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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모비딕 - 정신은 외면에 나타나는 법

by 빗방울이네 2023.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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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좁은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허먼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딕’을 읽을 때입니다. ‘모비딕’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우리는 거기서 어떤 삶의 비의(秘義)를 읽어낼 수 있을까요? 24만 단어에 이르는 방대한 소설 ‘모비딕’의 바다를 모비딕과 함께 항해하면서 마음 목욕을 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1. 이스마엘, 퀴퀘그를 만나다


‘모비딕’의 영문 표기는 ‘MOBY DICK’입니다. '거대한 녀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거대한 녀석이 흰 고래라서 ‘백경(白鯨)’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소설의 구조는 이스마엘이라고 불리는 한 청년의 포경선 승선 체험기 형식입니다. 모비딕을 잡으려는 광기 어린 집념의 소유자인 선장 에이허브를 비롯한 선원들이 종국에는 모비딕에 의해 배가 침몰해 모두 죽고 이스마엘 혼자 살아남아 우리에게 그 전모를 전하는 형식입니다.

자, 오늘 우리 함께 이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멋진 장면 하나를 만나 볼까요?

21세의 청년 이스마엘을 비롯해 각지의 선원들이 포경선을 타기 위해 항구에 속속 도착합니다.

오늘은 이스마엘이 이번 승선생활에서 단짝이 될 퀴퀘그를 이곳 부둣가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마엘이 도착한 12월 어느 추운 날, 바닷가 부두 근처의 여관마다 손님이 꽉 차 머물 곳이 없습니다. 물보라여인숙 주인은 빈방이 없으니 낯모르는 작살잡이(퀴퀘그)와 함께 방을 사용하라고 합니다. 몸이 온통 문신투성이로 흉악해 보이는 사나이였습니다. 이스마엘은 이 식인종으로 알려진 야만족의 사나이가 너무 무서워 주인에게 다른 방을 달라고 소동을 일으킵니다.

2. ‘정신은 외면에 나타나는 법이다’


이 과정에서 이스마엘은 퀴퀘그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이렇게 진술하는데, 정말 멋진 문장 하나를 우리에게 건네줍니다

- 나는 흥미를 느끼며 앉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야만스러웠으며 얼굴에는 온통 무서운 상처가 나 있긴 했지만, 적어도 내 기호로 볼 때, 그 용모에는 결코 불쾌하다고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정신은 외면에 나타나는 법이다. 이 세상 것으로 보이지 않는 문신 밑에 단순하고 고결한 마음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았고, 크게 푸욱 패어 사납게 불타는 듯한 눈에는 숱한 도깨비들과도 싸워 이기겠다는 씩씩한 기상이 숨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이교도의 행동에는 고매한 느낌마저 풍기고 있었다. 지금껏 남에게 아첨한 일도 없으며 인정 사정없는 빚쟁이에게 고통을 받아 본 적도 없는 용모였다. - <백경 1>(허먼멜빌 지음, 현영민 옮김, 신원) 10장 친구편에서

이스마엘이 퀴퀘그로부터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공감하시겠지요? 저는 이스마엘의 독백 속에 ‘정신은 외면에 나타나는 법이다.’라는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영어 원문으로는 ‘You cannot hide the soul’입니다.

그때까지 저는 정신은 외면에 나타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정신은 꼭꼭 숨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처럼 정신은 숨겨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스마엘이 퀴퀘그로부터 깨달은 것, 정신은 외면에 나타나는 법이다.

 

3. ‘숨어있는 것처럼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동안 저는 제 나름대로 저라는 자아를 가꾸며 억제하고 표출하면서, 밖으로 비치는 저의 내면을 스스로 잘 조절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만나는 순간, 그동안 저는 투명한 유리곽 속에 있었구나, 남들은 다 보이는데 나만 안 보인다고 생각하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은 결코 감출 수 없다고, 이스마엘을 통해 말한 작가 허먼 멜빌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은 무엇으로 드러날까요? 표정과 말과 몸짓, 취향,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과정과 결과에서 속속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특히 말은 정신을 비추는 거울이겠지요.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미 그 거짓 투성이 정신이 다 들켜버린 것입니다. 그 사이 어떤 신뢰와 사랑이 싹틀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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