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에 나오는 문장 '세한 연후지송백지후조'를 만납니다. 추사 김정희 님이 '세한도'에 써놓은 발문 중의 한 문장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세한도 '세한 연후지송백지후조' 읽기
국보 제180호인 추사 김정희 님의 '세한도(歲寒圖)'. 그림의 왼쪽 여백에 발문이 적혀있는데 글의 중간쯤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孔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세한 연후지송백후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歲寒) 뒤에야 소나무(松柏)가 뒤늦게 시든다(後凋)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했는데···
- 「완당 평전 1」(유홍준 지음, 학고재, 2002년) 중에서
'세한도'는 추사가 제자(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입니다. 제자는 제주도에 유배 중이던 스승에게 아주 귀한 책들을 구해 보내주었습니다. 이런 제자의 정성에 감복하여 추사는 제자의 인품을 '송백(松柏)'에 비유한 글이 든 그림을 답례로 선물한 것입니다.
추사는 이 '세한도' 발문에서 제자가 보내준 귀한 책에 대해 "천만 리 떨어진 곳에서 사 온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 겨우 얻은 것."이라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 발문 중에서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의 바로 앞에 있는 문장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게다가 세상은 흐르는 물살처럼
오로지 권세와 이익에만 수없이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대는 많은 고생을 하여 겨우 손을 넣은 그 책들을
권세가에게 기증하지 않고
바다 바깥에 있는 초췌하고 초라한 나에게 보내주었도다.
- 위의 같은 책 중에서
추사는 어렵게 구한 귀한 책들을 권세가에 바치며 아부하지 않고 힘없는 자신에게 보내준 제자가 너무나 고마웠을 것입니다. 날이 추워봐야 (歲寒然後), '송백(松柏)'이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아무런 힘이 없어진 '추운 세월(歲寒)'에도 변함없이 자신을 위해주는 제자가 그런 '송백(松柏)'과 같다는 말이니, 이런 스승의 문장에 제자는 얼마나 감복했을까요?
2. '시듦을 견디어내는 모습!
추사가 이 발문에 인용한 대로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은 공자님 말씀입니다. 「논어」 자한 편 27장에 등장합니다.
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나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듦을 견디어내는 모습을 알 수 있도다."
- 「논어한글역주3」(지은이 도올 김용옥, 통나무, 2008년 1쇄, 2011년 3쇄) 중에서
이 문장에서 '후조(後彫)'가 앞의 '세한도'에서는 '후조(後凋)'로 나옵니다. '彫'와 '凋'는 서로 통용되는 글자입니다.
이 책에서는 '시듦을 견딘다'라고 풀이되어 있는데, 앞의 책 풀이 '뒤늦게 시든다'와 맥락은 같습니다.
그런데 '조(彫)'는 '시들다'의 뜻도 있지만 '새기다'의 뜻도 있습니다. '조각(彫刻)' 말입니다. 그래서 '조(彫)'의 뜻은 '새겨진 흔적' '두드러짐'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는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송백이 뒤에 시들어 두드러져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함의를 알 수 있겠습니다. 맹추위가 닥치면 다른 나무들은 일찍 말라죽는데 송백은 그 추위를 견뎌 뒤에까지 남아있다가 시드는 것이 우리 눈에 보여 알 수 있다는 뜻이네요.
어느 풀이든지 송백은 추위에 강하다, 그래서 송백은 험한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새깁니다.
3. '추워져가는 세월에 대한 한탄'
「세한도」 발문을 더 읽어봅니다. 추사는 제자의 변치 않은 인정을 송백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자신의 속마음을 덧붙입니다.
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성인께서 추워진 이후의 송백을 특칭하신 것은 시듦을 견디어내는 송백의 강인한 지조와 절개만을 그냥 말씀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아마도 추워져가기만 하는 세월에 대하여 느끼시는 바 발한 탄성일 것이다.
- 위 같은 책 「논어한글역주3」 발문 중에서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 그러니 이 문장에는 메말라가기만 하는 세상의 인정(人情)에 대한 한탄도 담겨있네요. 세상살이가 자꾸 추워져간다는 탄식요.
서로의 관계가 원만할 때는 그 사람의 진정한 인품을 알 수 없습니다.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 세상이 추울 때, 상황이 어려울 때 그 사람의 본성,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빗방울이네도 그렇게 변치않는 사랑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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