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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춘수 시 꽃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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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님의 시 '꽃'을 만납니다. 김춘수 시인님의 대표작, 우리 모두 많이 애송하는 '국민시'의 대표 주자. 이 시는 삶의 어떤 신비로운 국면을 우리에게 보여줄까요? 함께 시를 읽으며 영혼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해봅시다.
 

1. 김춘수 시 '꽃' 읽기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갈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김춘수 시선」(이재복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중에서

 
김춘수 시인님(1922~2004)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1945년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전혁림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문학 등 예술운동을 펼쳤고,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 시화집 - 날개」에 시('애가')를 처음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비롯 「늪」 「기」 「인인」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김춘수 시선」 「꽃을 위한 서시」 「너를 향하여 나는」 「쉰한 편의 비가」 등 5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모두 18권의 시집을 냈으며, 시론집으로 「세계 현대시 감상」 「한국 현대시 형태론」 「시론」, 장편소설 「꽃과 여우」 등을 발간했습니다.
통영중학교 및 마산중학교 교사, 경북대와 영남대 교수, 제11대 국회의원, 한국시인협회장,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제2회 한국시인협회상, 자유아세아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대산문화상, 인촌상,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시 '꽃'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김춘수 시인님의 시 '꽃'은 1952년 발표된 시입니다. 시인님이 30세 즈음에 쓴 시네요. 교과서에 실려 '김춘수'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시인님의 대표 시입니다. 
 
언뜻 시 '꽃'은 연애 시로 읽힙니다. 그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를 '내'가 알아봐 주고, 또 그 반대로 '그'가 '나'를 불러 주어서 서로는 서로에게 잊히지 않는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이의 관심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어 사랑을 이루고 싶은 열망이 깔린 시로 볼 수도 있겠네요. 시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니까요.
 
그런데요, 이 유명한 시의 탄생에 스며있는 이야기는 무얼까요?
 
이 시는 김춘수 시인님이 중학교 교사로 있을 때 쓴 것입니다. 어느 날 혼자 교무실에 남아 있었는데 해가 지고 교무실이 어둑어둑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시인님은 하얀 꽃 한 송이를 발견합니다. 이렇게요.
 
저만치 누구의 책상 한쪽에 놓인 유리컵에 하얀 꽃 한 송이가 꽂혀 있다. 그 빛깔이 너무도 선명하다. 그러나 그 빛깔은 곧 지워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순간 시상이 떠오르고 시의 허두 한 마디가 나왔다.

- 「김춘수 문학앨범」(웅진출판, 1995) '내 인생 내 문학 - 통영 바다 내 마음의 바다' 중에서

 
이 문장에서 언급된 시의 허두(虛頭: 글이나 말의 첫머리) 한 마디가 바로 아래의 이 시구입니다. 시의 첫 구절은 신이 내려주신다고 했던가요? 이 허두가 시 '꽃'의 솟대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김춘수 시 '꽃' 중에서

 
그때 시인님이 발견한 하얀 꽃 한 송이는 곧 어둠에 묻히기 직전이었겠네요. 그 색깔은 너무나 선명한 하얀색이었지만 어둠에 묻히면 지워져 버릴 것입니다. 이때 시인님의 머릿속에서 번쩍 하고 시의 불꽃이 터진 것입니다. 아, 내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겠구나! 어떤 움직임에 불과하겠구나!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는 사물을 보이게 밖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 빛입니다. 언어는 사물을 드러내주는 빛과 같네요. 언어로 명명해주어야 그 존재가 드러나니까요. 그대도 나의 빛이네요. 그대가 있어야 내가 드러나니까요. 나도 그대의 빛이었으면요.

이런 생각으로 시 '꽃'을 읽어 보니 이 시에서 무언가 의미심장한 기운이 스멀거리며 나오는 것이 느껴지네요.
 

김춘수시꽃중에서
김춘수 시 '꽃' 중에서

 

 

3. 존재는 고독하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시 '꽃'에 대한 김춘수 시인님의 생각은 무엇인지, 궁금하지요? 시인님은 '꽃'을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전합니다.
 
인간의 존재양식이란 원래가 고독하다는 것이 특색이다. 존재로서의 의미부여는 살아가면서 자기가 해야 한다. 어떤 본질(존재로서의)이 미리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체로서의 존재양식은 그처럼 고독하다는 데 있다. 그 고독이 결국은 연대의식을 낳게 한다. 이런 따위의 관념이 이 시('꽃')의 테마가 되고 있다.

- 「김춘수 문학앨범」(웅진출판, 1995) '내 인생 내 문학 - 통영 바다 내 마음의 바다' 중에서

 
'고독'이라고 하네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해주지 않으면 고독해서 안 된다고 합니다. 그게 인간이라는 개체의 존재 특성이라고 합니다. 존재에 어떤 본질이 미리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나에게 '나'라는 어떤 것이 없었군요! 원래 나는 텅 비어있군요!
 
그래서 시인님은 존재로서의 의미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부여해야(!) 한다고 하네요. 그런 생각을 자꾸 할수록 자꾸 고독해지네요. 고독한 실존의 불안!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아가는 이즈음, 누가 빗방울이네의 이름을 불러 주시려나요? 그런 그대에게 가서 '꽃'이 되고 싶은 밤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삶의 비의를 담고 있는 시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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