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인님의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을 만납니다. 백석 시인님은 이 시를 통해 힘든 삶을 이겨낼 유용한 팁 하나를 우리에게 건네주십니다. 과연 무얼까요? 이 봄밤에 백석 시인님이 퍼올려주신 사유의 우물물로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백석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읽기
내가 생각하는 것은
- 백석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단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단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라도 들을
류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 「정본 백석시집」(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중에서
백석 시인님(1912~1996)(본명 백기행)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오산학교(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6년 선배인 김소월의 시를 좋아하면서 꿈을 키웠고, 19세 때인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와 아들'이 당선했습니다. 일본 도쿄 아오야마학원 영어사범과를 졸업했습니다.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1936년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 「사슴」을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했습니다. 해방 후 고향에 머물다 삼수군 관평리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27세 청춘 백석이 봄밤에 생각한 것
백석 시인님의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은 시인님이 27세 때인 1938년 「여성」이라는 잡지에 발표됐습니다. 발표된 달이 4월이니 봄입니다. 27세의 청춘 백석은 봄밤에 무슨 생각에 잠겼던 걸까요?
자, 우리 함께 백석 시인님의 봄밤으로 들어갑니다.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 백석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중에서
'따디기'는 이른 봄에 얼었던 대지가 풀리는 때를 말합니다. 2월 말이나 3월 초쯤 되네요.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라고 합니다. 습기가 있고 그 속에 꿈틀거림, 생명의 약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님은 그런 약동이 '밖'에 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시인님이 있는 '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네요. 자신의 처지는 이렇습니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 백석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중에서
자신의 마른 팔뚝과 거기 돋아난 새파란 핏대를 보고 있네요. 밖은 약동하는데 자신은 아프고 힘이 하나도 없는 것만 같습니다. 시인의 봄밤은 가난과 이별과 배신의 밤입니다. 1937년 4월에 함흥에 있던 백석 시인님은 자신이 사모하던 통영 처녀 박경련과 친구 신현중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됩니다. 연인과 친구를 한꺼번에 잃은 것입니다. 어떤 심정이겠는지요?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단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라도 들을 / 류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 백석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중에서
이렇게 건강하고 재력이 있어 유흥을 즐기는 사람들과 가난해서 새로운 지식과 예술에 대한 갈망을 채우지 못하는 자신을 대비해 시 속 화자의 슬픔이 더욱 도드라져 보입니다. '아서라 세상사'는 세상사 허무하고 인생은 춘몽과 같으니 술로 즐겨보자는 내용의 남도 판소리입니다. 이 판소리는 '아서라 세상사 가소롭다~'로 시작하는데, 지금 백석 시인님의 허무한 심정이 이러했으리라 느껴집니다.
3. 자신을 끊임없이 객관화하고 관찰하기
마지막 4연이 있었기에 이 시는 찬연히 약동합니다. 보시지요.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 백석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중에서
자기 자신을 보는 장면입니다. 백석 시인님은 이 더러운 세상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라고 하네요. 이 구절에서 시인님은 절대로 더러운 세상에 지지 않겠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깁니다.
요즘말로 '메타인지'입니다. 자신의 인지과정에 대하여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하고 발견하고 통제하는 성찰의 정신작용이네요. 이렇게 백석 시인님은 세상과 자신을 꿰뚫어 보면서 세상사와 감정에 휩쓸리기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객관화시키며 험난한 세상을 뚜벅뚜벅 걸어가셨네요. 우리도 가끔씩 백석 시인님처럼 생각을 생각해볼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백석 시인님의 시를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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