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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종삼 시 평화롭게

by 빗방울이네 2025.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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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 시인님의 시 '평화롭게'를 만납니다.
 
우리는 언제쯤에나 하루하루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종삼 시 '평화롭게' 읽기

 
평화롭게
 
김종삼(1921~1984년, 황해도 은율)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
 
▷「김종삼 전집」(권명옥 엮음·해설, 나남출판, 2005년) 중에서.
 

2.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준 '평화롭게'

 
'북 치는 소년', '묵화', '민간인', '걷자' ···
 
이 주옥같은 시들은 '우리 시가 내장하는 최고의 감동'(「김종삼 전집」, 권명옥)으로 꼽히는 김종삼 시인님의 시편입니다.
 
그런 절창의 시인, 김종삼 시인님의 시 '평화롭게'는 마지막 개인시집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민음사, 1982년)에 실린 시입니다.
 
시인님이 작고(1984년 12월) 하시던 해 5월에 펴낸 시선집의 제목이 「평화롭게」였을 정도로 시인님도 사랑하는 시였습니다.
 
시인님 50대 후반에서 작고(63세)하기 전의 시간 속에서 나온 시가 '평화롭게'였네요.
  
희로애락의 뻘밭을 다 지나온 인생의 후반기에서 시인님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소중한 전언인 것만 같습니다.
 
시인님의 평생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온 가족과 함께 1947년 봄 월남했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으며
낯선 남한(서울)에서 지독한 가난과 소외에 갇힌 채 38년 간 살았다.
▷위의 책 「김종삼 전집」의 김종삼 시인 소개 글 중에서.
 
남북이 갈라져 살벌했던 시간, 포근한 고향을 두고 낯설고 물선 서울로 내려와 38년을 사셨네요.
  
'악몽, 추방, 황야, 변방, 낯섦, 떠돎'
 
이 단어들은 위 책이 김종삼 시인님의 삶 또는 시의 키워드로 꼽은 것입니다.
 
모두 외롭고 힘들고 춥고 아프고 배고프고 고달픈 단어들이네요.
 
그 지독한 삶이라는 늪 속에서 시인님이 간절하게 희망한 것, 저절로 터져 나온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루를 살아도 / 온 세상이 평화롭게'
 
바로 '평화롭게'였네요!
 
김종삼 시인님의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어쩌면 빗방울이네의 삶도 '악몽, 추방, 황야, 변방, 낯섦, 떠돎 ···.' 같은 키워드로 나날이 점철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 각박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삶이란 것이, 대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성난 말 같기만 해서, 도무지 온순히 안겨들 기미를 보여주지 않으니까요.
 
이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지요만.
 
'악몽, 추방, 황야, 변방, 낯섦, 떠돎'라는 키워드의 삶 속에서 우리도 시인님처럼 저절로 무릎이 꺾여 기도하게 됩니다.
 
'이틀을 살더라도 /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평화!
 
평화란 일체의 갈등 없이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일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무난한 일상이 변함없이 이어지는 일일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깨어지는 순간, 삶은 평화를 잃고 요동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 김종삼 시 '평화롭게' 중에서.

 

3. 간절한 기도문 같은 시 '평화롭게'

 
시 '평화롭게'의 도입부를 다시 새겨봅니다.
 
'하루를 살아도 / 온 세상이 평화롭게'
 
첫 시어 '하루'에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이 '하루'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운문스님의 어록에 있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는 문장이 생각납니다.
 
그 뜻은 '날마다가 참 좋은 날이다'입니다.
 
이 문장에서 오늘 하루를, 지금 이 순간을 즐겁고 의미 있게 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 문장도 떠오르네요.
 
이렇게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는 일이 행복한 일이다 싶어요.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대사 중에서.
 
영화 속의 다도(茶道) 스승이 새해를 맞아 제자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매일 반복하는 일을 매일 반복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행복한 상태이고 평화로운 상태이겠지요?
 
그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는 평화가 깨어진 상태, 일상의 수면이 흔들리는 시간입니다.
 
'이틀을 살더라도 /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이 '평화'라는 단어에는 '고요'가 따라오네요.
 
평화는 고요라는 말과 같은 무게의 말인 것만 같습니다.
 
김종삼 시인님의 다른 시 '묵화(墨畵)'에 묵화처럼 스며드는 고요의 장면이 나옵니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시 '묵화(墨畵)' 전문(위 책 「김종삼 전집」 수록 작품)
 
소와 할머니는 하루 종일 밭일을 하였겠지요?
 
이제 저녁이 되어 둘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를 어루만져주는 시간입니다.
 
하루를 함께 한 동행이 있어 힘든 노동의 고달픔을 견딜 수 있었겠지요?
 
이런 거대한 호수 같은 고요와 평화가 내일 또 내일로 이어지기를!
 
시 '평화롭게'의 마지막 2 연입니다.
 
'그런 날들이 / 그날들이 / 영원토록 평화롭게 -'
 
오늘 하루보다 더 혁신적인 내일 하루를 원하시나요?
 
아무 일 없는 하루, 일상을 유지하며 잔잔한 호수 같은 하루라면 성공한 하루였겠습니다.
 
반복하는 일을 아무 탈 없이 계속할 수 있었던 하루라면요.
 
시인님의 시 중에서 '평화(平和)'라는 제목의 시를 음미해 봅니다.
 
시인님이 말하는 평화는 어떤 평화였을까요?
 
고아원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 선교사가 심었던 수십 년 되는 나무가 많다.
아직 / 허리는 쑤시지 않았다
잘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하지만 / 잠 깨는 아침마다 오늘 아침에도 / 어린것들은 행복한 얼굴을 지었다.
▷김종삼 시 '평화(平和)' 전문(위 책 「김종삼 전집」 수록 작품).
 
'고아원'의 '어린것들'이 '오늘 아침에도' '행복한 얼굴을 짓는 일', 그것이 '평화'라고 하네요.
 
'잘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하지만'요. 외롭고 쓸쓸한 아이들이지만요.
 
그런 부모 잃은 '어린것들'이 '행복한 얼굴'을 지을 수 있는 시간, 그것이 '평화'라고 하네요.
 
그것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 가깝고도 먼 것인지!
 
그리하여 오늘 하루 평화롭기를, 나도 그대도, 우리 집도 이 세상도 평화롭기를!
 
세상의 온갖 거짓과 선동, 이기심과 욕망, 전도된 망상이 흔들어놓은 평범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고요해지기를! 
 
이렇게 시 '평화롭게'는 참으로 간절한 기도 같은 시였네요.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 때마다 간구하여야겠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 온 세상이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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