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님의 시 '작은 국화분 하나'를 만납니다. 국화분을 보는 눈,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현종 시 '작은 국화분 하나' 읽기
작은 국화분 하나
- 정현종(1939~ , 서울)
용달차가 작은 국화분 하나를 싣고 간다
(동그마니)
아니다
모시고 간다.
용달차가 작은 국화분 하나를 모시고 간다.
용달차가 이쁘다.
(용달차가 저렇게 이쁠 수도 있다)
기사도 이쁘다.
- 「정현종 시전집2」(문학과지성사, 1999년) 중에서
2. 60세 시인님 마음의 눈에 비친 국화분은?
정현종 시인님의 시 '작은 국화분 하나'는 1999년 발행된 시집 「갈증이며 샘물인」에 수록돼 발표됐고, 「정현종 시전집2」에 실린 시입니다. 시인님 60세 즈음 나온 시네요. 시인님 마음의 눈에 작은 국화 화분은 어떻게 비칠까요?
시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일 것입니다. 오늘은 독서목욕이 낸 시의 오솔길을 따라 가봅니다.
용달차가 작은 국화분 하나를 싣고 간다 / (동그마니) / 아니다 / 모시고 간다
- 정현종 시 '작은 국화분 하나' 중에서
시인님은 거리에 산보를 나왔을까요? 화물 자동차(용달차)에 실린 국화 화분 하나가 시인님의 시야에 들어왔네요. 용달차는 국화분을 배달 중이었겠네요.
시인님, 용달차에 실린 작은 국화분 하나가 무슨 시가 되나요? 시가 되지요, 되고 말고요.
'동그마니'는 외따로 오뚝하게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용달차 뒤 화물칸에 다른 화물은 없고 국화분 하나가 달랑 실려있었나 봅니다. 넘어지지 않게 끈 같은 것으로 잘 고정했겠지요? 그래서 '동그마니'를 괄호 속에 넣었을까요? 국화분이 괄호 속에 안전하게 보호되어 있다는 느낌도 드네요.
그렇습니다. 이 '동그마니'에서 시가 발화합니다. 시인님은 그런 국화분의 양태를 보고 아, 국화분을 고이 모시고 가는 거네! 국화분이 실려가는 게 아니라 국화분을 모시고 가는 거네! 이거 시다!, 하셨겠네요. 우리 시인님은 얼마나 섬세하신지!
용달차가 작은 국화분 하나를 모시고 간다 / 용달차가 이쁘다 / (용달차가 저렇게 이쁠 수도 있다) / 기사도 이쁘다
- 정현종 시 '작은 국화분 하나' 중에서
'국화분 하나를 모시고 간다'는 인식은 시인님의 생각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네요. 평소 예사롭게 보이던 국화 화분 하나가 전혀 새로운 국화 화분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모셔진' 국화 화분은 보통의 국화 화분이 아닙니다. 사랑을 고백하고 생일이나 승진을 축하하는 꽃, 위무하는 입니다. 그 꽃을 건네는 이의 따뜻한 마음이, 그걸 받는 이의 감사의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화분이 됩니다. 이렇게 사람의 기분을 북돋아 주는 꽃입니다.
그런 생각에 보이는 국화분은 배달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모셔져 가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요. 그 꽃을, 아니 그 꽃의 '고와함'을 모시고 갈 수밖에요. 그건 아주 귀중한 보석 같은 것이니까요. 아니 보석보다 더 소중한 것이니까요.
시인님의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그 '고와함'과 연결된 양태들이 환해졌네요. 그 '고와함'을 모시고 가는 용달차도 곱고 이뻐졌네요.
'용달차가 저렇게 이쁠 수도 있다' 하고는 괄호 속에 넣었습니다. 그냥 '용달차가 이쁘다'라고만 하고 끝내기엔, 용달차가 이쁘게 보이는 이 현상이 스스로도 신기한 시인님입니다. 용달차가 이쁘니 그 용달차를 몰고 가는 '기사도 이쁘다'라고 하네요.
3. '사물의 본성보다 신체의 상태를 더 많이 나타낸다'는 말
시인님은 말씀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어떤 사물이 이쁘다는 것이 그 사물에 이쁨의 본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요.
국화 화분이 이쁘다고 했을 때, 국화 화분이 본질적으로 이쁨을 내포하고 있어서일까요? 우리가 국화 화분을 이뻐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의 관습이나 문화가 그 이쁨을 만든 게 아닐까요?
용달차나 용달차의 기사가 이쁘게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국화 화분'에서 촉발된 이쁨에 대한 시인님의 인식이 점점 부풀어올라 그 이쁨을 ‘모시고’ 가는 용달차와 기사까지도 이쁘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런 류의 이쁨이 용달차나 기사에게 본래 내재되어 있던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외부 물체에 대해 가지는 관념은
외부 물체의 본성보다도 우리 신체의 상태를 보다 많이 나타낸다.
- 「에티카」(스피노자 지음, 황태연 옮김, 비홍출판사, 2015년) 중에서
정신의 어두운 골짜기에 환한 빛을 비춰주는 보석 같은 문장입니다. 어떤 사물이 '아름답다' 또는 '추하다'라고 느끼는 우리의 인식은, 그 사물에 내재된 본성보다 우리 신체의 상태를 더 많이 나타낸다는 이 문장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요.
위의 스피노자 문장을 오늘 시에 대입하면 이렇습니다.
- 국화분에 대해 가지는 관념이 '이쁨'이라는 것은 국화분의 본성보다도 시인님의 신체의 상태를 보다 많이 나타낸다.
그러니 시인님의 신체의 상태(국화분에 대한 인식)가 국화분을 '모시고' 가는 것으로 보게 했고, 그 국화분을 모시고 가는 용달차와 기사도 이쁘다는 것으로 인식되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건 결국 시인님의 마음이네요. 참으로 시인님처럼 사랑의 눈으로 사물을 본다면 얼마나 세상은 따뜻한 곳이겠는지요. 우리 마음은 얼마나 따뜻해지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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