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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신경림 시 갈대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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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님의 시 ‘갈대’를 만납니다. 시인님이 자신의 시에서 꼽은 ‘최애시’입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삶의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요? 시인님의 조용한 울음소리에 마음을 맑히며 함께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신경림 시 '갈대' 읽기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 시전집1」(창비) 중에서


신경림 시인님1935년 충북 충주 출신으로 1956년 「문학예술」지에 시 '갈대' 등 3편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1973년 첫 시집 「농무」를 발간한 것을 비롯 시집 「새재」 「달 넘세」 「가난한 사랑 노래」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남한강」 등을 냈습니다.
산문집으로는 「민요기행 1,2」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1,2」 「바람의 풍경」 「진실의 말 자유의 말」 등이 있습니다. 평론집으로 「문학과 민중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 「우리 시의 이해 등이, 시 감상집 「우리의 노래여 우리들의 넋이여」  등이 있습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공동의장과 동국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고,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만해시문학상, 시카다상, 호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습니다.

2. 시인님의 ‘최애시’,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오늘 만나는 시 ‘갈대’는 신경림 시인님의 문단 데뷔작입니다. 1956년 「문학예술」지에 이한직 시인님의 추천을 받은 작품입니다.

시인님은 산문집 「한밤중에 눈을 뜨면」(나남, 1985년)에서 “이 시는 단번에 씌여졌다.“라면서, “지금껏 내가 쓴 시 가운데 이처럼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이 산문이 1981년 글인데 그때까지 시인님이 쓴 시 중 이 시가 스스로 꼽은 ‘최애시’였네요.

‘갈대’는 어떻게 쓰인 시일까요? 시인님의 전해준 말입니다.

내 고향 마을 뒤에는 보련산이라는 해발 8백여 미터의 산이 있다.
나는 어려서 나무꾼을 쫓아 몇 번 그 꼭대기까지 오른 일이 있다.
산정은 몇만 평이나 됨직한 널따란 고원이었다.
그 고원은 내 키를 훨씬 넘는 갈대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강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에 갈대들은 몸을 떨며 울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갈대들의 울음에서 나는 사람이 사는 일의 설움 같은 것을 느끼곤 했었다.

- 신경림 산문집 「한밤중에 눈을 뜨면」(나남, 1985년) 중에서


그랬네요. 어려서부터 갈대를 본 시인님의 느낌이 내면에 쌓여 있다가 시인님 21세 때 시가 되었네요.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 신경림 시 ‘갈대’ 중에서


갈대가 조용히 울고 있었다는 것은 시인님이 울고 있었다는 것이네요. 시인님의 울음은 ‘사람이 사는 일의 설움’ 때문입니다. 시인님은 어떤 삶을 거쳐왔을까요?

그(신경림)는 소년시절에 이미 ‘사람 사는 일의 설움’을 알았다.
6.25 전쟁의 학살, 마을 가까이 광산 노동자들의 삶, 시골 장터 풍경,
무엇보다 절망에 가까운 농촌경제의 파탄을 그는 몸으로 겪어 알고 있었다.

- 「신경림의 문학세계」(구중서 백낙청 염무웅 엮음, 창작과비평사) 중에서


이 같은 시인님의 개인 경험은 갈대의 흔들림에서 ‘사람 사는 일의 설움’을 느끼게 했네요. 시인님과 같은 이런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도 이 첫 구절은 공감을 줍니다. 왜일까요?

그대도 빗방울이네도 쉼 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니까요. 약한 바람에도 몸이 부스스 흔들리는 갈대처럼 우리는 상처받기 쉬운 여린 존재니까요.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신경림 시 ‘갈대’ 중에서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던 갈대가 자신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몰랐던 일을 알게 된 ‘어느 밤’이네요.

속으로 조용히 우는 일은 시선이 내면으로 향해 있지만, 자신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은 객관적 시선으로 자신을 투영해 보았다는 거네요. 그렇게 자기 자신을 관조해 본 시의 화자는 무엇을 알게 됐을까요?

신경림시갈대중에서
신경림 시 '갈대' 중에서.

 

 

3. 갈대는 왜 조용한 울음을 울고 있을까요?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 까맣게 몰랐다.

- 신경림 시 '갈대' 중에서


‘까맣게 몰랐다’는 말은 이제야 알았다는 말이네요. ‘내’가 흔들리는 이유를요. 그전에는 몰랐는데, 자기 응시를 통해 자신을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스치는 바람이나 황홀한 달빛 같은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부적인 원인, 자신의 조용한 울음이 자신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요.

조용한 울음!

이 시에서는 울음에 대한 진술이 세 군데나 됩니다. 울음은 설움이나 괴로움에서 나옵니다. 사람 사는 일의 설움, 괴로움 말입니다. 궁극적으로 홀로인 단독자로서의 삶, 끊임없는 괴로움 속에 살아가야하는 실존의 근원적인 고독과 슬픔 말입니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 그는 몰랐다.

- 신경림 시 ‘갈대’ 중에서

 

우리는 이 구절에서 큰 위로를 느낍니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 마지막 구절이 시인님의 따스한 손바닥이네요. 그 손바닥으로 시인님은 우리의 등을 다독다독 두드려주네요. 누구나 울고 있다고요. 사는 일이 원래 그렇다고요.

울고 싶은 사람, 울고 있는 사람이 빗방울이네뿐이 아니네요. 그대도 울고 싶고, 때때로 울고 있네요. 다가가서 그대 등 다독여주고 싶네요.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자기 응시에 대한 윤동주 시인님의 시 한 편을 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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