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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정호승 시 술 한잔

by 빗방울이네 2023.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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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님의 시 '술 한잔'을 만납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는 구절로 많이 알려진 시입니다. 그대 인생은 그대에게 술을 잘 사주는가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호승 시 '술 한잔' 읽기

 
술 한잔
 
- 정호승(1950~ , 경남 하동)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 정호승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김영사 비채, 2021년) 중에서

 

2.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인생은 나에게 /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 정호승 시 '술 한잔' 중에서

 
'인생이 술을 사주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삶에서 받는 어떤 위로를 말하는 게 아닐까요? 삶이 나에게 주는 위로 말입니다. 시인님은 지금 매우 심경이 힘든 상태인 듯하네요.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걸까요? 삶이 힘들어 삶을 원망하고 삶에게 눈을 쏘아보고 있는 시인님입니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이렇게 울부짖는 것 같네요.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 정호승 시 '술 한잔' 중에서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지만, 시인님은 인생에게 술을 자주 사주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삶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로 다가오네요.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삶이 힘들 때마다 시인님은 이런 후미진 포장마차에 홀로 박혀, 아니 인생을 앞에 앉혀두고 술을 마시곤 했네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술이 점점 취하면서 시인님은 자신의 속내를, 앞에 마주 앉아 있는 인생에게 털어놓았을 것입니다. 이렇게요.
 
너는 왜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는 거냐!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아등바등하는데,
좌충우돌 엉금엉금 가는데
너는 왜 나에게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위로도 해주지 않는 것이냐!
왜 나를 고독의 궁지로 자꾸 몰아가느냐!
너, 인생이란 작자는 도대체 무엇이냐!
 
퇴근길이었을까요? 후미진 골목 포장마차에서의 이런 풍경, 참 흔한 풍경이기도 하네요. 삶에 지친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겠는지요.
 
눈이 내리는 날에도 /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 지는 날에도

- 정호승 시 '술 한잔' 중에서

 
돌연꽃은 돌에 새겨진 연꽃을 말합니다. '돌연꽃이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돌에 새겨진 연꽃이 어찌 피었다 질 수 있겠는지요? 인생이 나에게 술 한잔 사주는 일은 그런 불가능한 일에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네요. 엄청난 과장법이네요. 
 
이렇게 엄청난 과장법으로 투정 부리며 분을 푸는 거겠지요? 힘들 때면, 나에게도 '술 한잔' 사달라고 인생에게 생떼를 쓰며 조르며 가는 삶이겠지요? 인생에게 트집도 잡고 때로는 어리광도 부리고요. 이렇게 분이 풀리고 나면 며칠 잠잠하게 잘 지나가는 거죠. 그렇지 않습디까?
 
그렇게 인생과 나, 서로 밀당을 하면서 가는 삶이었네요. 나의 인생 아니면 누구에게 비비기라도 하겠는지요.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라고 트집 잡던 시인님은 곧 훨훨 털고 일어났겠지요? 비틀거렸겠지만, 그 미운 인생과 마침내 어깨동무하고 어두운 포장마차 골목을 빠져나왔겠지요?
 

정호승시술한잔중에서
정호승 시 '술 한잔' 중에서.

 

 

3. 안치환 노래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정호승 시인님의 시 '술 한잔'은 노래가 되었습니다. 2008년 안치환 가수님이 노래한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가 그것입니다. 이때 안치환 가수님은 아주 특별한 앨범을 냅니다. 앨범 제목이 '정호승을 노래하다'입니다. 이 앨범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님의 시들, '수선화에게' '우리가 어느 별에서' '이별노래' '내가 사랑하는 사람' 같은 주옥같은 시들을 가사로 한 노래 15곡이 들어있습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 정호승 시, 안치환 노래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그런 날에도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시 '술 한잔'의 구절들이 큰 변화 없이 노래의 가사로 원용되었네요.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를 제목으로 하고, 마지막 행에 새로이 추가했다는 점, 그리고 '눈이 내리는 그런 날에도'에 '그런'이 추가된 점 말고는 시 그대로네요. 
 
안치환 가수님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실리니까 시 구절들이 인생을 향하여 더 반항적인 느낌이 드네요. 어쩐지 전부 나의 사연 같아서 노랫말의 어느 행간에선 한숨이 폭폭 쉬어지기도 하네요.
 
그대도 그대 인생과의 밀당, 잘하고 계시지요? 너무 끌려가지도, 너무 끌고가지도 마시길!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정호승 시인님의 시 '국화빵을 굽는 사내'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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