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읽고 마음목욕하는 세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이스마엘이 고래잡이배를 타기 위해 부두에 왔습니다. 그런데 험상궂은 식인종 사나이 퀴퀘그와 한 침대에서 자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는 식인종과 같은 침대를 쓰지 않으려고 한바탕 소동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결국 함께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어떻게 식인종의 침대에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1. 문신은 했을망정 순수하고 아름답다
먼저 침대 속에 들어가 있던 퀴퀘그가 침대 밖에서 주뼛거리는 이스마엘을 침대로 들어오라고 부릅니다. 이어지는 장면을 보시죠.
그러고는 (퀴퀘그는) 침구를 한쪽에 밀어 주었다. 그 행동은 예의 바름을 넘어서서, 친절하고 자상하기까지 했다. 나(이스마엘)는 장승처럼 우뚝 선 채,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비록 문신은 했을망정 전체적으로는 깨끗하고 훌륭한 생물이었다.
'그런데 내가 소란을 피운 그 꼴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 사나이도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닌가? 내가 두려워한다면 이 사나이도 두려워할 게 아닌가?'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주정뱅이 그리스도교도와 잠자는 것보다는 제정신의 식인종과 자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 「백경1」(허먼 멜빌 지음, 현영민 옮김, 신원) 중에서
퀴퀘그를 보자마자 이스마엘을 장악했던 공포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편견과 무지였습니다. 식인종, 문신투성이의 기괴한 외모, 해골장수. 퀴퀘그에 대한 편견이 이스마엘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허먼 멜빌은 이 대목에서 '무지는 공포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2. 친절하고 자상한 퀴퀘그와 교감하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퀴퀘크의 어떤 행동 하나를 통해 불현듯 퀴퀘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장면은 <모비딕> 소설에서 이스마엘과 퀴퀘그가 처음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교감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퀴퀘그는 이스마엘을 위해 침구를 한쪽으로 밀어주었는데,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이스마엘의 닫혀있던 마음의 커튼을 살며시 열어주게 됩니다. 이스마엘은 '그 행동은 예의 바름을 넘어서서 친절하고 자상하기까지 했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나 자세, 또는 표정 하나에 마음을 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나 자세, 또는 표정이 진실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겉으로 친절한 척하는 것인지, 진심으로 친절한 지 말입니다. 그것은 누구라도 금방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자, 퀴퀘그의 순수한 행동에 호감을 느낀 우리의 이스마엘은 장승처럼 우뚝 선 채 퀴퀘그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For all his tattooings he was on the whole a clean, comely looking cannibal. 이 원문을 자세히 보면, 퀴퀘그가 비록 온몸에 문신을 했지만 이스마엘은 그로부터 '온전한 순수'와 '아름다움이 있는 식인종'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깊이 느끼게 됩니다. 이런 느낌, 충분히 공감이 가는 장면이네요. 여러분도 이런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겠지요.
그러면서 이스마엘은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봅니다. '내가 두려워한다면 이 사나이도 두려워할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나의 두려움만 두려움이고 상대방이 나에게 느꼈을 두려움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거네요. 그리고 자신이 피운 소란을 떠올리며 '그 꼴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3. 편견과 무지를 걷어 내려면
그 다음 장면에서 작가 허먼 멜빌은 이스마엘의 독백을 통해 우리의 생각에 회오리를 일으키며 신선한 산소를 가득 불어넣어줍니다. Better sleep a sober cannibal than a drunken Christian. '주정뱅이 그리스도교도와 잠자는 것보다는 제정신의 식인종과 자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라고요.
저는 이 문장에서 즉각 공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그리스도교도와 식인종.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얼까요? 언뜻 그리스도교가 정상적이고 선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식인종은 비정상적이며 악이라고 생각하고요.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을 텐데 말입니다.
허먼 멜빈은 이 장면에서 우리의 편견과 무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편견과 무지를 벗겨내기 위해서는 먼저 실상을 알아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 퀴퀘그가 어떤 인물인가를 뒤늦게 알게 된 이스마엘이 드디어 그토록 무서워하던 식인종의 침대에 들어갑니다.
나는 침대에 들어갔다. 그날 밤처럼 기분 좋게 잠을 잔 기억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 위의 같은 책 중에서
과연 그 침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다음 편에 이어서 <모비딕>을 읽고 마음목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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