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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한용운 시 복종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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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시인님의 시 '복종'을 읽습니다. 시인님은 자유보다 복종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일까요? 이 시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복종에 대해 생각하면서 저마다의 마음을 맑히며 독서 목욕을 하십시다.

1. 한용운 시 '복종' 읽기


복종

-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야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금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랴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한용운시전집」(최동호 편, 서정시학) 중에서


선승이며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소설가인 한용운 님(1879~1944)은 충남 홍성 출신입니다. 법호는 만해, 법명은 용운, 호적상 본명은 한정옥입니다. 27세 때인 1905년 백담사에서 금연곡사에게서 득도(得度:재가의 사람이 출가하여 승려가 됨)했습니다.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최남선의 「독립선언서」에 '공약삼장'을 추가, 민족혼을 일깨운 분입니다.
옥중에서 쓴 「조선독립 이유서」는 대문장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명논설 「조선불교 유신론」을 통해 조선 불교의 낡은 정신을 비판하고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1926년 발간된 시집 「님의 침묵」, 소설 「흑풍」, 번역서 「삼국지」 등이 있습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됐습니다. 창작과비평사가 만해문학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 연애시라고요? '자유'에 숨은 뜻은?


위의 시 '복종'은 시집 「님의 침묵」에 실린 표기를 살린 것입니다. 1연 마지막행 '달금합니다'라는 표현이 눈에 띄지요? 많은 책에서 이 시를 소개하면서 '달콤합니다'로 바꿔 쓰고 있는데, 빗방울이네는 '달금합니다'는 표현이 더 좋습니다. 그대는 어떤지요? '달금하다'는 '감칠맛이 있게 꽤 달다'는 뜻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네요. 

'복종'을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한용운 시인님이 48세 즈음 쓴 시네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의 시네요.

시 '복종'은 소중한 한 사람에게 바치는 뜨거운 연애시인 것만 같습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야요

- 한용운 시 '복종' 중에서


스님인 시인님이 이리 뜨거운 연애시를 쓰셔도 되나 싶을 정도네요. 오로지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고, 그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금'하다고 합니다. 그대에게도 이렇게 사모하는 이가 있겠지요?

스님의 부처님에 대한 사랑, 오로지 진리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요, '복종'을 쓴 시인님이 독립투사로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며 우리 민족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만해 한용운 님이라는 점을 떠올립니다. 그런 시인님이 어찌 ‘자유’보다 ‘복종’을 좋아한다고 했을까요? 오히려 '남들은 복종을 좋아한다고 해도 나는 자유를 좋아한다'라고 외쳐야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요?

여기에 이 시의 묘미가 있었네요. 시란 모름지기 역설의 꽃밭입니다. 그래서 시에 등장한 ‘자유’에 복선이 깔려있음이 분명합니다. 과연 어떤 자유를 말할까요?

맞습니다. 바로 ‘허울좋은 자유’이겠네요. 일제가 우리 민족을 지배하고 예속하기 위해 내세웠던 달콤한 사탕발림 정책들, 시스템들, 구호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야요

- 한용운 시 ‘복종’ 중에서


이젠 이 첫구절의 의미가 아주 다르게 다가오네요. 이 시구 속의 '자유'는 인간존엄을 지켜주는 '참된 자유'가 아니었네요. 우리 선조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었던 일제의 ‘구속’이었네요. 자유라는 단어 속에 구속이 숨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지요?

이런 역설에 불현듯 놀란 우리는 자유와 복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네요. 당신이 누리고 있다고 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가?라고 시인님은 뜨거운 목소리로 묻고 있네요. 자유와 복종의 자리바꿈으로 인해 그 참뜻이 이리 선명하게 되새겨지네요. 참된 자유를 주는 '당신'에게 복종하고자 하는 시인님에게 복종하고 싶습니다.

그런데요, 이런 허울좋은 자유가 어찌 100년 전에만 있겠는지요? 지금 우리는 참다운 자유 속에 행복한지요? 자유를 구현한다는 구호를 앞세운 채 일상화된 억압과 폭행들, 편 가르기와 거짓말들 속에 우리는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요? 
 

한용운시복종중에서
한용운 시 '복종' 중에서.

 

 


3. 그 '새벽종'은 울렸을까요?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을 압니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때에는 나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과 같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중략)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

- 「만해 한용운 평전」(김삼웅 지음, 시대의창) 중에서

참으로 가슴이 저리는 문장입니다. 한용운 시인님이 시집 「님의 침묵」 마지막 페이지에 쓴 ‘독자에게’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시인님은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지 않다.”라고 합니다. ‘독자의 자손’의 시대에는 당신이 겪고 있는 온갖 억압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려야만 한다는 간절한 희망이 느껴지네요.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

- 한용운 글 ‘독자에게’ 중에서

 
과연 시인님이 말하는 ‘새벽종’은 울렸을까요? 그날의 시인님에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진정한 자유에 대해 생각하는 시 한 편을 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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