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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춘수 시 꽃을 위한 서시

by 빗방울이네 2024.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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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님의 시 '꽃을 위한 서시'를 만납니다.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인님의 몸부림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춘수 시 ‘꽃을 위한 서시’ 읽기


꽃을 위한 서시(序詩)

- 김춘수(1922~2004, 경남 통영)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 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 「김춘수 시선」(김춘수 지음, 이재복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년) 중에서
 

2.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치열한 도정

 
김춘수 시인님의 '꽃을 위한 서시'는 1959년 발간된 제5시집 「꽃의 소묘」에 실린 시입니다.
 
시가 매우 어렵게 다가옵니다. 이 시는 과연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요?
 
이 시를 만나기 전에 아래의 문장을 먼저 읽어봅시다.
 
모든 유·무형의 것들을 분류하고 지시하는 개념그릇인 언어세계 안에는
그 어떤 고유의 본질적 실체도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확연히 알아,
언어와 개념으로 지시되는 존재들이 '상호 격리와 배제'가 아니라
'상호 개방과 포섭'으로 만나고 있는 지평을 고스란히 대면하는 마음이,
'하나로 보는 마음자리/하나가 되는 마음지평'이다.

-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읽기」(박태원 지음, 세창미디어, 2014년) 중에서

 
오늘 만나는 '꽃'은 위의 문장에 나오는 '유·무형의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통상 보는 '꽃'에는 꽃 고유의 본질적 실체가 담겨있지 않다고 하네요. 언어와 개념으로 지시되는 존재일 뿐이라고요.
 
위 책에 따르면, 원효 스님은 금강삼매 선정을 성취하면 그동안 언어와 개념에 의해 외따로이 존재하던 사물을 하나로 보는 마음자리에 서게 되고 '하나가 되는 마음지평'이 열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객관과 주관에 대한 상(相) 분별이 해체되어
환각과 오해의 분별을 일삼던 '오염 인식(알음알이/분별심/분별지)'이
참모습을 그대로 보는 '지혜 인식(무분별지)'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공성인 존재의 참모습(진여)을 비로소 대면하게 된다.

- 위 같은 책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읽기」 중에서

 
그러니까 '꽃을 위한 서시'는 무지(無知)로 오염된 인식에 의해 왜곡되고 가려진 꽃이 아니라 꽃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시인님의 간절하고도 치열한 깨달음의 도정을 그리고 있다고 새길 수 있습니다.

이 문장들을 가슴에 안고 ‘꽃을 위한 서시’를 만나러 갑니다.
 

"위험한짐슴"-김춘수시'꽃을위한서시'중에서.
"위험한 짐승" - 김춘수 시 '꽃을 위한 서시' 중에서.

 

 

 

 

3.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 김춘수 시 ‘꽃을 위한 서시’ 중에서


'나'는 왜 위험한 짐승일까요?

'나'는 '너'(꽃)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지에 오염된 인식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왜곡된 인식으로 '너'를 보는 행위는 참을 보지 못하는 해로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참을 보지 못한다면, '너'에 대한 참 인식은 '나'에게 건너오지 못한 채 까마득한 미궁에 빠져버릴 것입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까마득한 어둠'인지요.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 김춘수 시 '꽃을 위한 서시' 중에서

 
'나'는 '너'(꽃)의 본질을 보지 못한 채 매양 겉모습만 인식합니다. 환각과 오해의 분별을 일삼는 '오염된 인식' 말입니다. 그런 '나'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너'는 '나'에게 불안정한 존재로 피었다 지는 존재입니다. 시인님은 이 사실을 인식하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 나는 한밤 내 운다

- 김춘수 시 ‘꽃을 위한 서시’ 중에서

 
'무명(無名)의 어둠'. 시인님은 이름이 없으면(無名) 지각할 수 없는, 이름이 있어야 비로소 인식할 수 있는 자신의 인식한계를 타파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시인님은 자신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추억)을 호명합니다. 그 빛나던 순간을 모아 '오염 인식'을 벗어던지고 참모습을 그대로 보는 '지혜 인식'에 도달하려합니다. '한밤 내 운다'. 고뇌와 단련의 밤들입니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 탑(塔)을 흔들다가 /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 김춘수 시 ‘꽃을 위한 서시’ 중에서


시인님의 치열한 구도(求道)의 몸짓이 느껴지는 구절입니다. 자신의 노력이 '울음'에서 '돌개바람'으로 번져 탑(塔)을 흔들 것이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을 흔들어 깨부수고 형상의 참모습을 그대로 보는 '지혜인식'을 시인님은 '금(金)'으로 비유했네요.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 김춘수 시 ‘꽃을 위한 서시’ 중에서

 
'신부(新婦)'는 앞에 등장한 '꽃'입니다. 얼굴/본질을 볼 수 없는 꽃입니다. 자신의 주관이 개입된 꽃의 인식으로는 꽃의 얼굴/본질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금(金)'의 인식, '지혜인식'에 도달해 그 꽃의 본질에 다가가리라는 시인님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꽃/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인님의 숱한 '울음'의 밤을 생각합니다. 올바른 인식을 가로막는 무지와 편견과 소문과 상징과 기호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환상 속에 살고 있는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춘수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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