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박은옥 가수님의 노래 '봉숭아'를 만나봅니다. 봉숭아 꽃물 들여주던 다정한 이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노래입니다. 함께 읽으며 부르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태춘 박은옥 노래 '봉숭아' 읽고 부르기
봉숭아
박은옥 작사 정태춘 작곡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 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정태춘 노래 에세이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정태춘 지음, 천년의시작, 2019년) 중에서.
2.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고운 내 님'
'봉숭아'는 1985년 정태춘 박은옥 5집인 '85 정태춘 박은옥'에 7번째 곡으로 발표된 노래입니다.
이 앨범에는 타이틀 곡 '북한강에서'를 비롯, '사망부가' '애고돌솔천아' '서해에서' '장서방네 노을' '들가운데서' 등 모두 10곡이 실렸습니다.
위의 책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에 실린 '봉숭아' 노랫말 아래에 '1981년 1월 박은옥 작사'라고 적혀있네요.
이렇게 '봉숭아'는 노랫말도 박은옥 님이 짓고, 노래도 박은옥 님이 메인이고, 정태춘 님은 단지 가느다란 소리로 화음만 넣고 있습니다.
맑고 고운 박은옥 님의 목소리에 흠뻑 젖는 일,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해서 감질나는 정태춘 님의 화음을 애타게 쫓는 일, 이 둘이 '봉숭아'의 감상 포인트랄까요?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 이 밤이 다하면 질 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봉숭아'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리운 내 님'이 떠오릅니다. 박은옥 님이 애틋하게 '그리운 내 님'을 찾고 있으니 이 '그리운 내 님'은 남자겠지요?
그런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저마다 사랑하는 그리운 이를 떠올리게 됩니다. 먼저 가신 부모님이나 멀리 있는 친구가 떠오르기도 하겠고요.
'저 별'이 지면 '그리운 내 님'이 찾아올까요? '이 밤에 다하면' 지게 될 별인데도, 어서 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네요. 날이 밝아 '그리운 내 님'이 올 수 있도록요. '그리운 내 님'도 별이 지기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 곱디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봉숭아 꽃물 들이기네요. 손톱에요. '곱디고운 내 님'과 봉숭아(봉선화) 꽃잎을 빻아서 손톱에 물을 들인 일이 있었네요. '그리운 내 님'이 나의 '손톱 끝에' 꽃잎 빻은 것을 올리고 헝겊으로 싸서 무명실로 매어주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다정한지요.
그렇게 다정한 '내 님'이 지금은 곁에 없네요. 그래서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간 물을 들이며 그리움을 달래고 있네요.
그러나 손톱 끝 빨간 봉숭아 물은 몇 밤만 지나면 지워지겠지요? 그렇게 지워져 버리면 그리움을 달랠 수도 없을 텐데, 빨리 오지 않고 무얼 하시나, 이렇게 그리워하고 있네요
이 부분의 가사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라는 구절은 손톱 끝에 봉숭아 꽃물이 든 것일 텐데요, 손톱 끝에 봉숭아 꽃이 피어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켜줍니다.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라는 구절은 그 꽃물이 지워진다는 말일 텐데요, 손톱 끝에 핀 봉숭아 꽃이 떨어져 버린다는 생각을 들게 하네요.
그리고요, 이 2연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화음이 진행됩니다.
가사의 '손톱 끝'부터 정태춘 님이 등장합니다. 등장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게 아주 조용히요. '손톱'의 '손'이 아니라 '톱'부터요. 그리고 이 2연 전체에서 정태춘 님은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며 화음을 넣습니다. 박은옥 님이 간절히 기다리는 '그리운 내 님'처럼 아련히 먼 곳에 있는 것만 같이요.
빗방울이네는 '봉숭아' 노래 중에서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함께 부르는 이 2연이 참 좋습니다. 특히 정태춘 님은요, 박은옥 님이 공들여 조성해 놓은 청아한 분위기에 아주 작은 흠집도 내지 않겠다는 작정입니다. 얼마나 조심스럽고, 또 다정하게 뒤를 받쳐주는지 모릅니다.
그 와중에 평생의 아내가 되어주신 박은옥 씨를 만났고, 그의 첫 앨범은 모두 나의 곡으로 짜여졌다.
▷위의 같은 책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중에서
이 문장 속의 '평생의 아내가 되어주신'이라는 구절에서 두 손이 모아지네요. 아내에 대한 이렇게 고운 문장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정태춘 님이 가수로 데뷔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소개하던 중에 나온 문장인데요, 아내를 향한 남편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그런 정태춘 님의 마음이 2연의 화음에 흐르고 있는 듯합니다. 얼마나 따뜻한 지 모릅니다.
3.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별 사이로 맑은 달 /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 어둠 뚫고 나타나소'
이 3연에서도 정태춘 님의 목소리가 화음으로 등장하는데요 두 번째 소절부터 나옵니다. '구름'부터요.
박은옥 님의 뒤에 가만히 숨어있다가 '구름 걷혀 나타나듯' 묵직한 저음으로 등장합니다. 박은옥 님이 가사 속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고운 내 님 웃는 얼굴'이 '어둠 뚫고' 나타나듯이 말입니다.
구름 걷고 맑은 달이 나타나듯 님의 얼굴이 이 어둠의 시간을 뚫고 나타나길 기다린다는 구절이 참 좋네요. 별안간 나타날 '고운 내 님 웃는 얼굴'이 눈에 환하게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이 구절이 노래 '봉숭아'의 주절이네요. 1연에서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터인데'라고 했으니 몇 밤 안에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앞의 3연에 나오는 '나타나소', 그리고 이 마지막 4연에 나오는 '나오시고' '돌아오소'라는 구절이 참 좋습니다. 그리운 내 님을 높이 그리워하는 고운 자세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런 고운 자세로 저마다의 '내 님'을 그리워하게 되네요.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는 님도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님도 있겠지요? 비록 돌아올 수 없는 님이라 할지라도, 이 아름다운 '봉숭아'에 빠져 '돌아오소' '돌아오소'라고 무한반복 듣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꿈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겠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정태춘 박은옥 님의 노래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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