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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함민복 시 부부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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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님의 시 '부부'를 읽습니다. 이 시는 우리네 삶의 어떤 풍경을 담고 있을까요? 시인님이 건네주는 삶의 팁을 받아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해봅시다.
 

1. 함민복 시 '부부' 읽기

 
부부
 
-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 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중에서

 
함민복 시인님은 1962년 충북 중원 출신으로 1988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1990년 첫 시집 「우울씨의 일일」을 비롯, 「자본주의의 약속」 「말랑말랑한 힘」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시집 말고도 동시집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 등, 산문집 「미안한 마음」 등이 있습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김수영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긴 상을 들고 가는 부부의 길

 
오늘 읽는 시 '부부'는 함민복 시인님의 네 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에 실려있습니다. 이 시집은 2005년에 나왔는데, 제24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습니다. 2005년에 나왔으니 시인님이 40대 초반 즈음에 쓰인 시네요.
 
빗방울이네는 언젠가 지하철 승강장의 안전문 유리에 붙어 있던 이 시를 처음 읽었습니다. 이 시를 보고 맞다, 맞아, 부부는 그래야지, 하며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반성도 하고요.
 
그대는 이 시 '부부'의 어느 구절에 무릎을 쳤는지요? 
 
좁은 문이 나타나면 /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 걸음을 옮겨야 한다

- 함민복 시 '부부' 중에서

 
긴 상을 들고 가다가 좁은 문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합니다. 그때 뒤로 걷는 사람은 맞은편 사람을 '읽으며'(!) 걸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는 가는 쪽과 등을 져 있으니 뒤쪽 상황을 모르니까요, 맞은편 사람을 읽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표정, 눈짓, 몸짓 같은 정보를 재빠르게 종합해 등 뒤의 좁은 문의 상황을 간파해야 합니다. 어, 어, 어, 하다가는 상이 기울어지고 말겠네요. 
 
부부로 만나 가정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경우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잘 모르는 쪽으로 갈 때 다른 한 사람을 '읽으며' 가야 하겠네요. 읽히는 사람은 정확한 정보를 알기 쉽게 전해주어야 하겠고요. 서로의 안색(顔色)을 잘 살피며 가는 길이 부부의 길이네요.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 한 발 / 또 한 발

- 함민복 시 '부부' 중에서

 
요즘은 노부부도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걷는 풍경을 종종 봅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항상 남자가 멀찍이 앞서 가고 뒤에 보따리를 든 여인이 쫓아가는 양상이었습니다. 남사스럽게! 어째 마누라 손을 잡고 가노! 그때 우리네 아버지도 어머니와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 가며 다정히 가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함민복시부부중에서
함민복 시 '부부' 중에서

 

 

3. 부인에게, 남편에게 존댓말을 쓰나요?

 
그대는 부인에게, 또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쓰는지요? 빗방울이네가 평소 존경하는 지인이 엊그제 그랬습니다. 자기는 부인에게 존댓말을 쓴다고요. 100% 존댓말을 쓰는 건 아니고 절반쯤 섞어 쓴다고 하네요.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식사를 차린다고 고생하셨네요. 오늘 국 간이 잘 되었네요. 이 반찬이 아주 맛있어요. 우리 장미공원에 꽃구경 갈까요? 
 
특히 이 분은 부인에게 뭘 갖다 달라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이나 리모컨이나 커피나 방석 같은 거 말입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한다고 합니다. 이 분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존댓말을 사용하고 부인을 존중하는 자세로 대하니 서로의 관계가 더욱 좋아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런 관계가 좋은 이유는 또 있을 것입니다. 바로 자식들이 부모의 그 다정한 모습을 보며 성장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가족 사랑의 시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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