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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규동 시 해는 기울고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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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규동 시인님의 시 '해는 기울고'를 읽습니다. 우리에게 지혜로운 팁을 주는 마법 같은 시입니다. 어떤 울림으로 우리의 영혼을 씻어줄까요? 함께 시를 읽으며 시에 스미며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김규동 시 '해는 기울고' 읽기

 
해는 기울고
 
- 김규동(1925~2011)
 
운명
 
기쁨도 
슬픔도
가거라
 
폭풍이 몰아친다
오, 폭풍은 몰아친다
이 넋의 고요.
 
인연
 
사랑이 식기 전에
가야 하는 것을
 
낙엽 지면
찬 서리 내리는 것을.
 
당부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보면
보이리
길이.
 

- 김규동 시집 「느릅나무에게」(창비) 중에서


함경북도 종성 출생인 김규동 시인님은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 1955년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했습니다.

그는 이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나의 시는 발상에서 형상화에 이르는 경로가 대체로 현실사회의 어둠과 모순에 관심두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역임했고, 만해문학상과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기쁨도 슬픔도 가라고 한 까닭은?

 
김규동 시인님은 23세 때인 1948년 북쪽에서 홀로 남쪽으로 내려와, 75년 동안 두고 온 북녘 고향을 그리워하며 통일을 열망하는 시를 쓰며, 시에 의지하며 사신 분입니다. 
 
놀다보니 다 가버렸어 / 산천도 사람도 다 가버렸어 // 제 가족 먹여살린답시고 / 바쁜 체 돌아다니다보니 
(중략)
북녘 / 내 어머니시여 / 놀다 놀다 / 세월 다 보낸 이 아들을 / 백두산 물푸레나무 매질로 / 반쯤 죽여주옵소서 죽여주옵소서

- 위 시집의 시 '죽여주옵소서' 중에서

 
북녘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남쪽 땅에서 늙어버린, 이제는 어머니를 찾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 김동규 시인님의 애끓는 심정이 느껴집니다. 모든 생명의 삶이 산전수전이겠지만, 어머니 아버지 품을 떠나 형제자매를 떠나 고향땅을 떠나 한평생을 사는 일은 어떠했을까요? 
 
오늘의 시 '해는 기울고'에는 신산한 삶의 늪을 헤쳐온 노시인이 마침내 터득하게 된 삶의 비의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먼저 '해는 기울고'라는 시의 제목은 노을을 시의 배경으로 펼쳐놓습니다. 그 붉은 노을 속에는 안타까움과 아픔과 슬픔 같은 감정들과 인생에 대한 회환과 깨달음도 섞여 있을 것입니다.
 
이 시는 시 속에 작은 제목 3개(운명, 인연, 당부)를 두고 그 속에 각각 짧지만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기쁨도 / 슬픔도 / 가거라

- 김동규 시 '해는 기울고' 중에서

 
우리는 이 첫 구절부터 발이 돌부리에 걸린 듯 휘청입니다. '슬픔'은 가야겠지만, 왜 '기쁨'도 가라고 했을까요? 한 줄로 이어도 될 짧은 시행을 3행으로 나눈 것은 각별한 뜻이 있다는 시인의 눈짓일 것입니다. 
 
괴로운 느낌에서 벗어나고자 하거나 즐거운 느낌을 구하고자 하는 욕구를 버리고 평정한 마음에 머물러야한다

- 「붓다의 철학」(이중표 지음, 불광출판사)

 
붓다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기쁨에도 슬픔에도 얽매이지 말라고 말입니다.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이 올까요? 바로 평정한 마음입니다. 
 
이 넋의 고요

- 김동규 시 '해는 기울고' 중에서

 
김동규 시인님은 미로 같은 삶의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기쁨도 슬픔도 부질없는 감정의 부스러기였음을 알았고, 그것에 얽매이지 않으면 고요함을 얻게 된다는 진리를 '운명' 속에 담아두었네요.
 
사랑이 식기 전에 / 가야하는 것을 // 낙엽 지면 / 찬 서리 내리는 것을

- 김동규 시 '해는 기울고' 중에서

 
'인연' 속에 있는 4행입니다. 노시인은 결국 북녘 고향땅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이, 이번 생의 '인연'이라는 통한의 결론에 이르고 만 것일까요?
 

가는데까지가거라가다막히면앉아서쉬거라쉬다보면보이리길이김규동시중에서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보면 보이리 길이 - 김규동 시 중에서

 

 

3. 지친 삶을 위로해 주는 마법의 세 문장

 
가는 데까지 가거라 / 가다 막히면 / 앉아서 쉬거라 // 쉬다보면 / 보이리 / 길이

- 김동규 시 '해는 기울고' 중에서

 
마지막 '당부'는 참으로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을 줍니다. 빗방울이네는 누군가 자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둔 이 문장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해오던 일을 떠나, 낯선 부서 낯선 일 낯선 사람 사이에서 허둥거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 이렇게 쉬라고 하는 어른도 계시구나. '더 열심히 하라, 그러면 길이 보일 것이다'라는 말만 들어왔거던요.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보면 보이리 길이'라는 이 뜨거운 문장을 품고 있으니 가슴이 먹먹해지다가 편안해졌습니다.

그렇게 쉬다보면 보이게 될 길이, 통일의 길이든 인생의 길이든 시인은 말하지 않지만, 그것은 대수가 아닐 것입니다. 통일의 길도 우리가 가야 할 삶의 길 중 하나일 테니까요. 그대도 좀 편안해지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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