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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가곡 봉선화 울 밑에 선 봉선화야

by 빗방울이네 2024.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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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봉선화'를 만납니다. 여름에 피는 봉선화만 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흥얼흥얼 나오는 아름다운 가곡입니다. 함께 읽으며 부르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가곡 '봉선화' 읽고 부르기

 

봉선화

 

김형준 작사, 홍난파 작곡, 노래 김천애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 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한국 가곡집 제1집」(노래 김천애, 오아시스레코드, 2016년, 애플뮤직)

 

※ 「한국 가곡 200 곡선 - 하(下)」(세광출판사, 1979년)에는 이 가곡의 제목이 '봉숭아'로 되어 있습니다. 봉숭아와 봉선화는 같은 말입니다.

 

2. '봉선화'는 어떻게 민족 애창곡이 되었을까요?

 

가곡 '봉선화'의 노랫말은 성악가 김형준 님이 쓴 것입니다. 작곡자는 홍난파 님입니다.

 

이때가 1920년대였습니다. 어떻게 탄생한 가곡이었을까요?

 

「홍난파 평전」(김양환 지음, 남양문화, 2009년)에 따르면, 가곡 '봉선화'는 곡이 먼저 지어지고 나중에 노랫말이 붙은 경우입니다.

 

곡이 쓰인 때는 1920년이고, 노랫말이 붙은 때는 1925년입니다.

 

1920년 홍난파 작곡가님이 창작소설집 「처녀혼」을 내면서 소설집 첫 장에 이 악보를 실었는데, 소설집을 통해 악보를 본 김형준 님이 노랫말을 써서 1925년 가곡 '봉선화'가 탄생하게 되었네요.

 

위 책에 의하면, 이 아름다운 노랫말을 쓴 김형준 님은 '홍난파의 오랜 악우(樂友)이자 이웃집 선배'이며, 성악가이면서 음악교육자입니다. 홍난파(1898~1941)보다 14세 많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곡 '봉선화'는 탄생 후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일제강점기 때 민족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기 시작한 첫 무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도쿄의 무대였습니다.

 

가곡 '봉선화'가 처음 무대에서 울려 퍼진 때는 1942년, 그 음악회는 이 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전일본신년음악회'였습니다.

 

이 음악회는 일본 각 음악대학의 졸업생 대표들만 참가하는 무대였는데, 그해 무사시노음악대학의 졸업생 대표로 참가한 주인공이 바로 23세의 조선인 여학생 김천애(1919~1995)였던 것입니다.

 

이날 김천애가 부른 '봉선화'는 성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애절한 노래였다.

그녀는 마치 민족의 한(恨)을 한 올 한 올 풀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흐느끼듯 이 노래를 목놓아 불렀던 것이다.

▷위 같은 책 중에서.

 

"울-밑에-선-봉선화야"-가곡-'봉선화'-중에서.
"울 밑에 선 봉선화야" - 가곡 '봉선화' 중에서.

 

 

 

3. 가곡 '봉선화' 노랫말에 담긴 뜻은?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 적에 /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봉선화는 키가 작고 가냘픈 꽃입니다. 주로 울타리나 담벼락 아래에서 자랍니다. 

 

작사를 한 김형준 님은 그렇게 울 밑에 피어있는 봉선화를 보고 '처량하다'라고 하였네요. 일제라는 거대한 담벼락에 막혀 힘 없이 서 있는, 초라하고 가엾은 우리 민족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그런 봉선화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었습니다. '길고 긴 날 여름철' 내내 아름다운 꽃을 피웠네요. 전국 방방곡곡 집집마다 울밑에서 말입니다.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와 누이들은 여름이면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들이며 놀았습니다. 봉선화 꽃잎을 빻아 손톱마다 올려 무명실로 묶어 두면 손톱에 꽃물이 빨갛게 들었습니다.

 

'봉선화 물들이기'는 빨간색이 잡귀를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한 우리네 여름 풍습이었다고 합니다.

 

'어언 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어언 간에 여름 가고'. 봉선화 물들이기를 하던 평화롭던 여름날이 갔다고 하네요.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가을이 되어 꽃이 지게 된 것이지만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 꽃송이를 침노했다고 하네요. 일제의 침노를 이렇게 은유적으로 표현해 두었네요.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초라하고 가엾은 신세로 망국의 설움을 견디고 있는 작사가인 김형준 님의 비탄이, 조국을 빼앗은 일제 침략자들에 대한 우리 민족의 울분과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이 3연에 작사가님의 뜨거운 소망, 우리 민족 모두의 열망을 심어두었네요.

 

아무리 잔혹한 '북풍한설 찬바람'이라 할지라도, 일제의 총칼 앞에 '형체가 없어져도' 우리 민족의 '혼'은 살아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다고 해도 우리 민족의 '혼'만은 뺏기지 말자는 다짐이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렇게 애절한 마음으로 '봉선화'를 입을 모아 부르고 또 부르면서, 봉선화가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하여 여름날 꽃을 피우듯이 언젠가 봄날이 오면 우리 민족도 환생하리라는 것을 믿고 또 간절히 염원했을 것입니다.

 

가곡 '봉선화'는 그렇게 우리 민족의 혈관 속을 타고 흐르는 피 같은 노래가 되었네요. 

 

그래서 누구라도 어디에서라도 아름다운 봉선화를 만나면 저절로 가곡 '봉선화'의 첫 구절이 흘러나옵니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 ~'. 그러면서 마음이 처연해집니다.

 

법정스님 책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네요.

 

1989년 법정스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그때 부처님이 여든 살이 되어 열반의 길에 들렀다는 바이샬리에서 봉선화를 만난 것입니다. 아소카 필라(석주) 아래 핀 봉선화를 말입니다.

 

돌기둥 아래 봉선화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낯선 이역에 와서 눈에 익은 꽃을 보면 같은 동포라도 만난 듯이 아주 반갑다.

파리하게 피어 있는 그 봉선화를 보면서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고 

오랜만에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니 마음속에 까닭 없는 슬픔이 고이려고 했다.

▷「인도기행」(법정스님 지음, 샘터, 2008년 6쇄) 중에서.

 

이역만리 인도에서 봉선화를 만나 '눈이 번쩍 뜨였다'라고 하네요. '같은 동포라도 만난 듯이' 반가웠다고 하고요.

 

법정스님은 그 봉선화를 보면서 가곡 '봉선화'를 읊조렸네요. 그러면서 '마음속에 까닭 없는 슬픔이 고이려고 했다'라고 합니다.

 

그 애틋한 마음은 우리 민족의 마음이자 우리 모두 공유하고 있는 공동의 마음자락이겠지요? 아름다운 노래 한 곡이 우리를 이렇게 하나로 묶어주네요. 고맙고 사랑스러운 노래네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더 만나 보세요.

 

정태춘 박은옥 노래 봉숭아

정태춘 박은옥 가수님의 노래 '봉숭아'를 만나봅니다. 봉숭아 꽃물 들여주던 다정한 이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노래입니다. 함께 읽으며 부르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태춘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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