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맛집으로 동래구 사직동 '서울칼국수'에 칼국수 먹으러 갑니다. 칼국수라는 음식은 왜 그리움을 길게 달고 있을까요? '서울칼국수'에서 칼국수 먹고, 문인수 시인님의 시 '칼국수'도 읽으며, 칼국수처럼 뜨겁고 부드러운 그대의 그리움 속에서 몸과 마음을 맑혀보세요.
1. 30년 전통의 '서울칼국수'
부산 동래구 사직동 '서울칼국수'(부산 동래구 사직북로 23-3)입니다. 사직동 국민시장에 있던 이 맛집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자리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었네요. 골목 깊숙이 숨은 듯 자리하고 있는 이 집을 발견한 순간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지요. 어떤 매력의 집일까요?
노란색 간판인데, 거기 '30년 전통 서울칼국수'라고 적혀 있네요. 칼국수를 이리 오래 내었으면 무언가 비법이 있는 곳이라 믿어도 좋습니다. 식당 내부는 깔끔하고, 특히 모서리가 둥근 원목 식탁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네요.
식탁 위에 막 도착한 칼국수를 영접하는 순간, 절로 침이 넘어갑니다. 고명으로 앉은 쑥갓의 초록색이 구미를 확 당깁니다. 쑥갓과 함께 김가루, 깨소금, 양념장이 면 위에 올라가 있네요.
젓가락으로 면과 양념장을 휘저으며 골고루 비벼봅니다. 생쑥갓이 뜨거운 국물에 풀어지면서 올라오는 특유의 쑥갓향이 참 좋습니다.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얼마나 사람을 설레게 하는지요? 신선한 맛, 이건 무조건 몸에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면이 맛있네요. 직접 반죽을 밀어 칼로 썰어낸 듯한 울퉁불퉁한 면은 목 넘김이 정말 좋네요. 면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 간질간질한 촉감, 덜큰하고 구수한 탄수화물의 꽉 채워주는 식감은 두 눈을 스르르 감기게 한달까요?
국물 맛도 깊네요. 칼국수 대접에 고개를 박고 면을 건지고 국물을 들이켜다 보면 그 하염없는 맛의 깊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네요. 칼칼한 국물이 속을 따듯하게 풀어줍니다. 그래서 이 집은 해장하러 오는 주당들의 '방앗간' 같은 곳이랍니다.
무엇보다 맛있고 저렴하다는 것이 이 집의 제일 장점일 것입니다. 요즘 보통 7,000~8,000원 하는 칼국수가 이 집에는 4,500~5,500원입니다. 비빔칼국수(5,000~6,000), 옹심이칼국수(6,000~7,000), 들깨칼국수(7,000~8,000), 만두(5,000), 김밥(3,000)이 메뉴판에 올라있습니다.
2. 이 가닥 다 이으면 어머니 아버지와 통화가 될까요?
'서울칼국수'를 먹으며 문인수 시인님의 시 '칼국수'를 읽습니다. 칼국수는 왜 언제나 이리도 아련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음식일까요?
칼국수
- 문인수
어머니, 여름날 저녁 칼국수 반죽을 밀었다.
둥글게 둥글게 어둠을 밀어내면
달무리만하게 놓이던 어머니의 부드러운 흰 땅.
나는 거기 살평상에 누워 별 돋는 거 보았는데
그때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 어흠 걸터앉으며
물씬 흙 냄새 풍겼다 그리고 또 그렇게
솥 열면 자욱한 김 마당에 깔려 ··· 아 구름 구름밭,
부연 기와 추녀 끝 비죽히 날아 오른다.
이 가닥 다 이으면 통화가 될까.
혹은 긴 긴 동앗줄의 길을 놓으며
나는 홀로 무더위의 지상에서 칼국수를 먹는다.
- 문인수 시집 「홰치는 산」(천년의시작) 중에서
이 시에서 화자는 어느 여름날 저녁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칼국수를 먹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네요.
어머니는 칼국수 반죽을 밀고 시의 화자는 평상에 누워 별이 뜨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아, 이런 풍경은 얼마나 행복하고 행복한지요.그때 들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가 평상에 걸터앉았는데 흙냄새가 훅 끼쳐옵니다.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깊고 다정한 아버지 냄새와 함께였겠지요. 참으로 이런 시간은 설혹 가난할지언정 얼마나 진정 부유한 시간인지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 그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의 화자 곁에 없나 봅니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 혼자 칼국수를 먹으며 어머니 아버지, 그 시간과 공간을 그리워합니다. 이렇게요.
칼국수 가닥을 다 이으면 통화가 될까?
- 문인수 시 '칼국수' 중에서
어찌하면 좋겠는지요? 이 그리움을요. 칼국수 먹을 때 밥상 위에 칼국수 몇 가닥을 서로 길게 이어 보는 장난을 하다가 어머니에게 야단맞았던 어린 시절이 불쑥 떠오르네요. 그렇게 어릴 때처럼 칼국수 가닥을 이어 보는 장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 떠러 가셨다 오신 어머니가 밥상 위에 칼국수를 어지럽게 늘어놓은 어린 빗방울이네를 야단쳐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운 어머니, 제 볼기를 백대 천대 맞아도 좋겠습니다!
3. 입맛도 닮아가고 생김도 닮아가는 짝꿍
오늘은 짝지 풀잎과 함께 '서울칼국수'를 먹었습니다. 우리는 입맛이 서로 잘 맞는 편입니다. 빗방울이네가 좋으면 풀잎도 좋습니다. 반대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입맛이 달랐는데, 오랜 시간 속에서 입맛이 비슷해졌네요.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걱정을 하고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니 몸도 마음도 닮아져 가는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곁에 있는 짝지와 가까이 마주 앉게 해 주고, 또 곁에 없는 그리운 이도 떠올려준 '서울칼국수', 고맙습니다. 우리는 훗날 이 뜨겁고 부드러운 칼국수를 먹으며 과거가 된 이날을 떠올리며 뜨겁고 부드러운 그리움에 몸과 마음을 떨고 있겠지요? 이렇게 또 생각하면서요.
칼국수 가닥을 다 이으면 통화가 될까?
- 문인수 시 '칼국수' 중에서
음식도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 읽고, 틈틈이 책 같은 음식 먹으며 읽으며 몸과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에서 부산 맛집 연관 글을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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