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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정태춘 시 5·18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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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가수님의 시 '5·18'을 노래합니다. 아니, 우리 노래하며 함께 웁니다. 1980년 발생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올해(2023년) 43주년입니다. 정태춘 시인님이 '잊지 않기 위해' 속사포처럼 쏟아내듯 썼다는 이 슬프고 아픈 시를 읽으며 우리 그날을 기억합니다. 
 

1. 정태춘 시 '5·18' 읽기

 
5·18
 
- 정태춘 작사·작곡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 위의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동 언덕배기의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 마라, 잊지 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누이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 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 마라, 잊지 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
 

- 정태춘 노래 에세이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천년의시작, 2019) 중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정태춘 가수님은 1954년 경기도 평택 출신으로 1978년 자작곡 앨범 「시인의 마을」로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그는 서정성과 사회성을 두루 아우르는 시를 국악적 특색의 음율에 실어 발표해왔습니다.
앨범으로는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1980), 「떠나가는 배(이어도)」(1983), 「북한강에서」(1985), 「정태춘 박은옥 무진 새노래」(1988),  「아, 대한민국···」(1990),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 「정태춘 박은옥 - 20년 골든」(1995), 「정동진/건너간다」(1998),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2002),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2012)  「사람들 2019」(2019) 등이 있습니다.
시집 「노독일처」(2004)를 냈고, 사진전 「비상구」를 열었습니다. 1979년 MBC가요대상 신인상, TBC방송가요대상 작사부문 상(촛불), 1996년 민족예술상,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가수, 시인, 싱어송라이터,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

 
정태춘 가수님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시인의 마을' '촛불' '북한강에서' ··· 그의 주옥같은 히트곡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또 정태춘 가수님이 '가요 사전 심의제도'를 없앤 주역이라는 점도 알고 계시지요?
 
그는 1909년 일제의 '출판법' 이래 90년 가까이 우리 대중가요사에서 강제되어온 가요에 대한 정부의 '사전 검열'을 없앤 일등 공신입니다. 아시다시피 그전에는 가요를 만들면 발표 전에 가사 내용 등을 정부 기관에서 검열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사가 처음과 바뀐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창작의 자유가 없었던 거지요. 그러나 그동안 이를 정태춘 가수님처럼 정면에서 반대한 이는 없었습니다.
 
정태춘 가수님은 1990년 이 같은 가요의 사전심의를 거부하며 '비합법 음반'(사전에 심의를 받지 않은 음반) 「아,대한민국···」을 발표하며 사전심의 폐지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1993년 두 번째 '비합법 음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발표했습니다. 결국 7년 간의 그의 외로운 투쟁은 1996년 헌법재판소로부터 '가요 사전심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 냈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노래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검열기구였던 공연윤리위원회도 해체되었지요.
 
그는 이처럼 사회성 짙은 한국적 포크를 추구해온 가수이자 시인, 싱어송라이터, 문화운동 및 사회운동가입니다. 오늘은 그의 노래 '5·18'을 듣습니다. '듣습니다'보다 '함께 웁니다'가 맞겠네요. 
 
이 울음 같은, 절규 같은 '5·18'의 노랫말은 1995년 9월에 탄생했습니다. 이 해에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렸는데, 이 행사의 대상을 받은  작품이 쿠바 작가의 '잊기 위하여'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잊기 위하여'는 진보 미술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5·18 묘역에서의  '안티 비엔날레'가 추진됐고, 정태춘 가수님이 '잊지 않기 위하여'라는 노래 제작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는 그의 문장을 함께 읽어 보셔요.
 
내 안에서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가사를 처절한 멜로디에 얹었다. 아직은 입에 착 달라붙지 않는 가사로 현장에 가서 노래했다.

- 정태춘 노래 에세이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천년의시작, 2019) 중에서

 
위에서 읽은 '5·18'의 노랫말이 정태춘 가수님의 내부에서 속사포처럼 쏟아졌다고 하네요. 그중 한 구절을 함께 감상합니다.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

- 정태춘 시 '5·18' 중에서
 

우리는 이런 정태춘 가수님 특유의 빛나는 서정성에 속절없이 폭 안겨버리고 맙니다. 참으로 그 서정성의 품에 안겨 나오고 싶지 않습니다.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가 노을을 찢었다 하네요. 찢었으니 붉네요. 아, 또 무엇을 찢었는지는 말해 무얼 하겠는지요? 이 시는 이렇게 사람의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 혼을 깨우는 힘이 있네요.
 

정태춘시5.18중에서
정태춘 시 '5.18' 중에서.

 

 

3. 세상의 불의와 비참을 견디지 못하는 자유인

 
빗방울이네는 2022년 5월 18일 개봉된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고영재 감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태춘 가수님의 노래 인생 40년을 담은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 투쟁,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늘 함께 했던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가 그의 노래들과 함께 화면 가득 흘러 나왔습니다.
 
대학가의 유명 극장에서였는데, 개봉된 지 좀 지나서였는지 관객은 세 사람이 전부였습니다. 세상의 불의와 비참을 견디지 못한 자유인의 그 빛나는 자유 정신 앞에서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습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정태춘 가수님의 아래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선이 악을 물리치고, 염치가 파렴치를 이길 수 있는 나라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언제나 조롱당해 왔습니다. 

- 광화문 촛불 집회(2016년 11월 12일) 발언 중에서

 
2016년 그 밤에 정태춘 가수님은 광화문 광장의 무대 위에서 이 문장을 읽고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불렀습니다. 그 1992년과 2016년, 그리고 그 2016년과 2023년. 우리는 그 사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나아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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