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님의 시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를 만납니다. 우리의 영혼이 우주로 확장되면서 행복해지는 특별한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현종 시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 읽기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
- 정현종(1939~ , 서울)
은하수 너머 머나멀리, 여기서 천이백만 광
년 떨어진 데서 초신성이 지금 폭발중인데, 폭
발하면서 모든 별들과 은하군의 에너지 방출
량의 반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지구 은하계 너머, 나선형 M-81은 은하계에
서 발견된 특히 빛나는 이 초신성 1993J의 크
기는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만한데, 폭발하
는 별은 죽어가면서도 삶을 계속하고 있다.
그건 다른 별들을 만드는 물질을 분출할 뿐만
아니라 생명 바로 그것의 구성 요소들을 방출
하기 때문이다.
우리 뼛속의 칼슘과 핏속의 철분은, 태양이
생겨나기 전에, 우리 은하계에서 폭발한 이
별들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1993년 7월 18일자 기사
너 반짝이냐
나도 반짝인다, 우리
칼슘과 철분의 형제여.
멀다는 건 착각
떨어져 있다는 건 착각
이 한 몸이 三世며 우주
죽어도 죽지 않는 통일 靈物 -
일찍이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아니냐
그렇다면!
그 전설이 사실 아니냐
우리가 전설 아니냐
칼슘의 전설
철분의 전설 -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뼈여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
- 「정현종 시전집2」(문학과지성사, 1999년) 중에서
2. 밤하늘 별과 나는 철분과 칼슘을 나눈 형제
정현종 시인님의 시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는 1995년에 나온 시집 「세상의 나무들」에 실린 시입니다. 시인님 50대 중반 즈음의 시네요.
이 시는 미국 신문 'LA타임스'의 기사 한 꼭지를 인용하며 시작합니다.
1993년에 나온 이 기사의 요지는 까마득히 오래된 초신성(超新星)이 폭발하면서 칼슘과 철분이 나오는데 그것은 지금의 우리 몸의 구성요소와 같다는 것입니다.
초신성은 보통 신성(新星)보다 1만 배 이상의 빛을 내는 신성입니다. 초신성은 큰 별이 진화하는 마지막 단계인데, 급격한 폭발로 엄청나게 밝아진 뒤 점차 사라진다고 합니다.
당시 이 기사는 이같은 초신성이 은하계 너머 천이백만 광년 떨어진 아득히 먼 곳에서 폭발 중인데 생명의 구성요소들을 방출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우리 뼛속의 칼슘, 핏속의 철분입니다. 그런데요, 이 성분들이 태양이 생겨나기도 전에, 은하계에서 폭발했던 이 별들 속에 있었다는 문장은 우리를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요? 아, 상상할 수도 없는 그토록 오랜 전부터 저 별이 나와 같은 성분이라니!
이 경이로운 과학적 발견에 시인님은 얼마나 가슴 두근거렸겠는지요? 그 설렘과 놀라움으로 과감하게 그 신문 기사를 시의 서두에 인용하면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라는 제목의 시를 완성했네요.
3. '너 반짝이냐 나도 반짝인다'
너 반짝이냐 / 나도 반짝인다, 우리 / 칼슘과 철분의 형제여
- 정현종 시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 중에서
저 밤하늘의 별과 같은 성분이라는 사실을 과학기사로 접한 우리의 별 같은 시인님의 설렘이 이 도입부에서 그대로 느껴집니다. 아주 자랑스러워하고 있네요. 아주 으스대고 있네요.
밤하늘 아득히 멀리 있는 별아. 너 지금 반짝이냐? 나는 너와 같은 성분이니 나도 반짝인다. 당연히 우린 형제군!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시인님의 이 말투는 또 얼마나 다정한지요? 문득 우리도 저 아득히 먼 밤하늘 별의 형제로 와락 친해지는 느낌입니다. 뼈와 피를 공유하는 형 동생 말입니다.
멀다는 건 착각 / 떨어져 있다는 건 착각 / 이 한 몸이 삼세(三世)며 우주 / 죽어도 죽지 않는 통일 영물(靈物) -
- 정현종 시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 중에서
그러니까 우리는 우주와 외따로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주 그 자체라는 말이네요. 전체 우주는 하나의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네요. 시인님은 우리가 바로 전세(前世) 현세(現世) 내세(來世)라고 합니다. 죽음이란 스쳐가는 현상의 하나일 뿐, 우린 영원불멸이네요.
문득 이 구절에서 우리의 영혼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몰라서 겪는 매 순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어쩐지 가벼워지고 멀리 있는 풍경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일찍이 별 하나 나 하나 / 별 둘 나 둘 아니냐 / 그렇다면! / 그 전설이 사실 아니냐 / 우리가 전설 아니냐
칼슘의 전설 / 철분의 전설 - /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뼈여 /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
- 정현종 시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 중에서
행복합니다, 시인님. 우리가 별이라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내내 움츠리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빛나는 별과 형제인 줄도 모르고, 찬란하게 반짝이는 별인 줄도 모르고 땅만 쳐다보며 걸었습니다.
이제 나와 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제 밤하늘을 볼 때마다 시인님처럼 외치겠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뼈여,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정현종 시인님의 시 '한 꽃송이'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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