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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문태준 시 아버지의 잠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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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님의 시 '아버지의 잠'을 만납니다. 잠이 많아지는 아버지, 왜 그리 안쓰러운지요? 마음의 옷을 벗고 아버지의 잠을 생각하며 사랑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문태준 시 '아버지의 잠' 읽기

 
아버지의 잠
 
- 문태준(1970~ , 경북 김천)
 
아버지는 잠이 많아지네
시든 풀 같은 잠을 덮네
아버지는 일만 가지의 일을 했지
그래서 많고 많아라, 아버지를 잠들게 하는 것은
누운 아버지는 늙은 오이 같네
아버지는 연고를 바르고 또 잠이 들었네
늙은 아버지는 목침 하나를 덩그러니 놓아두고
잠 속으로 아주 갈지도 몰라
아버지는 세상을 위해 일만 가지의 일을 했지
그럼, 그렇고말고!
아버지는 느티나무 그늘이 늙을 때까지 잠잘 만하지
 

- 문태준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창비, 2023년) 중에서

 

2. '아버지는 잠이 많아지네'

 
오늘 만나는 시 '아버지의 잠'은 우리 문단의 대표적 서정시인인 문태준 시인님의 최근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에 실려있습니다. 이 시집은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시인님의 여덟 번째 시집입니다.

시인님 50대 초반에 쓰인 시 '아버지의 잠', 어떤 시일까요?
 
아버지는 잠이 많아지네 / 시든 풀 같은 잠을 덮네

- 문태준 시 '아버지의 잠' 중에서

 
참 슬픈 장면이네요. 잠이 많아진다는 것은 이제 아버님이 연로하시다는 말이네요. 그래서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시의 화자는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하네요. 그 보무도 당당하던 아버지, 식구들을 염소처럼 데리고 잡풀을 헤치며 여기까지 무사히 오신 아버지입니다. 그 새벽부터 늦밤까지 식구들 근사하려고 편했을 날이 몇 날이나 되었겠는지요.
 
아버지는 일만 가지의 일을 했지 / 그래서 많고 많아라, 아버지를 잠들게 하는 것은

- 문태준 시 '아버지의 잠' 중에서

 
빗방울이네, 아버지가 잠자리에 누울 때 내던 신음소리가 지금 환청처럼 들리는 것만 같네요. 끄응! 저절로 나는 그 소리요. 몸을 뉘면서 하루의 고단함에 저절로 터지는 소리요. 몸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 말입니다. 그 소리가 나면 우리 형제들은 왜 그리 걱정이 되던지요? 일제히 하던 동작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되는 소리, 아버지의 끄응! 
 
누운 아버지는 늙은 오이 같네 / 아버지는 연고를 바르고 또 잠이 들었네

- 문태준 시 '아버지의 잠' 중에서

 
'늙은 오이'라는 구절 너머에 모로 누워 웅크린 아버지가 보이네요. 그 당당하던 체격의 아버지는 점점 작아지고 가벼워졌습니다. 물기가 다 빠져나간 오이처럼요. 살이 내린 아버지의 허벅지를 처음 본 날을 기억합니다. 어떤 '무게'가 나에게로 옮겨오고 있다는 그 낯선 예감을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왜 그리 연고도 많던지! 당신의 약통이 따로 있어서 거기에 온갖 연고가 다 들었네요. 무좀연고, 습진연고, 호골연고, 바셀린 ···. 쭈굴쭈굴해진 그 연고들이 약통 속에 뒤죽박죽 들었네요. 유효기간이 잘 안 보이는 낡은 연고 말이에요. 그 많던 연고는 어디로 다 스며버렸을까요? 
 

문태준시아버지의잠중에서
문태준 시 '아버지의 잠' 중에서.


 

3. '아버지는 세상을 위해 일만 가지의 일을 했지'

 
늙은 아버지는 목침 하나를 덩그러니 놓아두고 / 잠 속으로 아주 갈지도 몰라

- 문태준 시 '아버지의 잠' 중에서

 
대청마루 위, 아버지가 고요히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미동도 없고, 가끔 들리던 코 고는 소리도 없네요. 그럴 때면 자식들은 왜 그리 불안하던지요.
 
잠자는 아버지 곁에 가만히 다가가 봅니다. 숨소리 들으려고요. 그러다 아버지 얼굴을 건드려 아버지 잠결에 팔을 휘젓습니다. 파리 쫓듯이요. 그러면 얼마나 좋던지요. 우리 집의 푸른 하늘, 아버지는 지금 아주 잘 주무십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위해 일만 가지의 일을 했지 / 그럼, 그렇고말고!
아버지는 느티나무 그늘이 늙은 때까지 잠잘 만하지

- 문태준 시 '아버지의 잠' 중에서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세상을 위해 일만 가지 일을' 했고 말고요. 어디 가정만 일으켜 세웠나요? 자식만 키웠나요?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는 자연의 전사(戰士)였네요. 자연 속에서 자연을 도우고 그 힘으로 온갖 생명 도우며 살리는 세상의 기수였네요. 그 아버지는 '나'의 몸에 마음에 다 들어있겠지요?
 
세상의 모든 아버지 부디 건강하시길! '느티나무 그늘이 늙은 때까지'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아버지, 사랑합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문태준 시인님의 시 '개복숭아나무'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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