 바람 속에 흩어졌던 나와 동행하면서
언젠가 한번 와본 듯한 이 솔밭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면
- 박진규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박진규 지음, 신생) 중에서
시인은 이기대 산책로를 돌며 풍경 속에 비친 '자신'을 보았나 봅니다. 지렁이와 해국과 벌과 석청이라는 사물 속에 투영된 자기 자신을 보았나 봅니다.
이 시는 지렁이가 모티브가 되어 탄생한 것 같습니다. 산책로에 지렁이가 나와 있는 까닭은 무얼까요? 지렁이는 비가 많이 오면 흙속에 물이 차 밖으로 나옵니다. 너무 더워도 흙이 뜨거워져 밖으로 나옵니다. 밖도 뜨거우니 지렁이들은 피부가 말라서 숨을 못 쉬고 죽어갑니다. 그날 이기대 산책로에 그런 지렁이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3. '언젠가 저 몸을 통과해야 하리라'
그 지렁이들은 부식토나 미생물이 있는 흙을 먹기 때문에 창자 속에는 그런 흙이 가득합니다. 그런 지렁이의 생태를 떠올리니 아래의 이 구절이 쉽게 이해되시지요?
'언젠가는 저 몸을 통과해야하리라'
이 구절은 이 시의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 땅에 묻히게 되면 그것이 끝일까요? 우리는 죽으면 모두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환하게 된다는 엄밀한 자연의 법칙을 시인은 직시합니다.
시 속의 화자는 죽어 지렁이의 몸 속을 '통과'하여 '부드러운 흙이 되어' 해국의 거름이 되고, 해국의 꿀을 먹은 벌에 의해 석청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그 석청을 보약으로 먹게 되겠네요. 화자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으니 그 '부끄러움'의 성정을 보약으로 먹은 이는 더 부끄러워하는 이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그 보약을 먹은 사람도 이 시 속에 나오는 화자의 일부가 되는군요.
시인은 이 시에서 평소 부끄러움이 많은 자신의 성격을 떨치려 하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나 부끄러움이 더 많은 사람이 된다해도 '그것으로 족하다'고 합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이어서 이런 시인의 성정이 더 다정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시인은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스쳐가는 사람도 나와 분자적으로 뒤섞인 사람이 아닐까 하고요. 그런 인식이라면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미워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냥 가슴 먹먹히 함께 동행할 수밖에요.
당신에게 이기대의 사물들은 어떤 말을 걸어올까요? 4.7km의 절벽 위 해안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이 시로 따뜻하게 마음 목욕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박진규의 시를 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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