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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황동규 시 삼남에 내리는 눈

by 빗방울이네 2024.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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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님의 시 '삼남에 내리는 눈'을 만납니다. 전봉준 녹두장군을 소재로 한 시, 과거를 생각하며 오늘을 돌아보게 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황동규 시 '삼남에 내리는 눈' 읽기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 황동규(1938년~ , 서울)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 황동규 시선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년 초판, 1988년 중판) 중에서

 

 

2.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황동규 시인님의 시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은 1968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시입니다.
 
'삼남(三南)'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가리는 말입니다. '삼남에 내리는 눈'은 '서울'에 내리는 눈 말고, 민중들이 사는 농경지역 '삼남'에 내리는 눈에 대한 이야기네요.
 
어떤 시일까요?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 황동규 시 '삼남에 내리는 눈' 중에서

 
제목을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이라고 해놓고 '봉준(琫準)이가 운다'라고 하네요. 그러니 삼남(三南)을 여행하면서 만난 눈이 불현듯 시의 화자에게 '봉준(琫準)이'의 눈물처럼 느껴졌네요. 
 
'봉준(琫準)이'는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 녹두장군(1855~1895, 전라 정읍)을 말합니다. 바로 이 시의 소재가 전봉준 장군입니다.
 
전봉준 장군은 1894년 3월 민중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들을 몰아내고 봉건체제의 개혁을 위하여 1차로 봉기하고, 일제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지키기 위해 그해 9월에 2차로 봉기하여 농민들과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아 한문만 알았던들'. 훈장을 지낸 일이 있는 그가 '한문'을 몰랐을리가요. 이 '한문'과 '부드럽게 우는 법'의 은유는 조선시대 지배계급인 사대부들의 위선에 대한 야유입니다.
 
그들처럼 아첨하고 유식한 척 점잖은 척 허세 부리지 않고, 사대주의에 물들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민중들의 삶과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식하게 무식하게' 흔들림 없이 분연히 일어섰던 인물이 바로 전봉준이라는 말이네요.

그들이 알았던 처세의 지식일랑 모르는 그런 '무식'이 아니라면 그렇게 의로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지요.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 큰 왕의 채찍! /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 황동규 시 '삼남에 내리는 눈' 중에서

 
우리에게 왕이 있지만 '왕 뒤에 더 큰 왕'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우리 땅을 호시탐탐 노리는 청나라와 일본입니다. 그 시절 이들 외세의 군마는 마치 자기 나라 드나들듯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어 우리 땅을 활보하며 횡포와 압력을 행사합니다. 그들로 인해 우리 땅은 '부챗살로' 갈라졌습니다. 그 속에서 민중들은 신음하고 고통받던 시간입니다.
 
'큰 왕의 채찍!'. 외세의 침략과 조정의 부패를 혁파하기 위해 일어선 동학농민혁명은 '큰 왕의 채찍'으로 주저앉고 맙니다.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무능한 정부가 외세의 군마를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했던 전봉준 장군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때는 40세였습니다. '삼남'에서 불타올랐던 그의 의지는 일본의 침략 야욕에다 이런 외세에 의존하려는 조선왕조 봉건지배층의 부패와 무능, 체제수호에 눈이 먼 유생들의 벽에 꺾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귀기울여보아라"-황동규시'삼남에내리는눈'중에서.
"귀 기울여 보아라" - 황동규 시 '삼남에 내리는 눈' 중에서.

 

 

3.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 무식하게 무식하게

- 황동규 시 '삼남에 내리는 눈' 중에서

 
이 시의 도입부에서 시인님은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이자 격전지였던 '삼남(三南)'을 여행하면서 '눈'을 만났고, 그 '눈'이 마치 '봉준(琫準)이'의 눈물인 것만 같다고 여겼습니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요? 이 시가 발표된 때는 1968년입니다. 당시 30세 시인님이 건너가던 시대는 유신독재시대로 불리던, 삼엄한 억압의 시대였습니다.
 
'눈이 내린다'라고 합니다. 전봉준 장군, 그리고 그와 함께 스러져간 민초들의 울분의 눈물 말입니다. 군사독재로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억압받는 민중들의 고통과 분노의 눈물 말입니다. 
 
시인님은 그런 서러운 눈물 같은 '눈이 내린다'라고 하면서, 거기에 '귀 기울여 보아라'라고 우리에게 청합니다.

거기서 뭐가 들린다는 말일까요?

오로지 고통받는 부모 형제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앞뒤 재지 않고 오로지 민족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무식하게 무식하게' 싸웠다고 외치는 그 의로운 목소리가 들렸을 것만 같습니다. 억압된 현실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시인님의 분노와 새 시대를 향한 갈망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2024년은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입니다.

외세와 부패와 억압 -.

그 거대한 힘의 덩어리에 깔려 신음하던 130년 전, 그리고 시인님이 눈을 만난 1960년대,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귀 기울여 보아라'라는 구절이 가슴에 들어오는 밤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황동규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황동규 시 기항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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