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인님의 시 '하답'을 읽습니다. 이 시는 우리를 아무 걱정 없던 어린 시절로 데려가줍니다. 거기서 개구리 뒷다리도 구워 먹읍시다. 날버들치 잡는 물총새가 됩시다. 시를 읽으며 그렇게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백석 시 '하답(夏畓)' 읽기
하답(夏畓)
- 백석
짝새가 발뿌리에서 닐은 논드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눞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 「정본 백석 시집」(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중에서
백석 시인님(본명: 백기행, 1912~1995)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오산고보와 일본 아오야마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출판부 「여성」지 편집 일, 함흥 영생여고 영어교사 등을 했습니다.
1930년 19세 때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돼 소설가로,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데뷔했습니다. 1936년 첫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으로 남은 「사슴」을 발간했습니다.
러시아 작가 시모노프의 「낮과 밤」을 비롯, 솔로호프의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다」 「고요한 돈강」, 파블렌코의 「행복」 , 푸시킨의 시 등을 번역 출간했습니다. 동화시집으로 「집게네 네 형제」가 있습니다. 1959년부터 양강도 삼수군 국영협동조합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다 1995년 84세의 일기로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이런 시를 만나면요, 시집을 꼭 껴안고 눈을 감게 됩니다. 고개를 들고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음이 붕 뜨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시간입니다. 너무 좋아서 슬픈 느낌, 바로 이런 느낌 아닐까요?
자, 함께 시로 들어가셔요.
하답(夏畓)
이 시의 제목 '하답'은 '여름의 논'을 말합니다. 여름날의 풍경을 노래한 것인데요, 시인님은 왜 시 제목을 '하답'이라고 했을까요? 여름의 논은 과연 무얼 키워내고 있을까요?
짝새가 발뿌리에서 닐은 논드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
- 백석 시 '하답' 중에서
여름 논에서는 벼가 자라고 있겠네요. 여름날 아이들이 모여 그 논의 논두렁에서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고 하네요. 왜 뒷다리냐고요? 아, 앞다리는 아주 작아요. 뒷다리가 통통하니 먹을 게 있거든요(불쌍한 개구리!).
예전에는 개구리 뒷다리가 약이 된다고, 아이들에게 잡아오면 돈을 얼마 주겠다는 장사(?)들이 있었거든요.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분리해 나뭇가지에 나란히 걸어 개선장군처럼 논두렁 길을 걸어오던 시골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이 시에서는 논두렁에서 그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왜 짝새가 발뿌리에서 날아올랐다고 했을까요?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는다고 논두렁을 뒤지는 통에 논두렁에서 벌레를 잡아먹던 짝새가 놀라 날아갔네요.
그러니까 논두렁이라는 자연은요, 아이들과 짝새들의 쉼터이자 삶터네요. 자연 속에서 짝새와 개구리는 벌레를 잡아먹고 아이들은 벌레를 잡아먹은 개구리를 잡아먹고 벌레를 잡아먹던 짝새는 아이들에게 잡아먹힐까 달아나고요.
하답, 여름 논은 이렇게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벌레와 개구리와 짝새와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네요.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늪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 백석 시 '하답' 중에서
아유, 깜짝이야요! 시인님, 거기서 뱀이 왜 나오나요! 게구멍에 손을 넣다가 뱀을 잡았네요. 정말 손에 뱀을 잡은 느낌이네요.
물쿤! 백석 시인님은 이 말 참 좋아하십니다. 그의 시 '비'에도 이 단어가 나옵니다.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 백석 시 '비' 중에서'
그런데 이때 '물쿤'은 개의 비린내 같은 냄새가 한꺼번에 확 풍겨오는 모양을 말합니다. 그런데 시 '하답'에 나온 '물쿤'은 물컹한 느낌을 말하네요. 같은 모양새의 단어인데 쓰임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점이 신비롭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논두렁에서 늪으로 왔습니다. 논두렁 가까이 있는 작은 늪이겠지요? 거기서 게를 잡으려고 아이들은 게가 숨어 사는 구멍에 손을 넣었네요. 물쿤! 아이들도 얼마나 놀랐을까요?
이 늪에 사는 생명들 좀 보셔요. 물이끼, 게, 뱀, 그리고 아이들요. 뱀은 게를 잡고 게를 잡으려던 아이들은 뱀을 잡았네요. 물이끼는 게와 뱀과 물속의 많은 생명을 먹여 살리고, 게와 뱀은 아이들을 살리고요. 따가운 햇빛은 이 모든 것을 먹여 살리네요. '하답'은 참 멋진 곳이네요.
3. 압권의 문장,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 백석 시 '하답' 중에서
아이들은 논두렁에서 늪에서 이제 냇물로 왔습니다. 내를 건너는 징검돌을 하나씩 차고앉아 몸을 말리고 있네요. 이미 햇빛에 타서 새까매진 여름 아이들의 등과 목덜미, 팔과 다리가 햇빛에 따끔거리는 것이 느껴지네요. 손바닥으로 차가운 냇물을 퍼서 뜨거운 징검돌 위로 뿌렸겠지요. 그래도 금방 다시 뜨거워지네요.
아이들은 냇물에서 멱을 감다가 또 그렇게 멱을 감고 놀던 버들치를 잡았습니다. 살아있는 버들치를 회로 먹었네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에 사는 은어도 초장에 찍어 회로 먹곤 합니다. 목을 타고 넘어가던 그 미끌하고 비릿한 느낌이 떠오르네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 백석 시 '하답' 중에서
이 시에서는 이 끝문장이 압권입니다. 이 문장으로 인해 이 시는 매우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게 되었네요. 왜일까요?
돌다리에 앉아 몸을 말리던 아이들은 버들치를 잡아 날로 먹습니다. 다 먹고 나면 숨을 죽인 채 다시 냇물을 들여다봅니다. 돌 속에 숨어버린 그 맛있는 버들치가 언제 다시 나오나 하고요.
앗, 버들치닷!
그러면 아이들은 총알같이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렇네요. 버들치를 잡아먹는 물총새처럼요. 공중에 떠서 물속을 살피다가 총알처럼 내려 꽂히며 버들치를 낚아채는 물총새처럼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이 얼마나 생생한 여름 풍경인지요? 까르르까르르 아이들의 웃음 섞인 말소리, 첨벙거리는 물소리, 매미소리 다 들려오지요? 파란 하늘, 뭉게구름 다 보이지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하답'은 이렇게 세상 만물을 키워내고 있었네요. 무엇이든 생명이라면 다 길러내고 있었네요. 징검돌 같은 생명 아닌 것도요. 얼마나 고마운지요.
빗방울이네도 아이가 되어 맨몸이 되어 '하답'으로 내달리고만 싶네요. 빗방울이네는 물총새가 되었다! 얼마나 신날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백석 시인님의 시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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