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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광섭 시 시인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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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시인님의 시 '시인'을 만나봅니다.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시인님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시인'의 마음으로 저마다의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광섭 시 '시인' 읽기


시인(詩人)
 
- 김광섭(1905~1977, 함북 경성)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全身)을 다 담아도
한 편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價値)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長距離)의 고독(孤獨)
컬컬하면 술 한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 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서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 「이산 김광섭 시전집」(홍정선 책임편집, 문학과지성사, 2005년) 중에서
 

2. 시인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이 시 '시인'은 1969년 발간된 시인님의 시집 「성북동 비둘기」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인님 65세, 시인 데뷔 40여 년 즈음 쓰인 시네요. '성북동 비둘기' 같은 주옥같은 시를 통해 삶의 속살을 속속들이 더듬어 보았을 시인님입니다.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던 시간, 시인님은 과연 '시인'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꽃은 피는 대로 보고 /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 김광섭 시 '시인' 중에서

 
'시인'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피는 대로' '주신 대로'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욕심 없이 오로지 아름다움(꽃)과 진실(사랑)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시인의 삶을 느낄 수 있네요.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 한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全身)을 다 담아도 / 한 편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價値)와 값이 다르건만 /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 김광섭 시 '시인' 중에서

 
'시인'은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세속적인 욕심도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아무리 '가득한 물건'도 '시인'을 유혹하지 못합니다. 
 
전신(全身)을 다 담아도
 
아, 우리는 이 구절을 한 번 더 쓸 수밖에 없네요. '시인'은 시 한 편에 '전신(全身)을 다' 담는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시 한 편을 위해 온몸(!), 전신을 불태우는 사람이네요. 그냥 머리로 가슴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온몸으로 쓴 시 한 편의 원고료는 '2천원 아니면 3천원'이라고 하네요. 시인님의 한숨이 들리는 것만 같네요. 
 
시 한 편의 가치가 세상의 부귀와 견줄 수 없이 고귀한 것이지만 '시인'은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게 '시인'의 천성이라고 하네요. 세속의 잇속을 따지지 못하는 것, 세속의 셈법을 모르는 것은 타고난 성품이라고 하네요.
 
시 한 편의 가치를 몰라주는 이 각박한 세태에 한숨 지으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살아가는 '시인'의 맑은 정신이 느껴지네요.
 
늙어서까지 아껴서 /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長距離)의 고독(孤獨)
컬컬하면 술 한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 김광섭 시 '시인' 중에서

 
'어릿궂은'은 '어리수굿하다' '어수룩하다'는 말로 새깁니다. 세속의 시선으로 보면 세상 일에 약삭빠르지 못하여 어설프게 보이겠지만 그렇게 순수한 사람이 '시인'이라고 합니다. 온갖 사물을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연민의 눈으로 보면서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하네요. 세상의 욕망과 거리를 두고요. 그런 삶의 자세로 평생 고독하게요.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 쌀알만 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 김광섭 시 '시인' 중에서

 
'시인'을 신나게 하는 일은 '빛'의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빛, 세상의 온갖 어둠을 몰아내는 빛! 그런 빛의 일이 아니라면 '시인'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리는 '쌀알만 한 빛이라도' 있으면 소중하게 품는다고 하네요. 그것이 살아나도록, 또한 사라지지 않도록 꼭 품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하네요.
 

김광섭시시인중에서
김광섭 시 '시인' 중에서.

 

 

3. 자연의 자연으로 나란히 존재하는 자가 '시인'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 돌과 같이 서면 돌이 되고

- 김광섭 시 '시인' 중에서

 
이 구절은 이 시의 가장 높은 솟대로 보입니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존재, 자연을 지배하거나 소유하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외따로이 떨어져있지 않고 자연의 자연으로 존재하는 자가 바로 '시인'이라고 합니다. 
 
居然我泉石(거연아천석) 그렇게 나는 샘과 돌과 함께 사노라

- 주자의 시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 중에서

 
이 구절에서도 나(我)와 샘(泉)과 돌(石)이 나란히 머물고 있네요. 그들과 친구하고 대화하며 그들이 있음에 내가 있다는 인식의 경지일까요?
 
이런 사람은 '나'와 '너'라는 구별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 사건, 사람들과 진정하게 자유롭게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처럼 타자와 본질로 호흡하고 동화하고 합일하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가 '시인'이네요. 세속의 어떤 욕망이, 세상의 어떤 불의가 그를 굴복시키겠는지요?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 자국은 있는데 / 타는 놀에 가고 없다

- 김광섭 시 '시인' 중에서

 
그렇게 자연의 자연으로 자유롭게 합일의 삶을 산 이라면 훗날 자신이 온 데 간 데 없이 잊힌다 해도 뭐가 애달프겠느냐고 시인님은 반문하는 것만 같네요.
 
세속의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맑고 순수한 정신으로, 타자와의 혼연일체를 지향하는 자유정신으로 살았다면, 그렇게 산 자신의 혼이 깃든 시 한 편이 자신의 '자국'으로 남아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느냐고요. 
 
시인만이 그래야 할까요? 그것은 바르고 맑게 살아가려는 사람의 자세이기도 하겠지요?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쓴 시인님의 산문 한 구절을 읽어봅니다.
 
시인은 자유의 음성 그 자체이다 ···
위대한 시인의 취하는 태도는 
폭군에 대해서는 위험천만이지만
노예에게는 희망이 된다.

- 「김광섭 시와 인생에 대하여」(김광섭 지음, 한국기록연구소) 중에서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광섭 시인님의 시 '저녁에'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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