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 뜻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과연 이 문구 속에는 어떤 비밀이 들어있을까요?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이해하고 각자의 의도대로 사용하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중심으로 함께 들어가면서 사유의 우물물로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뜻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에 대한 뜻,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주 가운데 자기보다 더 존귀한 이는 없음.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한 말이라고 한다.'
- 표준국어대사전 '천상천하 유아독존' 뜻풀이 중에서
과연 무슨 뜻일까요? 사전의 뜻풀이를 읽어도 그 뜻이 명확히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주 가운데 자기보다 더 존귀한 이는 없다'라는 문장의 뜻을 또 생각해야하네요. 그 뜻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문장 그대로 단순히 '내가 최고 존귀하다'는 ‘자만’의 뜻이 담긴 말일까요? 자비로운 붓다가 과연 그런 의미로 말씀을 했을까요?
아래의 이런 문장을 만나면, 이 구절의 심오한 뜻을 알고 싶은 우리는 더욱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봇목에 논을 가지고서도, <유아독존> 식으로 날뛰는 절 사람들의 세도에 눌려 흘러오는 물조차 맘대로 못 댄 곰보 고서방은, 마침내 딴은 큰 맘을 먹고 자기 논 물고를 조금 더 터놓았다.
- 김정한 단편소설 「사하촌」 (요산기념사업회)중에서
이 문장에 쓰인 '유아독존'은 '자기만 챙긴다' 또는 '자기만 살려고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절 사람들의 독단적이고 오만하며 이기적인 태도를 나타내려는 듯합니다. 위의 단편소설 「사하촌」 은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입니다. 시대에 따라 언어의 결이 달라져 '유아독존'이 이 시대에는 주로 이런 뜻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많이 쓰였겠구나 하고 짐작해 봅니다.
그런데요, 이 구절은 여전히 지금 우리의 일상의 언어생활에서도 '나만 최고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뜻이 맞을까요?
2. '나와 우주가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의 의미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종교적 언어는 여러 함의(含意)를 가지고 있어, 그 속으로 들어가는 우리는 종종 길을 잃게 됩니다. 그렇지만 길을 잃고 나서 우리는 그 낯선 길 위에서 새로운 깨우침을 얻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실존 혹은 한계상황,
신에게서도 악마에게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자신만의 실존,
자기에게로의 회귀,
석가모니가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의 뜻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 한승원 자서전 「산돌 키우기」(문학동네) 중에서
어떤가요? 한승원 작가님은 자신의 자서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우리 개인 각자의 실존의 절대적이고 극한적인 고독을 담고 있다는 의미로 새겨집니다. 그런데요, 「아제아제바라아제」 「원효」 같은 명작 장편소설을 낼 정도로 불교에 식견이 높은 한 작가님조차 '어렴풋이 짐작했다'라고 여지를 남깁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해야할까요?
글을 읽다 보면 우리를 깨워주는 놀라운 문장을 만나게 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말풍선처럼 머리 위에 달고 다닐 때 아래의 문장을 만났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현대 고승들을 많이 친견한 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
서옹스님, 구산스님, 법정스님, 혜암스님, 서암스님, 법전스님, 일타스님, 청화스님, 동춘스님, 혜국스님, 수불스님 등은 직접 친견한 분들이고, 상좌스님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분들은 경봉스님, 진제스님, 청담스님, 성철스님, 송담스님 등이다.
고승들이 깨달았을 때의 사연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나와 우주가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우주와 한 몸인데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나와 남도 한 몸(同體)인 것이다.
법정스님께서도 남이란 '또 다른 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 「행복한 무소유」(정찬주 지음, 정민미디어)
정찬주 작가님 경험이 담긴 위의 글에서 우리는 이 문장에 주목합니다.
고승들이 깨달았을 때의 사연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나와 우주가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 「행복한 무소유」(정찬주 지음, 정민미디어)
하나같이 '나와 우주가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나와 남도 한 몸'이라고 하네요. 그러면 우주 전체가, '천상천하'가 한 몸이네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가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우리는 한 길을 만난 것만 같습니다. 여전히 낯선 길이긴 하지만요.
3. 중생을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삶
우리 생각의 창을 다시 활짝 열어주는 아래의 문장을 읽어볼까요?
왜냐하면, 아상을 버린 보살에게는 나와 세계라는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분별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수미산과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
수미산은 사해(四海)의 중심에서 온 세상을 아우르는 큰 산이다.
부처님께서 수미산왕과 같이 큰 몸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육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자신의 몸으로 생각하고 사는 보살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보살의 자기 존재(自身), 즉 자기정체성(自己正體性)이다.
-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이중표 지음, 민족사)
모든 중생을 자신의 몸으로 생각하고 사는 보살의 삶! 그래서 부처님의 몸은 큰 몸이라고 하네요.
나와 우주가 한몸이라는 고승들의 깨달음, 그리고 모든 중생을 자신의 몸으로 여기는 삶.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뜻을 새겨보다가 우리는 이런 경이로운 문장을 만나게 되었네요.
그런데요, 우리가 만난 이런 문장을 ‘이해했다’고 할 때, 우리는 언어로 해석된(!) 의미만 파악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오묘한 실체를 모두 알 수는 없겠네요.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언어로 붓다의 문장을 오롯이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그 경지로 가지 않는 한에는요.
그래도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그 핵심 가까이 가고 싶네요. 그런 애면글면의 과정에서 우리의 생각도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테니까요. 여기까지 힘들게 오면서 우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알게되었을까요? 위의 한승원 작가님처럼요.
나와 우주가 한몸이고 모든 중생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 현상 세계의 모든 것은 이미 불성의 현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한 손을 높이 들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친 붓다의 생각을 확연히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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