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당 정인보 님이 작사한 '삼일절 노래'를 만납니다. 삼일절(3·1절) 노래에는 어떤 역사적 장면이 깃들어 있을까요? 한 소절씩 음미하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삼일절 노래' 부르기
三一節(삼일절) 노래
▷ 정인보 작사, 박태현 작곡
己未年(기미년) 三月(3월) 一日(1일) 正午(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大韓獨立萬歲(대한독립만세)
太極旗(태극기) 곳곳마다 三千萬(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義(의)요 生命(생명)이요 敎訓(교훈)이다
漢江(한강) 물 다시 흐르고 白頭山(백두산) 높았다
先烈(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同胞(동포)야
이날을 기리 빛내자
▷「한학자·역사학자 정인보 시집」(정인보 지음, 알바룩스 펴냄, 2017년) 중에서
2. 구절마다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역사의 장면들
정인보 님이 작사한 '삼일절 노래'는 3·1 운동의 전개와 그 의미를 매우 극적으로 구성해 감동을 주는 노랫말입니다.
'기미년 3월 1일 정오'
이렇게 3·1 운동이 일어난 '연월일'과 '시간'을 노랫말 첫 줄에 명시하여 노래를 부르는 우리를 순식간에 그 시간대로 데려가주네요.
이 기미년은 1919년, 일제강점기(1910~1945)입니다.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식민지로 살아야 했던, 일제강점기 36년의 초반부에 3·1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전체 노랫말에서 매우 역동적인 부분입니다. 한번 터지자 밀물 같았다고 하네요. '대한독립만세'라는 외침 말입니다.
한·일합병(1910년)으로 국권을 빼앗기고 10년이 지난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수탈과 억압이 날로 더해가던 때였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억눌려 응축된 분노가 밀물처럼 터져 일제의 가슴으로 밀어닥쳤네요.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성난 함성과 파도 같은 태극기의 물결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한국사연표(韓國史年表)」(이만열 엮음, 역민사, 1996년)에 따르면, 이날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서울 파고다공원을 시작으로 독립요구 시위가 계속되어 6개월 여 동안 전국 각지에 퍼졌습니다. 일제에 맞서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고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전국에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3·1 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실패로 끝을 맺었습니다.
위 책에 따르면, 3·1 운동의 총참가자는 136만 명, 피살 6,670명, 부상 14,600명, 투옥 52,730명에 달했습니다.
'이날은 우리의 의(義)요 생명(生命)이요 교훈(敎訓)이다'
비록 3·1 운동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목적을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우리의 의(義)요 생명(生命)이요 교훈(敎訓)'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의 결과로 탄생했다.
3·1 독립선언서 첫 줄에 '조선이 독립국임'을 밝혔다.
그 독립 국가의 이름을 짓고 그것을 운영할 정부를 들고 나선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바로 알기」(이봉원 지음, 정인출판사, 2010년) 중에서
3·1 운동으로 나라의 독립은 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소중한 성과를 낳았습니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일제치하 나약하게 움츠리며 흐르던 한강물은 한강물이 아니었습니다. 일제치하 아무 말도 못 하고 높았던 백두산은 백두산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민족 스스로의 목소리로, 스스로의 몸짓으로, 스스로의 뜻으로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해외에서였지만 임시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삼천리 방방곡곡의 강물이 다시 흐르고 산이 우뚝 높았다 합니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기리 빛내자'
우리나라 헌법 '전문'의 첫 구절을 만나봅니다. '전문(前文)'은 헌법 맨 첫머리에 등장하는 아주 긴 하나의 문장으로 된 공포문입니다. 헌법 제정의 역사적 과정과 목적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 대한민국헌법 '전문' 중에서
헌법의 첫 문장에 등장하는 우리의 빛나는 역사가 바로 3·1 운동입니다. 우리나라는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네요. 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과 태극기와 애국가라는 국가의 상징을, 뜨거운 민족의 얼을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래서 '3·1 운동'은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 '한글날'과 함께 우리나라 5대 국경일의 하나로 꼽힙니다.
3. 우리나라 4대 국경일 기념 노래를 모두 작사한 정인보
'삼일절 노래'를 작사한 분은 정인보 님(鄭寅普, 호 위당, 담원. 1893~?, 서울)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5대 국경일 노래 중에서 한글날을 제외한 4대 국경일(3·1 운동,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을 기념하는 노래의 노랫말을 모두 쓴 분입니다.
어떤 분일까요?
「한국인물대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중앙일보 발행, 1999년)에 따르면, 정인보 님은 학덕 높은 한학자이자 교육자, 독립운동가, 언론인이었습니다.
그는 상해에서 신채호 박은식 신규식 등과 동제사를 조직해 광복운동을 펼쳤고, 연희전문학교 등에서 한학과 역사학을 강의했으며, 동아일보 등 언론사의 논설위원으로 민족정기를 고무하는 논설을 펴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안타깝게도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7월 31일 서울에서 공산군에 의해 납북되었습니다.
이 '삼일절 노래'를 작곡한 분은 박태현 님(1907~1993, 평양)입니다. '삼일절 노래'를 비롯 '한글날 노래', '코끼리 아저씨' '산바람 강바람' 등 200 여곡의 노래를 작곡했습니다. 2003년 박태현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고,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한 그를 기리는 '성남박태현전국창작동요제'가 해마다 개최되고 있습니다.
박태현 작곡가님은 '삼일절 노래' 악보의 왼쪽 어깨에 이 노래를 '조금 느리게' 불러달라고 표기해 두었네요.
'조금 느리게' 가사를 음미하며 불러봅니다.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
그날의 우렁찬 함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하나 된 뜨거운 마음, 물러설 줄 몰랐던 용기, 그리고 비폭력의 평화!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그 비장한 함성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간곡히 당부하는 것만 같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아름다운 동요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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