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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릴케 묘비명 장미여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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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님의 묘비명을 읽습니다. 이 묘비명은 릴케 시인님이 죽기 1년 전에 써둔 것입니다. 평생 삶의 비의를 들여다보며 살아온 시인님이 전해주는 삶의 통찰은 무엇일까요? 그 속에 마음을 담가 흔들며 마음을 맑히며 함께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묘비명' 읽기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겹겹이 싸인 눈꺼풀들 속
익명의 잠이고 싶어라.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r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 「릴케의 고통의 해석과 인문학 - 복면을 한 운명」(김재혁 지음, 고려대학교 출판부, 2014) 중에서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님(Rainer Maria Rilke, 1875~1926)은 체코 프라하 출신으로 51년 생애 동안 삶의 내면을 깊이 응시해 우리 존재의 본질을 밝히는 작품을 썼습니다. 1894년 첫 시집 「인생과 노래」를 출간한 것을 비롯, 「강림절」 「나의 축제를 위하여」 「꿈을 왕관을 쓰고」 「기도시집」 「형상시집」 「신 시집」 「후기 시집」 「진혼가」 「말테의 수기」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등을 냈습니다. 로댕의 전기를 집필했고, 폴 발레리와 앙드레 지드와 교류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2. 묘비명 솟대 '익명의 잠이고 싶어라'의 뜻은?

 
릴케 시인님의 묘비명은 석 줄입니다. 릴케 시인님 본인이 죽기 1년 전에 직접 썼고 그의 무덤 앞 묘비에 새겨져 있습니다. 좀 이른(?) 질문이겠지만요, 그대는 묘비명에 어떤 문구를 남기시려나요? 

자, 묘비명 초안을 쓰려고 합니다. 무엇이 떠오르나요? 사람들아, 지금 죽어 무덤 속에 있는 내가 말하노니, 내가 살아보니 어떠어떠하더라, 그러니 죽음 앞에 후회하지 말고 이러이러하게 살아라. 바로 이런 주제가 될 것입니다. 시인이라면 이런 식의 요약을 잘할 것 같네요. 왜냐면 그들 시인은 은유의 달인인 데다 평생 우리네 삶의 비의(秘義)를 들추어보고 거기서 익은 삶의 통찰을 시로 써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갔으니까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릴케 시인님의 묘비명을 읽겠습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겹겹이 싸인 눈꺼풀들 속 / 익명의 잠이고 싶어라.

- 릴케의 묘비명
 

참, 야단 났네요.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한마디도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네요. 분명 우리에게 이러이러하게 살아라는 멋진 메시지가 들어있을 텐데요. 우리의 의식이 모호함과 애매함 속으로 실종되는 순간이네요.

이 즈음, 위 책 「릴케의 고통의 해석과 인문학 - 복면을 한 운명」을 만났습니다. 저자는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님인 김재혁 시인님입니다. 그는 릴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수많은 릴케 연구서를 냈습니다. 김재혁 교수님의 안내를 받아 릴케 묘비명을 파헤쳐(?) 보렵니다. 먼저, 맨 마지막 구절부터 보시지요.

익명의 잠이고 싶어라

- 릴케의 묘비명 중에서

 
이 맨 마지막 구절이 이 시의 ‘솟대’ 같습니다. 이 구절이 릴케 시인님 스스로 자신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한 문장이자, 또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원문은 'Niemanders Schlaf'인데, '누구의 것도 아닌 잠'으로 이해됩니다. 왜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 싶어했을까요? 'Niemand'에 스민 뜻을 새긴 김재혁 교수님의 아래 세 문장을 함께 읽습니다.

- 그는 하나의 특별한 개체로서의 어떤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 특정 종교의 이념과 관습에 얽매이길 싫어하고 '자유' 그 자체를 추구한 시인의 모습이다.
- 바람과 햇볕이 자신의 친구가 되길 바라는 릴케는 그 자체로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원한다. 

 

그랬군요. 바로 자유이네요! 릴케 시인님은 릴케라는 개인이 아니라 익명 속으로 들어가 자유를 추구한다는 경이로운 문장이네요. 이 순간, 우리에게 익숙한 묘비명 하나가 떠오르네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아래 묘비명 말입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우리 가까이로는, 동시 '꽃씨', '꼬까신' 등을 쓴 최계락 시인님의 아래 문장도 떠오르네요. 
 
나는 나의 인생과 시에 대해 야망이나 야심을 가진 적이 없다.
 
이 분들은 세상의 평판 같은 개인의 욕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야말로 삶에서 추구해야 할 빛나는 가치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숨어있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삶의 비의'라고요. 
 

릴케묘비명장미여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묘비명.

 

 

3. '장미 = 모순 = 기쁨'의 뜻은?

 
그런데요, 묘비명에 '모순'이라는 단어는 왜 나와서 우리를 이리 혼란스럽게 할까요? 이에 대한 김재혁 교수님의 아래 문장을 봅니다. '모순'으로 해석된 원어는 'Widerspruch'입니다. 
 
'모순'은 다른 말로 역설이다. 말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거스르는 것이 바로 역설이요 이 지점이 개성 있는 예술가의 거점이다. (중략) 'Spruch' 즉 '언어'라는 공공의 장소에서 보통사람들과 어긋나는 말 'Widerspruch' 즉 '모순되는 말'을 하는 존재가 시인이다. (중략) 모순의 외침은 다른 말로 순수를 향한 열정이다.
 
그러니까 모순으로 번역된 'Widerspruch'은 역설, 즉 'paradox'를 떠올립니다. 우리의 통상적인 의견이나 생각(dox)을 넘어서는(para) 것입니다. 그것은 예술 본연의 지향점이자 자세겠네요. 그러므로 '모순'은 릴케 시인님의 시이며, 바로 자신이며, 그의 삶일 것입니다. 자, 릴케 시인님의 묘비명을 다시 읽습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겹겹이 싸인 눈꺼풀들 속 / 익명의 잠이고 싶어라.

 

이 해석에는 '기쁨' '욕망'을 뜻하는 원문의 'Lust'가 빠져있는데요, 이를 포함시키면 첫 번째 문장은 '장미 = 모순 = 기쁨'의 구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등식에서, '모순'에서 새겨본 바와 같이, '장미'와 '모순'과 '기쁨'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장미의 시인'인 릴케 시인님 자신이며, 그의 시이며, 그의 삶의 총화라는 것을 알 수 있겠네요. 그렇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장미를 한번 크게 호명한 뒤 자신은 익명 속으로 숨어 잠들겠다고 하네요.
 
이렇게 멋진 묘비명 뒤에 잠든 릴케 시인님,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래 문장을 곰곰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릴케에 의하면 죽음은 삶의 종말이 아니라 삶의 다른 한쪽이며 삶의 근원이다. (중략) 죽는다는 것은 삶의 원천으로의 회귀일 뿐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 선집 「두이노의 비가」(손재준 옮김)의 역자 해설 '릴케의 삶과 시 세계' 중에서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삶의 비의를 보여주는 시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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