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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가을 시 문태준 처서 릴케 가을날 김현승 가을의 기도 안도현 가을의 소원

by 빗방울이네 2024.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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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시 4편을 만나봅니다. 시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할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문태준 시 '처서' 읽기

 

문태준 시인님(1970~ , 경북 김천)은 가을이 오는 징후를 이렇게 느낀다고 하네요. 얼마나 섬세한지요.

 

가을이 오는가, 삽짝까지 심어둔 옥수숫대에 그림자가 깊다

갈색으로 말라가는 옥수수수염을 타고 들어간 바람이 / 이빨을 꼭 깨물고 빠져나온다

▷문태준 시 '처서' 중에서.

 

시 '처서'는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문태준 시인님의 등단작입니다.

 

가을의 징후로 '옥수숫대에 그림자가 깊다'라고 합니다. 옥수숫대 그림자의 농담(濃淡)을 보고 가을을 눈치챈다고 하네요.

 

가을이 되어 태양이 멀어지면서 그림자도 길어진다는 말일까요?

 

'옥수수수염을 타고 들어간 바람이 이빨을 꼭 깨물고 빠져나온다'. 이 구절에서 이빨처럼 박혀 익었을 옥수수알갱이들이 떠오르네요.

 

바람은 왜 이빨을 깨물고 빠져나올까요? 

 

시 제목 '처서(處暑)'는 더위(暑)가 그친다(處)는 뜻이니, 가을이 되면서 그만큼 바람이 선선해졌다는 말이겠지요?

 

시인님은 이렇게 가을의 초입에서부터 촉수가 예민해지나 봅니다.

 

그대는 어디를 보고 가을의 낌새를 알아채는지요?

 

"시인들의_가을맞이는?"-가을_시_4편_읽기
"시인들의 가을맞이는?" - 가을 시 4편 읽기

 

 

 

2. 릴케 시 '가을날' 읽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님(1875~1926, 체코 프라하)이 여름을 배웅하고 가을을 맞이하는 법입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태양 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 '가을날' 중에서.

 

폭염의 여름이 지나간다고 좋아했는데, 시인님은 그 미운(?) 여름을 이렇게 경탄하고 칭송하네요.

 

돌이켜보면 지난 여름은 얼마나 큰 일을 해놓았겠는지요? 

 

과수원의 과일들, 논밭의 곡식들, 산과 들의 무수한 열매, 열매들 ···.

 

여름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붉은 사과를 먹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과나무는 그 어린 풋사과를 안고 여름 내내 뙤약볕 아래에서 얼마나 참고 또 참았겠는지요?

 

지난여름의 힘으로 붉게 영글어가는 모든 결실에게 축복과 감사를!

 

'당신의 그림자를 태양 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이제 그 뜨거운 태양을 '당신의 그림자'로 가려달라고 하네요.

 

이제는 들판에 가을바람을 풀어놓아 달라고 하네요. 

 

그 서늘한 바람 속으로 떠나가는 여름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네요.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이렇게 시인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가을이 오는 것만 같습니다.

 

3. 김현승 시 '가을의 기도' 읽기

 

김현승 시인님(1913~1975, 평양)은 우리가 가을이 오면 해야 할 팁을 건네주시네요.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김현승 시 '가을의 기도' 중에서.

 

'기도하게 하소서'. 시인님은 우리에게 가을에는 기도를 하자고 권유하고 있네요.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를 하지 않았는지요?

 

가난한 기도, 겸허한 기도 말입니다.

 

나를 위한 기도 말고, 나의 가족을 위한 기도 말고 말입니다.

 

꿈을 이루어달라는 위한 기도 말고, 욕망이 깃든 기도 말고 말입니다.

 

타인을 위한 기도, 낮고 외로운 자를 위한 기도, 지치고 병든 이들을 위한 기도 말입니다.

 

시인님은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저 낙엽들을 보라고요.

 

언젠가 우리도 낙엽처럼 떨어져 대지에 흩어질 것이라고요.

 

어머니 같은 대지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 그대는 그 어머니에게 할, 어떤 가난한 고백을 준비하고 있느냐고요.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저 말줄임표 속에 든, 그대의 기도 내용을 꺼내 읽으시는군요.

 

4. 안도현 시 '가을의 소원' 읽기 

 

안도현 시인님(1961~ , 경북 예천)은 가을에 하고 싶은 소원의 목록을 제시해 놓으셨네요.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중략)

가끔 소낙비를 흠씬 맞는 것

▷안도현 시 '가을의 소원' 중에서.

 

이 시에는 모두 9가지 '가을의 소원'이 적혀있는데 이 두 가지가 먼저 가슴에 뛰어 들어오네요.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우리는 얼마나 적막으로부터 도망치려 발버둥쳤는지요.

 

얼마나 미주알고주알 나를 나열하고 보여줘야 했던지요.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얼마나 허둥거려야 했던지, 나 혼자 소외될까 봐 얼마나 안간힘을 써야 했던지요.

 

그런데 시인님의 '가을의 소원' 첫 번째가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도망치려 했던 적막, 이제는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적막의 포로가 되어 잡히는 것이라고 하네요.

 

포승줄에 꽁꽁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싶다고 하네요.

 

그렇게 '적막의 포로'가 되면 내가 보이게 될까요? 모른 척했던 나를, 홀로 울고 있던 나를 만날 수 있게 될까요?

 

'가끔 소낙비를 흠씬 맞는 것'. 이렇게 들뜬 몸을 식힌다면, 이렇게 메마른 마음을 적신다면 사랑스러운 나를 만나게 되겠지요?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가을맞이, 준비는 됐는지요?

 

위에 소개된 가을 시 4편,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독서목욕'에서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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