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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조지훈 시 완화삼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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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시인님의 시 '완화삼'을 읽습니다. 완화삼은 무슨 뜻일까요? 이 시는 과연 무얼 말하고 있을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 목욕을 하십시다.
 

1. 조지훈 시 '완화삼' 읽기

 
완화삼(玩花衫)

- 목월(木月)에게

 
-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우름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이냥 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 「조지훈 시선」(오형엽 해설, 지식을만드는지식) 중에서

 
조지훈 시인님(본명 조동탁, 1920~1968)은 경북 영양군 출신으로 1939년 「문장」에 '고풍의상' '승무'가, 1940년 '봉황수'가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박목월 박두진 시인님과의 3인 공동시집 「청록집」, 개인시집 「풀잎단장」, 「조지훈 시선」 「역사 앞에서」 「여운」 등을 냈습니다. 시론집 「시의 원리」, 수필집 「창에 기대어」 「시와 인생」 「지조론」 「돌의 미학」, 그리고 번역서 「채근담」 등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병으로 48세의 짧은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자유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1982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 되었습니다.
 

2. 시 제목 '완화삼'의 뜻은?

 
조지훈 시인님의 시 '완화삼'은 1946년 4월 「상아탑」에 처음 발표된 시입니다. 시인님의 청춘시절 26세 때네요. 
 
완화삼? 시의 제목이 아리송합니다. 한자로는 玩花衫. '완(玩)'은 희롱하다, 놀다, 사랑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삼(衫)'은 적삼 또는 옷이라는 의미가 있고요. 그래서 완화삼은 '옷깃에 스치는 꽃을 즐기다' 또는 '꽃물 든 옷/적삼을 좋아하다' 정도로 새겨집니다. 결국 꽃/자연을 가까이하며 사랑한다는 뜻이네요. 아래의 시구와 연결되네요.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 조지훈 시 '완화삼' 중에서

 
그리하여 우리는 먼길 가는 나그네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아니라 걸어서 가는 길입니다. 길가의 꽃잎을 소매 깃에 유유자적 스치며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정처없고 하염없어서 문득문득 자신조차 잊고 걷는 길일 것만 같습니다. 슬프고 가슴이 먹먹한, 애상적인 느낌이 드네요.
 
이 시가 쓰인 시대를 떠올려보면, 당시 시인님은 일제강점기 말기를 막 건너왔네요. 억압과 굴종의 암담을 벗어났겠지만 여전히 현실은 어둡고 혼란스럽기만 했겠습니다.
 
이 시에는 '목월에게'라는 작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조지훈 시인님(1920년생)보다 박목월 시인님(1915년생)이 다섯 살 위 형님이네요. 26세 지훈과 31세 목월은 이 시가 쓰이기 전 경주에서 만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그때 둘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겠는지요?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암울한 현실과 현실보다 더 캄캄했을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요.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 산새가 구슬피 우름 운다

- 조지훈 시 '완화삼' 중에서

 
'산새가 구슬피 우름 운다'라고 하네요. 시인님이 운다는 얘기네요. 냉혹한 현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시대의 장벽 앞에서 질식당할 것만 같은 시인님은 울고만 싶었네요. 누구라도 이럴 때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피가 끓는 청춘의 시간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빗방울이네도 이따금씩 삶이 풀리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 때 동해안과 남해안을 거쳐 서해안까지 한 바퀴 휘돌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현실의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나 하늘을 자유롭게 흘러가는 구름처럼 말입니다. 양팔을 길게 뻗어서 좁은 길가에 피어난 꽃들을 소매 깃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요.  
 
구름 흘러가는 /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 조지훈 시 '완화삼' 중에서

 
그렇게 고독을 벗 삼아 걷다 보면 고독덩이가 걷고 있는 것인지 내가 걷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디다. 빗방울이네가 지훈 님의 나이쯤 100킬로 군사훈련으로 밤낮을 걷다가 느꼈던 무상감이 떠오르네요. 강을 따라 걷다가 강물 속의 구름을 보았는데요, 지금 구름이 걷고 있는 건가, 구름이 나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답니다.
 

조지훈시완화삼중에서
조지훈 시 '완화삼' 중에서.

 

3. 젖은 마음, 달빛에 말렸을까요?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조지훈 시 '완화삼' 중에서

 
그렇게 걷다 보니 나그네, 지훈과 목월의 소매는 꽃잎에 풀잎에 젖어 꽃물이 풀물이 들었네요. 위의 시구에 나타난 인과관계대로라면, 나그네 긴 소매가 꽃잎에 젖었기에 술이 익어가고, 또 강마을에는 저녁노을이 진다고 합니다. 참으로 분위기가 고조되는 장면입니다. 그 나그네의 얼굴도 마음도 온통 붉게 타올랐겠네요. 그리하여 나그네와 자연은 붉게 붉게 혼연일체가 되었습니다.

 

이 두 구절이 이 시의 솟대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망연히 붉은 하늘을 바라보았을까요? 나그네는 그 순간 어떤 맹세를 했을 것만 같습니다. 자신과의 굳은 약속 말입니다.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이냥 하여 /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 조지훈 시 '완화삼' 중에서

 
그렇지만 나그네는 그 술 익는 강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지 않았네요.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에서 꽃은 나그네 자신의 시간, 청춘의 시간을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밤길이라도 나섰을까요? 달빛을 받으며 고요히 흔들리면서요.

 

그 달밤의 길 위에서, 언제나 정 많고 한이 많아 스스로 힘든, 당신의 다치고 젖은 마음을 고요한 달빛으로 좀 고슬고슬 말렸을까요? 그리고 잃어버렸던 자신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문득, 세상의 꽃을 벗 삼아 꽃물이 든 소매로 앞을 휘저으며 먼길 나서고 싶어지네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조지훈 시인님의 '완화삼'에 대한 박목월 시인님의 답시, '완화삼'의 짝궁인 '나그네'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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