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가수님의 노래 '이런 밤'을 만납니다. 이 노래는 정태춘 박은옥 부부와 딸 정새난슬, 이렇게 온 식구가 화음을 맞춘 특별한 작품입니다. 함께 읽으며 흥얼거리며 마음을 맑히는 노래목욕을 하십시다.
1. 정태춘 박은옥 정새난슬 노래 '이런 밤' 읽고 듣기
이런 밤
- 노래 : 정태춘·박은옥·정새난슬, 작사·작곡 : 정태춘
온종일 불던 바람 잠들고
어둠에 잿빛 하늘도 잠들어
내 맘에 창가에 불 밝히면
평화는 오리니
상념은 어느새 날아와서
내 어깨 위에 앉아있으니
오늘도 꿈속의 길목에서 날개 펼치려나
내 방에 깃들인 밤 비단처럼 고와도
빈 맘에 맞고 싶은 낮에 불던 바람
길은 안개처럼 흩어지고
밤은 이렇게도 무거운데
먼 어둠 끝까지 창을 열어
내 등불을 켜네
긴긴밤을 헤매이다 다시 돌아온 상념은
내 방 한구석에서 편지를 쓰네
나도 쓰다만 긴 시를 쓰고
운 따라 흠, 흠 흥얼거리면
자화상도 나를 응시하고, 난 부끄럽네
이런 가난한 밤
이런 나의 밤
-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정태춘 지음, 천년의시작, 2019년) 중에서
2. 40년만에 가족이 부르는 ‘특별 레퍼토리’
노래 '이런 밤'은 1980년 발매된 정태춘 2집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에 첫 번째 곡으로 실린 작품입니다. 이 2집 앨범에는 '이런 밤'을 비롯 '가을 노래' '우리 동리 명창대회' '고향' '아침 찬가' '탁발승의 새벽노래' '사망부가' '그리운 어머니' '합장' 등이 실렸네요.
이 때는 정태춘 가수님 혼자 불렀습니다. 그런데 탄생 40여년 만에 '이런 밤'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정태춘 박은옥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인 「정태춘 - 사람들 2019」에서요.
이번에는 정태춘 가수님 혼자가 아니라 세 분이 함께 불렀습니다. 정태춘 박은옥 부부와 그 딸 정새난슬 가수님이 함께요. 정태춘 가수님의 온 가족이 함께 화음을 맞춘 노래는 '이런 밤'이 유일합니다.
1980년 2집에서 타이틀곡으로 올렸고, 2019년 40주년 기념앨범에 다시 수록할 정도로 정태춘 가수님 가족들이 사랑하는 노래네요. 정태춘 박은옥 정새난슬 3인이 함께 부르는 특별 레퍼토리, '이런 밤'은 어떤 밤일까요?
온종일 불던 바람 잠들고 / 어둠에 잿빛 하늘도 잠들어 / 내 맘에 창가에 불 밝히면 / 평화는 오리니
상념은 어느새 날아와서 / 내 어깨 위에 앉아있으니 / 오늘도 꿈속의 길목에서 날개 펼치려나
- 정태춘 박은옥 정새난슬 노래 '이런 밤' 중에서
기타와 피아노의 선율이 아름답습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도입부의 정갈하고 섬세한 기타 선율(기타 연주 유지연 님)은 귀를 개운하게 씻어주는 것만 같습니다.
이 구절은 정태춘 님 파트입니다. '나이든 목소리로 젊은 시절의 노래를 불러보면 어떻겠느냐'는 딸 정새난슬 님의 권유로 부른 노래입니다. 이때가 65세 즈음이네요. 노래에서 연주를 최대한 절제하여 더 잘 들리는 정태춘 님의 꾸밈없이 수수한 목소리가 반갑네요.
내 방에 깃들인 밤 비단처럼 고와도 / 빈 맘에 맞고 싶은 낮에 불던 바람
- 정태춘 박은옥 정새난슬 노래 '이런 밤' 중에서
여기서 정새난슬 님이 받습니다. 그이의 목소리는 뭐랄까요, 말갛게 쓸쓸한 느낌이랄까요? 아버지의 낮고 구수하고 질박한 목소리를 이어받은 딸의 파트는 40년 된 노래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네요.
길은 안개처럼 흩어지고 / 밤은 이렇게도 무거운데 / 먼 어둠 끝까지 창을 열어 / 내 등불을 켜네
- 정태춘 박은옥 정새난슬 노래 '이런 밤' 중에서
가족끼리 주거니 받거니. 이 파트에서 다시 아버지가 받았습니다. 먼저 두 소절을 아버지가 받고 나머지 두 소절은 부부가 함께 하는데 박은옥 님이 낮게 화음을 넣어주네요. 앞으로 치고 나오지 않는 그림자 같은 박은옥 님의 엷은 화음은 노래를 더욱 감미롭게 울려줍니다.
3. ‘이런 가난한 밤, 이런 나의 밤’
긴긴밤을 헤매이다 다시 돌아온 상념은 / 내 방 한구석에서 편지를 쓰네
나도 쓰다만 긴 시를 쓰고 / 운 따라 흠, 흠 흥얼거리면
자화상도 나를 응시하고, 난 부끄럽네 / 이런 가난한 밤 / 이런 나의 밤
- 정태춘 박은옥 정새난슬 노래 '이런 밤' 중에서
피아노 선율(키보드 연주 박만희 님)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인 것만 같습니다. 절제된 건반이 음율의 고랑과 이랑을 타고 흐르면서 노래의 볼륨을 더 두텁게 해주네요.
여기서 세 사람 목소리가 모두 등장합니다. 짧긴 하지만 각자의 독립 파트가 있어 세 보컬의 매력을 맛볼 수 있어 좋습니다. 마지막 소절, '이런 가난한 밤, 이런 나의 밤'에서 세 사람이 화음을 맞춥니다.
나도 쓰다만 긴 시를 쓰고 운 따라 흠, 흠 흥얼거리면
자화상도 나를 응시하고, 난 부끄럽네, 이런 가난한 밤, 이런 나의 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 부분이 가슴을 울립니다. 이 긴긴밤에 시를 쓰고 있었네요. 어제 쓰다만 긴 시를 쓰고는 운 따라 흥얼거리며 읽는다고 합니다. 감정을 잔뜩 넣어서 읽었을까요? 연극배우처럼요.
아무도 안 보는 줄 알았는데, 그런 나의 극적인 모습을 방안의 자화상이 다 보고 있었네요. 나의 자화상이긴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을 들킨 것이 부끄럽다고 하네요.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시를 쓰고, 그 긴 시를 운에 따라 높고 낮게 흥얼거리고, 자신의 그런 내면을 자화상에게 들켜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다 있네요. 참으로 빈 마음이네요.
'이런 가난한 밤, 이런 나의 밤'. 이런 가난은 '부유한 가난'이네요. 마음이 가난하고 순수한 '이런 나의 밤'이 편안하고 행복한 밤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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