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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정현종 시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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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현종 시인님의 시 '어디 우산 놓고 오듯'을 읽습니다. 과연 어떤 시일까요? 시인은 과연 어떤 발견으로 우리를 위로해 줄까요? 우리가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하는 어떤 문제를 다룬, 이 시를 함께 음미하며 마음목욕을 해보십시다.

1. 시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어디 우산 놓고 오듯

- 정현종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 「시인의 그림이 있는 정현종 시선집 - 섬」 (열림원)중에서


정현종 시인님(1939년~)은 철학(연세대 철학과)을 전공하신 분입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사물의 꿈」을 비롯 수많은 시를 통해 우리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엔 언론 기자로 일하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가 정년퇴임을 하신 분입니다.

'어디 우산 놓고 오듯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라고요? 과연 무엇을 노래한 시일까요?

2.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오생근 문학평론가님이 위의 시선집 발문에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그가 한 번은 정현종 시인님과 커피숍에 있었는데 <희랍인 조르바>가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아마 소설 <희랍인 조르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주제곡(Zorba’s dance)이었던 거 같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생각나시지요?

-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오 평론가님은 이날 커피숍에서 "정현종 시인도 영화의 그 장면이 생각나는지 앉은자리에서 잠시 두 팔을 들고 흥겹게 춤추는 동작을 취했다."라고 합니다. 마치 영화 속의 조르바처럼 덩실거리며 자유롭게 몸을 흔들었을 정현종 시인님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맞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정현종 님이 이처럼 자유인의 삶을 추구하는 시인이라는 점,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그의 시 '어디 우산 놓고 오듯'도 자유로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나를떠나면두루하늘이고사랑이고자유인것을정현종의시중에서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 정현종의 시 중에서

 

 

3. 행위의 작자인 '자아'는 없다


- '어디 우산 놓고 오듯 /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 이 고생이구나'

아시다시피 이 구절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집착 때문에 '고생'이라고 시인은 괴로워합니다. 이 말은 시인이 우리에게 "어디 우산 놓고 오듯 나를 놓고 와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에게 '자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아가 과연 있을까요? 지하철 승강장 벤치 같은 곳에 우산 놓고 오듯 내려놓고 올 자아가 있을까요?

희랍인 조르바처럼 진정한 자유의 삶을 추구하는 시인은 "자아도 없는데 왜 자아에 집착해서 그렇게 고생하느냐."라고 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소개해드리는 붓다의 문장은 '자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할 때, 행위의 작자(作者)로서 자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에 작자(作者)는 없고 행위와 그 결과, 업보(業報)만 있다는 것이 붓다가 말하는 '공(空)'의 의미다.
우리의 삶에 작자로서의 자아는 없고 오직 삶과 그 삶의 결과로 이어지는 5온(五蘊)의 상속만 있다는 것이다. (중략)
이러한 삶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러한 삶을 즐기면서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잡아함경」의 가르침이다.

- 「붓다의철학」(이중표 지음, 불광출판사) 중에서


이 인용문에서 우리는 '행위의 작자인 자아가 없고 행위의 결과만 있다.'라고 하는 붓다의 문장을 가슴에 꼭 안아봅시다.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빗방울이네'라는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을 쓰고 있는 '빗방울이네의 행위'만 있다는 말씀이군요. '이러한 삶을 즐기면서 잊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을 곱씹으니 깊이모를 위로가 느껴집니다.

그렇게 자아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정현종 시인님은 이렇게 된다고 시에서 말합니다.

- '나를 떠나면 / 두루 하늘이고 / 사랑이고 / 자유인 것을'

그렇게 생각하니 이 빗방울이네도 어쩐지 자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정현종 시인님의 통찰에 올라타서 ‘무엇(자아)’이 될지 집착해서 온갖 욕망에 휘둘리지 말고, ‘어떤 행위’를 할지 생각하면서 오늘을 좀 더 자유롭게 보내도록 해볼까요?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정현종 시인님의 다른 시를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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