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님의 시 '그리운 부석사'를 만납니다. 저마다의 사랑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호승 시 '그리운 부석사' 읽기
그리운 부석사
정호승(1950년~ , 경남 하동 출생 대구 성장)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指)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정호승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김영사, 2021년) 중에서.
2.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에 담긴 뜻
시 '그리운 부석사'는 1997년 발간된 정호승 시인님의 다섯 번째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의 제목이 된 시입니다.
시인님 40대 후반 즈음의 시네요.
사랑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시인데요, 가까이 다가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낯설고 돌발적인 시어들의 늪에 빠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시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겠지만, 오늘은 독서목욕이 낸 오솔길을 따라 시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제목 '그리운 부석사'에 나오는 부석사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기슭에 있는 절입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으로도 잘 알려진 아름다운 절입니다.
이 절의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는 '선묘각'이 있습니다.
다른 절에 없는 자그마한 전각입니다.
선묘각에는 선묘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선묘(善妙)는 이 절을 창건(676년)한 신라 의상대사를 흠모했던 당나라 처녀의 이름입니다.
의상대사를 사랑했던 이를 모시는 전각이 절에 있을 정도라면, 그 사랑은 예사 사랑이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 드네요.
어떤 사랑일까요?
부석사 홈페이지를 열었습니다. 거기에 '의상대사와 선묘 낭자의 전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전설은 중국 북송 때(988년) 편찬된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실려있다고, 부석사는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신라의 의상대사가 20세 때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는데, 서해 바다를 건너 당나라 등주(봉래)에 도착해 한 신도집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 집 딸이 선묘였습니다. 그녀가 뛰어난 용모의 청년 스님 의상에 그만 깊이 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이겠네요.
의상스님이 10년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가는 길에 선묘의 집에 들르지만 둘은 서로 엇갈리고 맙니다.
의상스님의 귀국 소식을 듣고 선묘 낭자는 뒤늦게 항구로 달려갑니다. 저 멀리 떠나는 배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발원(發願)합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 몇 번이든지 다시 환생하는 일) 스님께 귀명(歸命: 삼보에 돌아가 몸과 마음을 불도에 의지하는 일)하겠다는 것을, 대승을 배워 익혀 대사를 성취하겠다는 것을, 반드시 시주가 되어 스님을 돕겠다는 것을요.
그리고 귀국하는 의상스님의 황해 만리길을 호위하는 대룡(大龍)이 되기를 부처님께 빌었습니다.
낭자는 그렇게 말로만 기원한 것이 아니라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원대로 용이 되어 의상의 뱃길을 안전하게 지켰다고 합니다.
바다에 몸을 던지는 사랑,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을까요?
얼마나 간절하고 간절한 사랑이었으면, 용이 되는 기적의 가피(加被)를 받게 되었을까요?
그 사랑이란 어떤 온도, 어떤 농도, 어떤 깊이였을까요?
의상스님을 향한 이같은 선묘 낭자의 구원(久遠: 영원하고 무궁함)의 사랑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시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첫 행이 우리의 여린 가슴팍에 어퍼컷을 날리는 것만 같습니다.
빗방울이네가 평소 존경하는 시인님과 이 시를 함께 읽었는데, 이 첫 행에서 그 시인님은 "통쾌한 느낌이 들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부서지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라고도 했습니다.
사랑이 전부인 사랑, 사랑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랑, 목숨과 오롯이 바꾸어도 좋은 사랑, 목숨을 던져 가질 수 있는 사랑이라면 목숨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듯 던질 수 있는 사랑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이는 왜 통쾌하고, 또 부서지고 싶었을까요?
그 통쾌함에는 우리가 감히 닿지 못하던 낯선 세계를 만나는 기분이, 그 부서지고 싶음에는 우리가 스스로 갇히게 된 얽매임에서 해방되는 기분이 들어 있었을까요?
'죽어버려라'에는 한 줌 아쉬움도 미련도 없는 죽음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므로 '죽어버려라'는 '죽어라'보다 얼마나 '순애(殉愛)적 사랑'인지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랑 말입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라는 구절에 든 사랑이란, '죽을 만큼 사랑한다'의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만큼 죽는다'라고 하는 사랑이네요.
선묘 낭자의 사랑이 그런 사랑이었을까요?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이 낯설기 그지없는 2행은 어떤 장면을 말할까요?
'오죽하면'은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거나 대단하면'의 뜻입니다.
'오죽하면'은 앞의 1행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를 받는 부사인데, '생명과 바꿀 만큼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면'의 뜻으로 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은 불국토인 연화장세계에 살면서 그 몸은 법계에 두루 차서 큰 광명을 내비치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부처입니다.
그런데 이 부처님이 취하고 있는 두 손의 형상이 다른 부처님과 다릅니다. 한 손의 검지를 다른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런 손가락 형상은 '너와 나,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라는 낯선 구절이 이제 조금은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은 미혹한 세계에서 생사를 되풀이하는 중생을 건져내어 생사 없는 열반의 언덕에 이르게 하려는 비로자나불의 큰 자비(慈悲)가 담긴 구절일까요?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이 생경한 구절에서 우리는 '기다림'과 '목'을 연관시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죽음과 바꾸는 간절한 기다림, 그것도 모가지를 베는 참혹한 간절함에 대해 말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니 불현듯 프랑스 생드니 대성당의 초대 주교였던 성인(聖人) 드니(디오니시우스)의 기적이 떠오릅니다.
성인 드니는 이교도인 주민들에 의해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천사로부터 놀라운 권능을 받아 자신의 머리를 들고 손으로 받쳐 들고 걸어가는 기적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아미타불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원(大願)을 품고 성불하여 극락에서 교화하는 부처님입니다.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이 구절에 이르러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펼치겠다는 성인 드니과 부처님의 뜻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아미타불, 그들의 간절한 사랑을 겹쳐 보게 되네요.
3. '부석사'라는 절 이름에 깃든 사연
용이 되어 탈없이 바다를 건너도록 의상스님을 지켜준 선묘 낭자의 사랑은 그 뒤에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절 이름 '부석사(浮石寺)'에 그 사연이 들어있습니다.
뜰 '浮(부)'와 돌 '石(석)'이네요. '공중에 뜬 돌'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무사히 귀국한 의상스님은 왕명을 받아 봉황산, 지금의 부석사 자리에 절을 짓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이교의 무리들이 웅거해 스님을 방해했습니다.
이에 선묘 낭자가 큰 바위로 변하여 지붕 위에 떨어질까 말까 하는 무서운 기적을 일으켜 무리들을 쫓아냈습니다.
덕분에 의상스님은 절을 지어 화엄도량으로 부흥시켰고, 선묘 낭자는 석룡(石龍)이 되어 절 아래에 묻혔다고 합니다.
지금 부석사의 아미타불 아래에 그 용의 머리 부분이 시작되어 석등 아래까지 이어져 꼬리 부분이 묻혀있다고 하고요.
시 '그리운 부석사'로 다시 들어갑니다.
'새벽이 지나도록 / 마지(摩指)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이 시 속의 '나'는 선묘 낭자인 것만 같습니다.
선묘 낭자는 또 어쩐지 우리 자신인 것만 같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평생을 앉아 기다리는 사랑, 사랑하는 이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는 사랑,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는 사랑 속에 머물며 배회하는 사랑인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습니다.
선묘 낭자와 의상대사의 영겁의 사랑에 비친 저마다의 사랑 자리는 어떤 온도, 어떤 농도, 어떤 깊이냐고 말입니다.
그대 사랑의 자리가 보이나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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