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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남수 시 아침 이미지 1

by 빗방울이네 202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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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수 시인님의 시 '아침 이미지 1'을 만납니다. 날마다 오는 아침, 새롭게 보고 느끼게 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아침의 신선한 기운으로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남수 시 '아침 이미지 1' 읽기

 

아침 이미지 1

 

- 박남수(1918~1994, 평양)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物象)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勞動)의 시간(時間)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太陽)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 한국현대시문학대계 21 「박남수 김종한」(지식산업사, 1982년) 중에서.

 

박남수 시인님(1918~1994)은 평양 출신으로 1933년 희곡 '기생촌(妓生村)'이 「조선문단」에 당선되고, 「문장」지에 정지용 시인님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1940년 첫 시집 「초롱불」을 비롯 「갈매기 소묘(素描)」 「신(神)의 쓰레기」 「새의 암장(暗葬)」 「사슴의 관(冠)」 「서쪽, 그 실은 동쪽」 「그리고 그 이후」 「소로(小路)」 등을 발간했습니다.

박목월 조지훈 장만영 유치환 등과 한국시인협회를 창립했고, 「문학예술」과 「사상계」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제5회 아세아자유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박남수 시인님의 시 '아침 이미지 1'은 1968년 사상계 3월호에 실린 시입니다. 시인님 50세 즈음의 시네요.

 

'아침 이미지'는 모두 5편으로 이어진 연작입니다. 그중에서 '아침 이미지 1'이 가장 널리 알려진 시입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어떤 내재된 특별한 메시지보다 맑고 힘차고 새롭고 산뜻한 아침의 기운을 전해주는 시네요.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들을 돌려주지만 /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 박남수 시 '아침 이미지' 중에서

 

아침은 삼라만상이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입니다. 희미하게 밝아오는 빛 속으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새와 돌과 꽃을, 여명의 새벽 풍경을 떠올리게 하네요.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 낳고, 꽃을 낳는다'. 이 구절의 따옴표와 행갈이에 주목하면서 읽어보니, 어둠이 새와 돌과 꽃을 낳은 풍경이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새와 돌과 꽃의 윤곽이 드러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낳는다'. 어둠이 새와 돌과 꽃을 낳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온갖 물상들을 돌려주고 '스스로 땅 위에 굴복한다'라고 합니다. 이 구절로 인해 '어둠'을 다시 보게 되네요. 공포와 혼돈 같은 부정의 표상에서 창조와 긍정의 표상으로요.

 

여기서 사람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온갖 물상(物象)' 가운데 존재하고 있겠지요. 그래서 어둠 속에 있던 '나'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여명의 시간입니다.

 

이제 '온갖 물상'은 천천히 그리고 활기차게 빛 속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런 아침의 경쾌함은 모차르트일까요? 피아노 소나타 10번이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어둠은새를낳고"-박남수시'아침이미지1'중에서.
"어둠은 새를 낳고" - 박남수 시 '아침 이미지 1' 중에서.

 

 

3.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무거운 어깨를 털고 / 물상(物象)들은 몸을 움직이어 / 노동(勞動)의 시간(時間)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 금(金)으로 타는 태양(太陽)의 즐거운 울림 / 아침이면, /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 박남수 시 '아침 이미지' 중에서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이 구절은 시 '아침 이미지'에서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와 함께 가장 사랑받는 구절입니다.

 

이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은 아침의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화려한 조명 같기도, 현란한 BGM 같기도 합니다. 황금빛 태양인데 그 빛이 마치 소리처럼 울리며 찬란하게 빛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시각이 청각 영역의 감각까지 불러일으키는 공감각적 표현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두드려 아침의 '즐거운 지상의 잔치에' 빠져들게 하네요.

 

가만히 눈을 감고 이 환희의 함성 같은 아침의 태양빛을 떠올려봅니다. 우리의 고단한 영혼에 그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이 스며들기를! 아침의 활기가 온몸 가득 차오르기를!

 

이렇게 새벽이 밝아오는 풍경, '온갖 물상'들이 드러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때가 언제였던가요? 그동안 여명의 순간을 너무 모르고 지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은 새벽에 홀로 깨어있고 싶습니다. 그러면 어둠이 '나'를 새롭게 '낳아'주겠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박재삼 시인님의 시 '사람이 사는 길 밑에'를 만나 보세요.

 

박재삼 시 사람이 사는 길 밑에

박재삼 시인님의 시 '사람이 사는 길 밑에'를 만납니다. 겨울 바다, 그리고 삶의 출렁임과 흔들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재삼 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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