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인님의 시 '오리 망아지 토끼'를 만납니다. 읽고 있으면 자꾸 아버지가 생각나는 따뜻한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백석 시 ‘오리 망아지 토끼’ 읽기
오리 망아지 토끼
- 백석(1912~1996, 평북 정주)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날여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불으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 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저벌인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 딸어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 매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새하러 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 나는 산(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 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백석 시집 「사슴」(1936년 오리지널 디자인, 도서출판 소와 다리, 2016년) 중에서.
2. 아버지는 어째 오리도 못 잡나!
시 '오리 망아지 토끼'는 그 제목이 시 제목답지 않게 참 함축성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마치 오리와 망아지와 토끼가 줄지어 걸어가고 있는 풍경을 보여주는 멋진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제목이네요.
모두 작고 힘없고 순한 동물이네요. 맨 앞에 가는 선수는 오리이고요.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날여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불으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 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저벌인다'
아이는 얼마나 졸랐을까요? 아버지, 우리 오리 잡으러 가자! 빨리 가자!
집에 있던 아버지는 아이 성화에 못 이겨 버선과 대님까지 한 채로 논으로 오리를 잡으러 나왔네요.
'오리치'는 야생오리를 잡는 올가미를 말합니다. 아이를 동말랭이에 기다리라 하고 아버지는 이 오리덫을 놓으려고 논으로 내려갔습니다.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벗어놓고요.
'말랭이'는 사전에 '마루'나 '산봉우리'의 방언으로 나옵니다. '동말랭이'는 동쪽의 언덕마루로 새깁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리를 잡았다는 소식이 없네요.
슬슬 지겨워진 아이의 앞쪽 하늘로 오리가 휘익 날아가네요. 어쩌다가 아버지는 그만 오리를 놓쳐버리고 말았네요.
어린아이는 그것을 보며 웁니다. 아버지는 어째 오리도 못 잡나!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동비탈'은 동쪽 언덕의 비탈이네요. 그 언덕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나 잡아봐라'는 듯이 도망가는 오리입니다.
'시악'은 악한 성미로 부리는 행동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심술이 난 아이의 투정이겠네요.
그렇게 오리를 놓쳐버린 아버지가 미워서 아버지가 벗어놓고 간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개울에 던져 버렸다고 하네요.
버선을 벗고 바지 끝을 묶었던 대님까지 푼 뒤 바지를 무릎 위까지 올리고 논을 갔을 아버지입니다. 그는 그 순간에도 몸을 웅크려 논 어딘가에 숨긴 채 다른 오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겠지요?
얼마나 다정한 아버지인지요?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 딸어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 매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그다음 선수는 망아지네요. 어느 장날 아침입니다. 큰길(행길)에 보니 엄마 말(엄지) 따라가는 귀여운 새끼말 망아지(매지)가 보입니다.
어린 나는 저 망아지를 사달라고 아버지를 조릅니다. '내라고'는 '내놓으라고', 즉 '사달라고'라는 의미로 새깁니다.
장날 큰길에 지나가는 망아지를 보고 아이가 사달라고 조르면 그대는 어쩌겠는지요?
어림도 없다! 가당키나 할 소릴 하려무나!
혹 이러겠는지요?
그러나 시 속의 아버지는 망아지가 가는 쪽을 보며 '망아지야, 이리 오너라'라고 큰 소리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요.
망아지를 사달라는 아이의 생떼만큼이나 아버지의 대응도 엉뚱하기 그지없네요.
아이의 철없는 어리광 앞에 아버지도 '어른광(이런 말이 된다면!)'을 부리네요.
아버지의 대응에 아이도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고 눈을 멀뚱거렸을 것만 같네요.
그러다가 아버지의 꾀를 알아채고 또 '시악'을 부렸을까요? 얼마나 너그러운 아버지인지요?
3. 가만히 지켜봐주는 아버지
'새하러 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 나는 산(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 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세 번째 선수는 토끼네요.
'새하러'는 '나무하러'의 평안도 사투리입니다.
'지게에 치워'는 '지게에 지워져'로 새깁니다.
자그만 아이 몸이 아버지 지게에 동그마니 얹혀 나무하러 산으로 가고 있는 부자의 모습이 참 정답습니다.
아무리 작은 아이지만 아버지는 힘들 텐데 지게에 탄 아이는 토끼 잡을 생각에 신이 났네요. 엉덩이를 들썩거렸을까요?
산에서 아버지는 겨울땔감용 나무하려 아이의 바람인 토끼 잡으랴 바빴겠네요.
'맞구멍'은 양쪽에 난 구멍이겠지요? 아이와 아버지가 '맞구멍 난 토끼굴'을 한쪽씩 막아섰네요.
넌 이제 독 안에 든 쥐, 아니 토끼야!
그랬는데 글쎄 토기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막아선 구멍이 아니라 내 다리로 막아선 구멍으로요.
그 상황에 얼마나 '시악'이 났으면 아이는 '토끼새끼'라고 했네요.
그 순간, 맞은편의 아무 일 없는 구멍을 막고 선 아버지의 표정이 보이는 것만 같네요. 거참, 허허, 하고 웃으셨겠지요? '토끼새끼'를 놓친 아이는 울상이고요.
한 편의 동화 같은 시네요.
아이는 아버지에게 뭘 해달라고 마구 떼를 쓰면서 성질을 부립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 받아주고 놀아주고 지켜봐 주네요.
그건 안 된다, 그럼 못써, 왜 그렇게 성질을 부리니! 이런 말 하지 않는 아버지네요.
참으로 너르고 착하고 따뜻한 아버지입니다.
시에서 아이는 오리도 못 잡고 망아지도 못 얻고 토끼도 못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오리와 망아지와 토끼와 아버지와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아이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보석 같은 시간이었겠지요?
시 제목을 '아버지 오리 망아지 토끼'라고 하고 싶네요.
시를 다 읽고 나니, 문득 아버지가 그리워지네요.
멀찍이 떨어져서 가만히 자식을 지켜봐 주시던, 그래서 늘 바위처럼 듬직하시던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책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백석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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