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강남주 시인님의 시 두 편을 읽으며 마음목욕을 하려고 합니다. 인생의 황혼녘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시들입니다. 나이 80세쯤에 이르렀을 때 나는 나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시를 읽으면 좋겠습니다.
1. 84세 노시인이 되돌아본 인생은
헛것을 찾아서
- 강남주
여태껏 나는 헛것을 찾으며 살았다
때로는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무대 위에서 춤췄다
뜻 없는 박수에 우쭐거리며
벅수를 넘었다가 바닥에 뒹굴었다가
객석을 향해 거짓 웃음도 날렸다
관객들이 떠난 무대 위에 홀로 서서
문득 나를 되돌아본다
나는 어디에도 없다
욕망으로 고통 받는 맥베스의 사람
짙은 화장을 한 피에로만 서있다
아무것도 없어 허허한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어둠이 서성거렸다
- 「부산 시문학 사회집」 29호 <빛과 바람의 시선 반짝이고> 중에서
이 시는 최근 부산서 나온 「부산 시문학 사회집」에 실린 시입니다. 1939년생이니 시인님은 올해 84세가 됩니다. 그런 노시인이 삶을 돌아보면서 읊은 문장이 '여태껏 나는 헛것을 찾으며 살았다'이네요. 시인은 어떻게 살았기에 저렇게 말했을까요?
그런데 시인의 이력을 찾아보니 참으로 화려합니다. 청년 시절에는 언론사 기자로, 그 후 부산수산대(부경대) 교수로, 부경대 총장으로, 퇴임 후에는 부산문화재단 초대 대표로, 유네스코 조선통신사문화사업 한국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신 분입니다. 10권의 시집과 평론집, 3권의 장편소설까지 펴낸 문인이십니다.
이처럼 세상의 아래부터 위까지 구석구석 다 훑어보고 사신 분의 전언이 '헛것을 찾으며 살았다'라니, 소시민으로서는 이 말을 참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는 시에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무대 위에서 춤췄다'면서, '뜻 없는 박수에 우쭐거리며 벅수를 넘었다가 바닥에 뒹굴었다가' '객석을 향해 거짓 웃음도 날렸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되돌아보니 욕망 때문에 타락과 파멸에 이른 맥베스의 사람처럼 짙은 화장을 한 피에로가 되었다고 성찰합니다.
2. 사재 1억원을 기부한 이의 삶에 대한 성찰은
그는 2022년 11월 1억원의 사재를 모교인 부경대학교에 기부했습니다. 이 돈은 강남주 시인님의 부부가 평생 모은 적금을 깬 것이라고 합니다. 부부가 가진 현금자산을 몽땅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이런 분이 시를 통해 '헛것을 찾으며 살았다'라고 토로하고 있네요.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시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찾기 위해 강남주 시인님의 시 한 편을 더 읽어보겠습니다. 시인님이 75세에 쓰신 시입니다.
흔적 남기기
- 강남주
한 마리 짐승이었다
나는,
이 나무 등걸에 몸 비벼
비늘을 칠하고 털을 붙이고
잡아먹을까 잡혀먹힐까
살기다툼하면서 나만 챙겼다
산야를 달리고 또 달려
영역을 넓히겠다고 오줌 누고
이빨 내보이며 안간힘 했다
결국 흔적도 없어질 목숨인 것을
뭔가 남기려고 기를 썼지만
끝내 한 마리 짐승이었다
나는,
- 「부산 시문학 사회집」 21호 <바람의 비늘도 유적이 된다> 중에서
앞의 시에서는 '헛것을 찾으며 살았다'라고 하더니, 이 시에서는 스스로를 '한 마리 짐승이었다'라고 외치고 있네요. 노시인은 '살기다툼하면서 나만 챙겼다'라고 합니다.(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그렇게 나만 챙기며 살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면서 '끝내 한 마리 짐승이었다'고 시 속의 '나'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강남주 시인님의 시 두 편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마치 깊은 숲 속의 사자가 홀로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으십니까?
이 고독한 사자후는 나만 잘 되면, 내 가족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심의 소용돌이에 빠져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내지른 노시인의 돌직구가 아닐까요?
'헛것을 찾으며 살았다', '한 마리 짐승이었다'. 이 같은 노시인의 솔직한 성찰과 용기 있는 고백을 거울 삼아 독자들은 하염없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고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게 되는 게 아닐까요?
3. 세상에 던지는 노시인의 돌직구
저는 삶에 아주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언제가 발견될 그것을 향하여 저는 끊임없이 항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노시인의 시 두 편은 그런 저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 삶에는 그리 대단한 것이 없단다, 남 비위 맞추는 꼭두각시 노릇 그만하고 너 자신의 삶을 살아라, 무언가 특별한 것을 남기려 기를 쓰지도 말아라, 결국 흔적도 없어질 목숨이니 다만 이 순간 사랑하며, 사랑하며 살아라.
강남주 시인님의 시 두 편,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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