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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진규 시 남산 보름달

by 빗방울이네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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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규 시인님의 시 '남산 보름달'을 맞이합니다. 욕심 없고 집착 없는 삶에 대해 묵상한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진규 시 '남산 보름달' 읽기

 
남산 보름달
 
- 박진규(1963년~ , 부산)
 
경주 남산에 머리 없는 부처님 계시는데
한 달에 한 번은 머리가 생긴다
온 세상 비추다가 목 위에 살포시 뜨는 머리
얼마나 무량하였으면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고 귀도 없다
그래서 그 부처님 앞에 서면
사람들은 두 손으로 자기 머리를 만지면서
저 공활한 목 위에 머리를 얹어 보고는
한 번쯤 지긋이 웃어주기도 한다
 

- 박진규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신생, 2016년 1쇄, 2017년 2쇄) 중에서

 

2. 경주 남산에서 불두(佛頭) 없는 부처님 만나다

 
박진규 시인님의 시 '남산 보름달'은 2008년 11월 국제신문 국제시단을 통해 처음 발표된 시입니다. 
 
경주 남산에 있는 불두(佛頭) 없는 부처님을 보고 쓴 시네요. 과연 어떤 시일까요?
 
경주 남산에 머리 없는 부처님 계시는데 / 한 달에 한 번은 머리가 생긴다

- 박진규 시 '남산 보름달' 중에서

 
경주 남산(466m)은 신라의 수도 서라벌의 중심이었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을 비롯 석탑, 석불, 절터 같은 불교 문화재가 빼곡한 곳입니다. 
 
거기에 '머리 없는 부처님'이 계신다고 합니다. 왜 부처님상에 '머리'가 없을까요? 지진 같은 천재지변으로 '머리'가 떨어졌거나 조선시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펼 때 불상이 훼손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머리'가 훼손되어 불상들이 땅에 파묻혀 있다가 후세에 몸통만 발견된 것이 '머리 없는 부처님'입니다. 
 
'머리 없는 부처님'이 남산에 여러 분 계십니다. '머리 없는 부처님'을 처음 만나면 다소 무서울 듯도 한데, 시의 화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한 달에 한 번은 머리가 생긴다'. 이 구절로 인해 초반부에서 시가 비상합니다. 제목을 '남산 보름달'이라고 했으니, 한 달에 한번 생기는 부처님의 머리는 바로 남산 하늘에 두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이겠네요.
 
시의 화자는 머리 없는 부처님이 너무 안쓰러워 보름달을 부처님의 텅 빈 목 위에 얹어주고 싶었네요. 보름달을 얹어주고 싶은 마음은 얼마나 따뜻한 마음인지요.
 
그 텅 빈 목 위에 보름달을 얹은 부처님은 어떤 분일까요?
 
온 세상 비추다가 목 위에 살포시 뜨는 머리 / 얼마나 무량하였으면 /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고 없고 귀도 없다 

- 박진규 시 '남산 보름달' 중에서

 
남산 중턱에 있는 '머리 없는 부처님'을 본 적이 있습니다. 조금 비탈지고 높은 곳에 하늘을 배경으로 한 돌부처님이었는데, 남산 공중에 보름달이 뜨는 날엔 부처님의 텅 빈 목 위에 '살포시' 그 보름달이 앉을 것만 같네요. 
 
'얼마나 무량하였으면'. '무량(無量)'은 한계가 없는 완전성일 것입니다. 부처님의 공덕은 어떤 것으로도 측정할 수 없는 무한대라는 말이겠네요. 그래서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고 귀도 없다'라고 합니다. 무량하게 온누리에 비추지 않는 곳이 없을 보름달을 부처님의 공덕으로 치환해 표현한 구절이 인상적이네요.
 
이 구절에는 우리의 인식체계의 무상함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우리가 느끼는 감각은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마음(意)으로 구성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근(六根)에서 비롯됩니다. 이 육근에 의해 각각의 대상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면서 온갖 번뇌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우리의 육근(六根)은 때때로 얼마나 부정확하고 주관적이고 또 편견에 사로잡힌 것인지요. 그래서 얼마나 자주 우리는 혼란과 몽상과 착각, 그리하여 전도된 저마다의 환상에 빠져있겠는지요.
 
그래서 시의 화자는 '머리 없는 부처님'에 보름달을 얹고 기도했나 봅니다. 감각이 주는 제약을 넘어서 자유롭기를, 그 진리를 깨달아 육근이 깨끗해지기를, 그리하여 부디 욕심과 집착 없는 삶을 살기를요.
 

"머리 없는 부처님" - 박진규 시 '남산 보름달' 중에서.

 

 

3. '머리 없는 부처님' 목에 머리를 얹어보는 아이 마음

 
그래서 그 부처님 앞에 서면 / 사람들은 두 손으로 자기 머리를 만지면서
저 공활한 목 위에 머리를 얹어 보고는 / 한 번쯤 지긋이 웃어주기도 한다

- 박진규 시 '남산 보름달' 중에서

 
'머리 없는 부처님' 앞에서 사람들은 무섭지도 않나 봅니다. 오히려 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지나 봅니다. '저 공활한 목 위에 머리를 얹어 보고는'. 사람들은 그 돌부처님의 텅 빈 목 위에, 시간과 공간으로 측정할 수 없는 그 무량의 한 부위에 자기들의 머리를 얹어본다고 하네요.  
 
'머리 없는 부처님'의 목 위에 자신의 머리를 얹어보는 이 순수한 마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 마음은 부처님의 자비를,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를 닮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지금은 온갖 욕망으로 얼룩들룩해졌을 지라도 자기 안에 있는 하늘마음과 합일하여 살고 싶은 간절한 기원일 것입니다.
 
'한 번쯤 지긋이 웃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짓궂게 자기 머리를 얹은 자신이 멋쩍어서는 "부처님, 잘 부탁드려요!"라고 부처님 옆구리를 쿡 찔러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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