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선 시인님의 시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만납니다.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시인님은 이 시를 통해 어떤 삶의 비의를 우리에게 보여줄까요? 신비롭고 고요한 심연 같은 이 시의 소중한 자양분으로 함께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심보선 시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읽기
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심보선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으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중에서
심보선 시인님은 1970년 서울 출신으로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돼 등단했습니다. 2008년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낸 데 이어 「눈앞에 없는 사람」(2011), 「오늘은 잘 모르겠어」(2017) 등의 시집을 펴냈습니다.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의 문화매개전공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시집 말고는 예술 비평집 「그을린 예술」(2013),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2019) 등이 있습니다.
2. 시인이자 사회학자가 쓴 '까마귀' 같은 시들
심보선 시인님은 24세에 신춘문예로 등단해 14년 만에 첫 시집을 내셨네요. 오랜 세월 숙성되어 나온 시들이겠네요. 그는 등단 후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내기까지 대학에서 문화예술사회학 공부와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시인님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과 대학원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회학자이기도 합니다.
빗방울이네는 심보선 시인님의 시가 '까마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까마귀가 무슨 색인지 아이가 빗방울이네에게 물었어요. 빗방울이네는 별생각 없이 까만색이니 까마귀지, 하고 답했습니다. 아이는 눈망울을 굴리며 보랏빛이던데? 하고 되물었지요. 그대는 까마귀가 무슨 색이라고 생각하는지요? 파란색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심보선 시인님의 시가 그렇습니다. 빗방울이네는 까맣다고 읽었는데 다른 이는 보랏빛이라고 읽고 또 다른 이는 파랗다고 읽으니까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읽히는 것, 이것이 심보선 시인님 시의 매력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편안히 읽고 음미하면 되겠네요.
그런데요, 왜 제목이 '슬픔이 없는 십오 초'일까요? 이 시에서 시인이 '슬프다'라고 직접 진술한 구절이 있습니다(아래).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 심보선 시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에서
이 구절에 따르면, 시인은 '현재는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라고 합니다. 꽃의 나날이지만 꽃이 항상 피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피고 집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를 슬픔에 빠지게 하네요.
현재 = 꽃의 나날 = 꽃이 피고 지는 시간 = 슬픔
'현재는 슬픔'이라고 하네요. 현재가 온통 슬픔이라서 싫다고요? 과연 시인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요?
모름지기 시인이란 슬픔을 아는 자일 것입니다. 빗방울이네에게 시인의 정의를 요구한다면, 시인이란 세상의 모든 생명과 사물, 사건에 스며있는 슬픔을 알아차리는 존재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네요. 시인이 말한 이 15초는 현실의 온갖 번다한 인연과의 연결에서 끊긴 아주 잠깐 동안의 시간 아닐까요? 진공 같은 상태 말입니다. 일상에서 '사유의 정전'처럼 가끔 찾아오는 '틈새' 말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바라본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떨까요?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 심보선 시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에서
사회학자인 시인이 본 오늘의 세상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존재들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하네요.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말을 하고 부끄러움을 모르고 남의 것을 뺏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함부로 사랑하고, 술 취해 망발하고, 고귀한 생명을 가벼이 여기며 억누르고 착취합니다. 이렇게 슬픔이 없는 15초 동안 시인이 바라본 이쪽 세상은 참으로 슬프네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심보선 시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에서
이 구절에서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의 법칙'이 떠오릅니다.
자연 안에는 자연의 법칙에 대립하는 것은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는 까닭에,
그 대신 모든 것은 자연의 일정한 법칙들을 따라 이루어지며,
따라서 이 법칙의 일정한 결과들을 일정한 법칙에 따라 지칠 줄 모르는 연쇄로 산출하는 까닭에,
사물을 참되게 생각할 때
영혼은 동일한 결과들을 표상적으로 계속 형성해 나간다는 점이 이로부터 따라 나온다.
- 「지성교정론」(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지음, 김은주 옮김, 도서출판 길) 중에서
우리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거기서 빠져나오지 않고 종종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전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법칙을 스스로 구축해 그 속에 '기거'하면서, 뻔히 나오게 될 오늘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고 희망해 온 허망한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가까이 술이나 담배나 어떤 성향이나 희망처럼 말입니다.
3. 짧은 문장 속의 심연에서 자유롭게!
이렇게 심보선 시인님의 시 '슬픔이 없는 십오 초'의 두어 구절만을 곱씹었을 뿐인데 이 글이 벌써 원고지 11장이 넘어버렸네요. 이렇게 짧은 문장 속에 심연이 든 시였네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깊고 고요한 심연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자신의 처지에 따라 슬퍼하고 기뻐하며 위로받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에 다가가는 일은 새로운 노래를 익히는 일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떤 노래가 좋아서 여러 번 듣고 따라 부르다 보면 그 노래가 어느새 몸에 착 달라붙게 됩니다. 새로운 시를 맛보는 일도 그런 것 같습니다.
노래도 처음에 어떤 구절의 가사나 가락이 좋아서 친해지듯, 시도 처음부터 통째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노래를 익히듯 시를 자꾸자꾸 읽어야겠네요. 그러면서 우리가 균형을 잡고 자전거 패달을 힘껏 저어가면 저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깨달음을 만날 수 있을까요?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 심보선의 시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에서
이렇게 우리는 끝내는 넘어질 운명이라고 하네요. 맞습니다!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없겠네요. 그러나 자전거 두 바퀴가 구르는 한 이 사람은 자전거 위에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대의 삶은 잘 굴러가고 있는지요? 아니, 잘 굴리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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