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시인님의 시 '낮달'을 만납니다. 하늘의 낮달처럼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지울 수 없는 그리움에 대한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유치환 시 '낮달' 읽기
낮달
- 유치환(1908~1967, 경남 통영)
쉬이 잊으리라
그러나 잊히지 않으리라
가다 오다 돌아보는 어깨 너머로
그날 밤 보다 남은 연정의 조각
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어룽
- 「유치환 시선」(유치환 지음, 배호남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년) 중에서
2. 낮달이 뜨는 까닭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유치환 시 '그리움' 중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그리움'을 비롯 '깃발', '행복' 같은 주옥같은 시로 우리의 빈 시간을 채워주신 유치환 시인님의 다른 시 '낮달'을 만납니다.
시 '낮달'은 1949년에 발간된 시인님 네 번째 시집 「청령일기(蜻蛉日記)」에 실렸습니다. 시인님 41세 때 시입니다.
「청마 유치환 평전」(문덕수 지음, 시문학사, 2004년)에 실린 시인님의 연보를 보니, 이 때는 통영에 살던 때였습니다.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부임(1945년)해 같은 학교 교사인 '솔메이트' 이영도 시조시인님에게 날마다 편지를 쓰는 방식의 20년 간의 사랑이 무르익던 시기였고요.
또 1948년 12월, 그러니까 '낮달'이 실린 시집 「청령일기」(1949년 5월)가 나오기 6개월여 전에 차남이 사망(1948년 12월)하는 상명지통(喪明之痛)을 겪기도 했네요.
그런 그리움과 아픔이 뒤섞여 흐르던 시간의 강물 위에 시 '낮달'이 떴네요.
낮달은 왜 생길까요?
달이 지구를 공전할 때 지구와 나란히 공전하지 않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달은 지구를 약 27일 1/3주기로 공전합니다. 그래서 달 뜨는 시간은 매일 30~60분씩 늦어집니다.
이 때문에 달이 우리 눈에 보이는 시간이 달라지게 되고 밤에도, 또 낮에도 보이게 됩니다. 보름달은 밤새 떠 있지만, 상현달(오후~밤)과 하현달(새벽~오전)은 낮에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낮에 보이는 달은 왜 밤에 보는 달처럼 노랗지 않고 하얄까요?
달은 태양처럼 자체 발광하지 않지요. 태양빛이 반사되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달입니다. 낮에는 햇빛이 밝아서 하얗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3. '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어룽'
시 '낮달'로 들어갑니다.
쉬이 잊으리라 / 그러나 잊히지 않으리라
- 유치환 시 '낮달' 중에서
시인님은 시 제목을 '낮달'로 해두고는 낮달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 없습니다. 이 시 속에 낮달은 '그리움'이라는 은유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가슴 미어지도록 애타게 그리워하거나, 멀어져 간 사랑하는 이를 차마 잊지 못해 가슴 미어지도록 아프게 그리워하거나 어찌 그 그리움을 가슴속에서 지울 수 있겠는지요. 잊을 수 있겠는지요.
'쉬이 잊으리라' 했지만 '잊히지' 않는 그리움입니다. 우리가 안 보는 동안에도 우리 머리 위 하늘에 떠있는 하얀 낮달처럼요.
가다 오다 돌아보는 어깨 너머로 / 그날 밤 보다 남은 연정의 조각
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어룽
- 유치환 시 '낮달' 중에서
이 시에서 가장 빛나는 단어 '어룽' 등장입니다. 국어사전에 '어룽'의 뜻은 '어룽어룽한 점이나 무늬'입니다. '어룽어룽'은 '뚜렷하지 않고 흐리게 어른거리는 모양' 또는 '눈물이 그득하여 넘칠 듯한 모양'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의 어룽'. 그러니까 마음에 새겨져 어른거리는 '지워도 지지 않는' 그리움을 말하네요. 이것은 바로 하늘의 낮달일 텐데 그 그리움은 시공을 초월하여 얼마나 높고 아득한 그리움인지요.
낮달이 '가다 오다 돌아보는 어깨너머로' 보이듯, 낮에 뜨는 조각달이 '그날 밤 보다 남은 연정의 조각'이듯이 그리움도 또한 그렇다고 합니다. 하늘의 낮달을 어떻게 지우겠는지요. 그 낮달 같은 '마음의 어룽'을 어떻게 지우겠는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유치환 시인님의 시 '박쥐'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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