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책 「인도기행」 속의 몇 문장을 만납니다. 여행길에서 좋은 삶의 길을 찾는 책, 그런 좋은 여행을 위한 팁을 주는 책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법정스님, 열차 간 변소 앞에서 삼매에 들다
빗방울이네가 읽은 법정스님의 「인도기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소개합니다.
이번 여행 중에서 나는 한밤중인데도 가장 맑고 투명한 의식 상태인 선정 삼매(禪定三昧)를 지속할 수 있었다.
자정이 지나 아침 6시 10분 잘가온에 도착할 때까지, 맑은 정신과 평온한 마음으로 일찍이 없었던 뜻있는 경험을 했다.
이날 밤, 변소 앞 바닥에서 앉아서 겪었던 이 일이 인도 여행 중에 가장 고맙고 뜻있는 체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 생애에서 두고두고 음미할 만한 사건이 된 것이다.
▷ 「인도기행」(법정스님 지음, 샘터사, 2008년 6쇄) 중에서
법정스님이 3개월 동안 인도를 여행하면서 '가장 고맙고 뜻있는 체험'이라고 말한 체험은 무엇이었을까요?
스님은 불교의 석굴사원이 있는 아잔타에 가기 위해 밤새워 달리는 열차를 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열차는 좌석은 물론 통로까지 사람이 앉거나 누워있는 만원 열차였습니다.
스님은 어디에 앉았을까요? 바로 열차 간 변소 앞 바닥이었습니다. 밤새 지린내와 사람들 배설소리의 고통 속에 이렇게까지 하면서 인도 여행을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요, 자정 즈음에 달리는 열차 속에서 스님은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렇게 먼지 바닥에 주저앉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지 않는가.
똑같은 인간인 내가 이런 걸 견딜 수 없어한다면 어떻게 저들과 같은 인간의 대열에 끼일 수 있단 말인가.
저들이 겪는 일을 나라고 해서 겪지 못할 게 무엇인가. 문제는 관념의 차이에 있다.
이때부터 불만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내 마음은 지극히 평온해졌다.
▷ 위의 같은 책 중에서
이런 자각에 이른 스님은 열차 안에서 좌우에 각각 변소 하나씩을 두고 '가장 맑고 투명한 의식상태엔 선정 삼매(禪定三昧)'에 들었다고 한 것입니다. 온갖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여 바른 지혜를 얻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입니다.
법정스님은 이 상태를 '일찍이 없었던 뜻깊은 경험'이라고 했네요.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도 아니고,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불교 최대의 성지인 보드가야도 아닌 만원 열차 안, 그것도 지린내가 풍기는 변소 앞에서 삼매에 드신 스님을 떠올려봅니다. 먼지 바닥에 드러누운 저 많은 사람들과 나는 '같은 인간'이라는 자각에 이르게 된 후 찾아온 삼매였습니다.
이 장면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맨발로 공양을 다니셨다는 부처님의 자애로운 마음이 떠오르는 대목이네요.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다! 차별 없는 생명이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친 법정스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2. 인도 여행 3개월 동안의 꼼꼼한 여행 메모
「인도기행」은 법정스님이 1989년 3개월 동안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 인도와 네팔 구석구석을 누비며 쓴 여행기록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법정스님의 '여행 메모'였습니다.
스님은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와 인도 현지에서 메모한 노트와 직접 찍은 사진을 참조하면서 이 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스님은 3개월 동안 끊임없이 메모를 했다는 점이 문장 속에 역력히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말입니다.
데오리아에서 카시아로 가는 도로 양쪽에는 사탕수수 밭이 끝없이 들어차 있고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망고 나무가 가로수로 정정하게 늘어서 있다.
붉게 물든 해가 뉘엿뉘엿 지평선 위로 내리고 있었다.
▷ 위의 같은 책 중에서
도로를 달리는 차 속에서 스님은 노트를 꺼내 '데오리아~카시아 가는 도로', '사탕수수밭', '아름드리 망고나무 가로수', '인상 깊은 일몰' 같은 간단한 메모를 날아가는 듯 비뚤비뚤한 글씨로 재빠르게 기록했을 것만 같습니다.
수많은 현지 메모들이 없었다면 이런 여행기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스님은 도착하는 여행지에서, 그리고 여행지에서 다음 여행지를 건너가는 길 위에서, 지친 몸을 쉬기 전의 숙소에서 메모하고 또 메모했을 것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묘사하고, 찾아간 장소의 역사를 수집하고, 여행 중 일어난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때마다 다큐멘터리 작가처럼 기록하고 또 기록했을 것입니다. 글로, 또 사진으로 말입니다.
이처럼 자주적이고 부지런한 여행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여행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 여행 자체가 좋은 삶이 되는 여행 말입니다.
3. '귀중한 시간과 역량을 무가치한 일에 탕진하지 말라'
법정스님이 인도를 여행한 때가 1989년입니다. 1932년생인 스님이 세수로 57세 즈음입니다. 50대 후반의 스님은 여행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여행지에서 마주친 장면을 스쳐 보내지 않고 그 의미를 성찰한 대목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합니다.
법정스님은 부처님이 입멸하신 쿠시나가라에서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최후의 유훈을 떠올립니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 정진하여라.'
▷ 위의 같은 책 중에서
법정스님은 부처님의 이 마지막 문장을 우리에게 들려주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덧붙여 놓았습니다.
한 종교의 성자가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남겨놓은 이 짤막한 말속에 무한한 교훈이 담겨 있다.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힘써 정진하는 한,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살아 있는 사람의 구실을 할 수 있다.
▷위의 같은 책 중에서
우리도 '모든 것은 덧없다'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권력과 명예, 재물과 쾌락도, 나고 죽고 흥하고 망하는 것이 모두 다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부처님!
부처님은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 정진하여라'라고 당부하시네요. '정진(精進)'은 힘써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자는 깨달음을 향해 힘써 나아가는 것이겠지요?
비록 수행자가 아닐지라도 자신의 삶을 환하게 밝히는 일에 날마다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는 일이 정진이겠네요. 이 문장이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씀이네요.
법정스님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쿠시나가라에 머물며 생각이 많아졌을까요? 이 책 속의 '출가 수행승은 장례에 상관 마라'라는 소제목의 챕터에서 삶에 대한 성찰의 문장이 많습니다.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법정스님! 언제나 진리에 목마른 우리의 간절한 질문에 법정스님은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을 변주하여 이렇게 답할 것 같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귀중한 시간과 역량을 무가치한 일에 탕진하지 말아야 한다.
▷위의 같은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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