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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재삼 시 한

by 빗방울이네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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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시인님의 시 '한'을 만납니다. 감나무에 달린 바알간 감을 보면 생각나는 시입니다. 먼저 가신 임이 계시는 저승까지 닿고 싶은 시인님. 그런 시인님이 퍼올려주는 뜨거운 사랑의 목욕물로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재삼 시 '한' 읽기

 
한(恨)
 
- 박재삼(1933~1997, 일본 출생, 삼천포 성장)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 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 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 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前生의 내 全 설움이요 全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 「박재삼 시선」(이상숙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년) 중에서


2.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 가는'


박재삼 시인님의 시 '한(恨)'은 1962년 발간된 시인님의 첫 시집 「춘향이 마음」에 실린 시입니다. 시인님 20대에 쓰인 시입니다.
 
제목인 '한(恨)'은 어떤 억울함이나 원망, 안타가움, 슬픔 등이 맺힌 마음을 뜻합니다. 시인님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요? 
 
시로 가는 오솔길은 여러 갈래입니다. 오늘은 '독서목욕'이 낸 오솔길로 가봅니다.
 
감나무쯤 되랴 /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 가는 /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시인님은 지금 사랑하는 이, 그러나 먼저 세상을 떠난 이의 무덤에 와 있습니다. 무덤 가까이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네요. 늦가을이었을까요? 감이 발갛게 익어 나무가지마다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바알간 감은 '서러운 노을빛'이라고 하네요. 
 
그런데요,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바알간 감을 보니 자신의 '서러운 노을빛' '사랑의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야만 했던 설움에 시인님의 목이 메이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하여 시인님은 무덤가 감나무가 마치 시인님 자신인 것만 같은 생각, 나아가 자신이 감나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가신 임의 무덤 옆에 서 있는 감나무! 왜 시인님은 그 감나무가 되고 싶었을까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 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 본데,
 
그 감나무처럼 뿌리를 뻗어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 가서' 님을 안고 싶고, 나뭇가지로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 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면 시인님은 감나무처럼 님을 포옥 온몸으로 안아보는 거네요. 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상상인지요? 이 얼마나 애절한 바람인지요?

 

"서러운노을빛"-박재삼시'한'중에서
"서러운 노을빛" - 박재삼 시 '한' 중에서.

 


3. ' 내 전 설움이요 전 소망인 것을'


그러나 그 사람이 /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 前生의 내 全 설움이요 全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가신 님은 생전에 자신의 집 안마당에 감나무를 심고 싶어했나 봅니다. 이 구절은 시인님과 감나무가 겹쳐 묘한 울림을 주네요. 시인님이 그 집 안마당의 감나무가 되고 싶었다, 또는 그 사람과 함께 살고 싶었다는 의미로도 확장되겠습니다.
 
'느껴운'은 '느꺼운'으로 새깁니다. 어떤 느낌이 마음에 북받쳐서 벅차다는 의미입니다. 그 북받치는 느낌은 설움이고 소망이겠지요?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감의 빛깔 말입니다. 그 '서러운 노을빛'이 임을 향한 자신의 모든 설움이자 소망이라는 거네요.
 
시인님이 무덤가 감나무가 되어 뿌리로 무덤 속 임의 등을 안고, 가지로는 임의 머리 위에서 휘드러진다면, 그때는 임이 자신의 서러운 노을빛 같은 마음, 온통 임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알아주려나, 하면서 울고 있네요.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마지막 행에 이르러 문득 시인님은 생각합니다. 나도 임을 보내 그렇게 서럽게 살았는데, 감나무가 되어 임을 안아보면 임이 서러운 나의 마음을 알까, 라는 그 생각만 했는데, 문득 그 사람도 나처럼 서럽게 살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나만 서럽게 살았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도 나를 그리워하며 서럽게 살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요.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그런 임의 마음을, 그땐 몰랐던 임의 마음을 생각하니 그게 그렇게 마음에 '한(恨)'이 되어 시인님은 더욱 통곡하게 됩니다. 참으로 애틋하네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박재삼 시인님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만나 보세요.

 

박재삼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읽기

박재삼 시인님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만납니다. 강에서, 바다에 다 와 가는 강에서 시인님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시인님이 보여주는 울음이 타는 강 노을에 마음을 맑히며 함께 독서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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